2024년 5월 8일(수)

“장애인이 불편하지 않은 나라가 진짜 선진국이라 생각합니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
장애인고용 법안 만들 땐… 1년 중 5일도 안 쉬고 ‘예술작품 만들 듯’ 했다
법 시행 20년… 고용률 13배 늘었지만 이윤 추구 고용 형태, 아쉬운 부분도 많아
신체 일부가 불편할 뿐 다른 문제는 없는데… 인식 개선이 급선무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장애인고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을 만든 지 20년이 됐는데, 일자리를 늘려 장애인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데 기여한 반면,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이 낮은 것은 한계”라고 말했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장애인고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을 만든 지 20년이 됐는데, 일자리를 늘려 장애인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데 기여한 반면,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이 낮은 것은 한계”라고 말했다.

소아마비를 앓은 장애인으로, 고용노동부 최초로 ‘내부 출신 장관 1호’가 된 인물.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이다. 그는 1982년 행정고시(25회)에 합격한 후 30년 가까이 고용노동부에 몸담으며, 장애인 고용문제 해결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이틀 앞둔 지난 18일, 경기 과천의 정부종합청사에서 이 장관을 인터뷰했다.

―1991년 ‘장애인고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주도했다고 하는데, 당시 어려움도 많았다고 들었다.

“1989년 무렵 법안을 만드는 주무관으로 차출됐다. 장애인이니 더 애정을 갖고 해보란 뜻도 담겨 있었다. 당시 경영계에서는 ‘고용의무제는 시장논리에 반한다’며 엄청나게 반대했다. 당시 나는 ‘세금을 내서 장애인을 시혜적으로 도와줄 거냐, 일자리를 줘서 그들이 세금을 내도록 할 것이냐’고 경영계를 설득했다. 사무관인 나와 고용전문직 직원, 둘이서 법과 예산과 기금 마련까지 다 짜느라 1년 365일 중 집에서 쉰 날이 5일도 안 됐다. 참고할 게 아예 없어서, 모든 걸 예술작품 만들 듯 새로 짰다.”

―법 시행 20년이 넘었다. 직접 주도한 공무원으로서 공과를 평가한다면.

“법 시행 초기 장애인 고용 수치가 1만명에 불과했다. 작년 연말 기준 13만명을 돌파했다. 13배 늘었다. 예전에는 장애인들이 주로 집안에만 있었는데, 요즘은 사회생활을 많이 한다. 근원적 복지가 일자리 아닌가. 일자리를 통해 장애인의 경제적 자립을 돕고, 다원화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아쉬운 부분도 많다. 사업장이 클수록 장애인 고용률이 늘어나는 선진국에 비해, 우리는 거꾸로다. 이윤추구, 효율 지상적이다 보니 따뜻한 얼굴을 한 노동시장의 모습을 보기 어렵다. 최근 대기업도 달라지고 있는데, 장애인 고용률을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리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대기업 자회사에서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줄 경우 모기업에 혜택을 주는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같은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또 장애인을 3개월 정도 시험고용해 본 후 괜찮으면 고용하도록 하는 제도도 있다.”

―최근 ‘장애인 고용확충 종합대책’을 발표했는데, 장애인 고용정책의 큰 줄기는 뭔가.

“가장 중요한 건 인식개선이다. 장애인은 신체 일부에 장애를 가졌을 뿐 고유의 인격체다. 하지만 장애 때문에 다른 것도 장애가 있을 것으로 본다. 사실 일을 할 때 신체기능을 100% 작동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특정분야를 잘하면 자격증을 주듯이, 장애인에게도 그런 기준으로 업무 분담을 하면 된다. 다음은 장애인들의 활동에 불편함을 주는 장벽을 줄이는 것이다. 특정조건을 만족하는 건축물만 허가하는 식이다. 건축물이 달라지면 교통체계도 달라진다. 그다음은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능력개발기회가 열려야 한다. 지금까지는 장애인들이 일할 때의 소득이나 일하지 않고 정부로부터 받는 보조금이나 비슷하다. 그러니 일을 안 하게 된다. 세제 혜택 등을 통해 일하는 장애인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고용노동부가 기업과 공공기관의 장애인 고용을 높이기 위해 명단발표를 하는데, 실효성이 있는가.

“한두 달 미리 준비기간을 둔다. 장애인을 더 고용하겠다는 기업은 잠재적 명단에서 제외한다. 계도 기간 두 달 사이에 2600명 정도가 고용됐다. 예전에는 1년에 한 번 발표했는데 작년부터는 1년에 두 번 한다. 관보에만 실리던 것을 앞으론 포털사이트에 올리기로 했다. 정부기관 중 장애인 고용률이 제일 낮은 곳이 교육청이다. 교육청은 1.44%로 전체의 절반이다. 특별활동 분야 교사 등 가능한 영역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리 불편한 사람이 왜 다른 과목 못 가르치겠느냐. 원어민 강사만 필요한 게 아니다.”

―지체장애에 관한 지원정책은 많지만, 발달장애 등 정신장애 분야는 고용의 사각지대인 것 같다.

“현재 장애인 중 절반이 지체장애다. 하지만 30대 이하 장애인 중에선 정신장애나 자폐 등이 50%에 육박한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장애 유형도 옮겨간다. 트렌드에 맞게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자폐 같은 경우는 혼자서는 잘하는데 어울리는 걸 못하니까 도서관 책 정리를 맡기면 기가 막히게 잘한다. 복사나 단순포장, 조립 등 발달장애에 맞는 일자리를 많이 찾아야 한다.”

―선진국에선 각 장애에 맞는 맞춤형 직업을 개발하는 대신, 개별 장애인이 자신의 소질을 키울 수 있게 시스템을 바꾸는데….

“단계적으로 가야 한다. 처음에는 부담 없이 장애인을 고용할 수 있도록 촉진하고, 다음 단계가 되어 스티븐 호킹 같은 인물이 나타나면 ‘이 정도 비용을 들이는 건 낭비가 아닌 투자’라는 인식이 생긴다. 일본은 우리보다 15년 먼저 장애인고용 법률을 시행했는데, 지금 우리보다 장애인 고용률이 낮다.”

―선망의 대상이 되는 장애인 출신 장관으로서, 어려움을 겪는 젊은 장애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린 시절 우리집은 워낙 시골(경남 울주)이었다. 대학 4학년 때 전기 들어오고, 10년 전에 상수도가 들어온 곳이다. 나는 여름 모내기때는 못줄을 잡았고 겨울엔 송아지 먹일 소죽을 끓였다. 우연히 학교 선생님을 잘 만나 검정고시를 보았고, 장학금 주는 대학이 있다고 해서 영남대에 입학했다. 중앙도서관에서 책을 보면서 세상을 알았고, 행정고시도 봤다. 사무관 시절에는 비선호 부서만 돌았다. 고생하며 업무를 배우다 보니, 과장 때부터는 바쁜 부서만 돌았다. 어렵거나 장벽이 있어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도전하면서 능력을 닦는 게 중요하다. 나는 늘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문제 있는 곳에 대안 있다’는 낙관적인 마음을 갖고 살았다.”

이 장관은 마지막으로 “‘장애인에게 좋은 건 모두에게 좋은 것’이란 말이 있다”며 “장애인이 불편하지 않은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말했다.

대담=박란희 편집장

정리=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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