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먹고살기 바빠 아파도 참아… 동네 사람들 다 그래요”

탄자니아 음트와라 ‘트라코마’ 눈병

덕지덕지 붙은 누런 눈곱, 거친 속눈썹, 혼탁한 눈동자….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최남단 음트와라에서 남서쪽으로 30km를 달려 다다른 ‘나냠바’ 마을. 그곳에서 만난 라자부(2)의 눈은 계속 시선을 두기 힘들 정도였다. 라자부를 등에 업은 어린 엄마 네마(25)씨는 “태어났을 때부터 눈병을 앓았는데, 어제부터는 눈곱이 심하게 끼기 시작했어요”라고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몰라요. 그냥 아이가 채근대면 아픈가 보다 했어요”라며 덤덤하게 말한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아팠던 두살 라자부는 현재 중증 트라코마를 앓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눈이 아팠던 두살 라자부는 현재 중증 트라코마를 앓고 있다.

라자부가 앓는 병명은 ‘트라코마(Trachoma)’. 세계 7대 소외열대질환 중 하나로, ‘트라코마티스(trachomatis)’라는 미생물에 의해 감염된다. 라자부는 수술이 필요한 단계다. 이대로 방치하면 영영 앞을 볼 수 없다. 탄자니아에만 무려 4만5000명이 이 트라코마로 인해 실명된 상태다.

음트와라 낭구르에 보건소에서 만난 나마네아(60)씨의 왼쪽 눈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트라코마 때문이다. 오른쪽 눈은 지난해 하트하트재단의 수술캠프를 통해 가까스로 실명 위기에서 벗어났다. 나마네아씨는 “10년 전부터 눈이 많이 아프고 잘 안 보였는데, 먹고 살기 바빠 참고 일했다. 여기 사람들은 다 그렇게 한다”고 했다.

탄자니아에서 가장 열악한 지역인 음트와라에서 트라코마는 가난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소떼와 같이 먹는 더러운 물, 집 근처에서 아무렇게나 태우는 온갖 쓰레기, 조악하게 땅을 파 만든 화장실, 파리떼가 넘나드는 구멍 난 흙집…. 빈곤한 환경은 모두 이 병의 원인이 된다. 병에 걸려 앞을 못 보면 일을 못해 더 빈곤해진다. 음트와라주에 사는 100만명 중 20만명은 모두 같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 하트하트재단의 최주용 음트와라 지부장은 “시골지역 중에서도 음트와라는 다른 원조기관이나 정부의 지원이 없어 훨씬 낙후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의 트라코마 유병률은 5% 이상으로, 전국 최고수준이다. 음트와라주 열대소외질병(NTD·Neglected Tropical Diseases) 관리책임자 살룸(59)씨는 “음트와라 지역은 필라리아증(사상충)과 트라코마의 발병률이 가장 높다”면서 “특히 시골지역에서는 트라코마가 월등히 높은데 전염성이 강한 병이라, 가난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4월 7일, 음트와라주 음티니코 마을에서 만난 라시디(14)를 따라 나섰다. 물을 기르러 가는 길이란다. 어른 높이의 수풀을 ‘한겹한겹’ 벗겨내며 한 시간여를 걸으니, 널따란 저수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거품과 벌레가 눈에 띄는, 얼핏 봐도 더러운 물이다. “끓여 먹으면 괜찮아요.” 초록색 양동이 가득 황토물을 담으며 라시디가 말했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라시디는 중학교 진학 대신 집안일을 떠맡게 됐다. 트라코마로 두 눈을 잃은 아빠와 간신히 형체만 구분하는 엄마를 대신해서다. 라시드의 엄마 아미나(40)씨는 “아이가 힘든 것을 알아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라시드의 채비는 이어진다. 집에서 10km나 떨어진 마람바 마을로 동냥을 나간단다. 맹인 아빠를 지팡이 끝에 달고서다. 일주일에 두어번씩 나가는 동냥을 통해 라시드는 하루에 2000실링(한화 1500원) 정도의 돈이나 음식을 얻어온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먼 길을 다니나”는 질문에 라시드는 “생각 잘 안 해요. 피곤해서”라고 짧게 대답했다. 라시드의 아버지 이스말리(51)씨는 “나야 죽으면 그만이지만, 아이한테만은 이런 환경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그게 너무 힘들다”라고 했다. 라시드도 현재 트라코마에 감염된 상태다.

탄자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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