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진료부터 입원까지… 모든 환자 무료 진료

13년간 ‘기부·협약·컨설팅’으로 운영 지속

미상_사진_앙코르병원_아이들_2012캄보디아에서는 의사가 귀하다. 의사 한 명이 담당하는 인구가 6000명에 달한다.(우리나라는 600명당 1명) 병원도 부족하다. 이곳 사람들은 하루를 걸어 병원에 도착한 후, 진찰 한번 받기 위해 또 하루를 기다린다. 병원에 가려면 최소 2~5달러의 교통비가 필요하지만, 캄보디아 정부가 국민 한 명을 위해 공공재원에서 지출하는 의료비는 1년 평균 13달러(우리나라는 국민 1인당 약 1094달러)에 불과하다.

이 캄보디아에서 유일하게 진료, 수술, 입원 등 모든 의료 서비스가 무료인 어린이병원이 있다. 1999년 세워진 ‘앙코르어린이병원(Angkor Hospital for Children)’이다. 현재 의사를 포함한 병원 직원 수가 382명, 하루 외래 환자가 400여 명에 달한다. 어린이를 위한 중환자실(incentive care unit)과 미생물 연구실(Microbiology Department)까지 설립, 이곳 아동에게 적합한 항생제 처방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

환자 수에 비해 의료 인력과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캄보디아에서 10년 넘게 성장을 거듭한 비결은 무엇일까. 2002년부터 병원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디렉터 겸 의사, 빌(Bill)이 입을 열었다. 그는 “세계 곳곳의 따뜻한 관심과 지속적인 도움 덕분”이라며 “앙코르어린이병원은 개발도상국에서 기부, 후원만으로 무료 병원의 설립과 운영이 가능함을 입증한 획기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미국 조지아 의과대학에서 내과, 소아과 전문의 과정을 마친 그는 효율적인 병원 운영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켄터키 루이스빌 대학원에서 공중보건학을 연구했다. 의료 기술을 통해 나눔과 경영,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그를 지난 3월 24일,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어린이병원에서 만났다.

―이 병원은 어떻게 설립된 것인가.

“13년 전, 일본의 유명 사진작가 겐로 이즈(Kenro Izu)의 후원 덕분이었다. 씨엠립 거리에서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전쟁고아들을 마주한 그는 어린이 의료 지원을 결심했다. 겐로 이즈는 1996년 ‘국경없는 친구들(Friends Without a Border)’재단을 세워 기금을 마련하고, 1999년 이 병원을 세웠다. 이곳의 모든 의료 시스템은 환자 중심으로 이뤄진다. 의료비 전액은 병원에서 부담하며, 한 명당 교통비 2달러를 지급해 가족의 돌아가는 길까지 배려한다. 식당 옆에 마련된 텃밭(Abbott)에선 환자, 보호자를 대상으로 식물재배와 영양유지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이 가정에 돌아가서도 올바른 식습관, 영양 유지, 위생 관리를 실천하기 위해서다. 현장교육은 캄보디아에서 발병하는 각종 질병을 예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진료부터 입원까지 모든 서비스가 무료인데, 후원만으론 어려움을 느끼진 않나.

“병원의 연간 운영비는 370만달러(약 41억5325만원)다. 다른 병원보다 인건비를 높게 책정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 다양한 전략이 필요했다. 우리의 운영 방식은 세 가지다. 먼저, 개인 기부자의 후원이다. 실제 병원 운영비의 상당 부분은 후원자 3명의 고액 기부로 이뤄진다. 여기에 독일, 싱가포르, 미국, 호주, 일본, 한국, 영국, 중국 등 세계 곳곳의 개인과 NGO, 정부 지원이 더해진다. 둘째는, 캄보디아에 들어와 있는 글로벌 기업과 현지 기업의 단체협약이다. 병원이 회사 직원의 자녀를 지속적으로 치료해주는 대신, 일정 금액의 지원금이 병원으로 들어온다. 셋째는, 컨설팅 비용이다. 다른 병원에 운영 및 관리 노하우를 전수하고 자문료를 받는다.”

(좌)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어린이병원 운영 및 프로젝트 기획을 맡고 있는 의사 겸 디렉터 빌(Bill).(우)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어린이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 모습.
(좌)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어린이병원 운영 및 프로젝트 기획을 맡고 있는 의사 겸 디렉터 빌(Bill).(우)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어린이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 모습.

―앙코르어린이병원이 세운 펀드레이징(Fund-raising) 기준과 방식이 궁금하다.

“명확한 배분과 매칭이 이뤄지지 않으면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우리는 한 프로그램당, 하나의 파트너를 설정하는 원칙을 세웠다. 예를 들어 생리학은 독일과, 외과는 싱가포르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좀 더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기부와 후원이 가능해졌다. 때때로 프로젝트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협력 파트너를 구성하기도 하지만, 가능하면 기본 원칙을 지키려고 한다.”

―부(富)의 정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의료 서비스를 지원하는 무엇인가.

“캄보디아는 사실상 모두가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차등을 둔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감사하게도 공평한 나눔은 또 다른 사랑을 낳았다. 몇 년 전, 우리 병원에서 무료로 심장 수술을 받고 완치한 부유한 아동이 있었다. 얼마 후, 그의 부모가 ‘우리 아이처럼 심장이 아픈 다른 아동들을 위해 써달라’며 1000달러를 들고 왔더라. 이뿐만 아니다. 수술을 받고 완쾌한 여덟 살짜리 아동이 2년 동안 열심히 모은 100달러를 손에 꼭 쥐고 병원에 찾아온 적도 있다. 변변한 옷 한 벌 없는 시골의 가난한 아이였는데, 그 마음이 너무 귀하고 예쁘더라. 무료 진료에 대한 고마움을 더 큰 나눔으로 베푸는 이들이 있기에, 앙코르어린이병원은 다른 병원보다 더 따뜻하고 행복하다.”

―13년 동안 꾸준히 전 세계 후원자들로부터 후원을 받은 원동력은 무엇인가.

“지속 가능한 원조의 해답은 ‘교육’에 있다. 캄보디아에는 의료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시스템이 전무하다. 우리 병원은 전 세계의 유명 의과대학 교수를 초빙해 기술 전수를 실시했다. 현재는 캄보디아의 모든 소아과 의사, 간호사들이 우리의 교육과정을 필수 과목으로 이수할 정도다. 또한 더 투명하게, 더 효율적으로 병원을 운영하려는 노력과 열정은 기부자들에게 신뢰를 줬다.”

―개발도상국에 무료 병원을 세워 국가 전반의 의료체계를 개선하려 할 때, 어떤 점을 꼭 명심해야 할까.

“개발도상국의 의료 공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환자가 가난하기 때문에 의사나 병원이 돈을 벌 수가 없는 구조다. 의료 시스템과 인프라 구축이 어려운 이유다. 그럴수록 기획자(director)와 NGO, 정부 삼자 간의 협력이 중요하다. 정부는 자금제공과 관리를, NGO는 교육을, 기획자는 조율을 담당해 각 분야의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또한 선진국은 원조 효과를 더 장기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앙코르어린이병원이 설립될 당시, 의사들은 모두 외국인으로만 구성됐다. 그러나 10년 후, 이곳의 모든 인력이 캄보디아 의사로 채워질 정도로 성장했다. 당장의 결과를 얻기 위한 성급한 지원은 부작용을 낳는다. 개도국과 선진국 사이에 놓인 저울이 평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단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씨엠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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