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Cover Story] ’10년 후 미래’ 핵심과제 12가지_ ②다문화

다문화 가정의 빛과 그림자

다문화 혜택 전혀 못 받고 한국이 낯설기만 한 ‘리엔씨’
방 밖에는 커다란 자물쇠… 4년 동안 아무 데도 못 가

호강하러 온 한국땅… 남편 퇴근하는 밤 11시까지 방안에서 갇혀 지내
주변 도움의 손길 있지만 남편이 절대 안 받아

시내를 벗어나 한 시간을 달렸다. 도로 양쪽으로 메마른 논이 펼쳐졌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들어가니, 철판과 나무로 덧댄 집들이 모여 있었다. 논두렁 앞쪽으로 파란 지붕을 가진 낡은 집이 눈에 들어왔다. 싸늘한 바람에 낡은 대문이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누구세요?” 문틈 사이로 보인 여성의 눈동자엔 경계심이 가득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몇 번의 대화 끝에 마침내 문이 열렸다.

스무살이 되자마자 밟은 낯선 한국 땅.‘ 소통’의 부재는 다문화 가정에 상처와 부적응을 남기고 있다.
스무살이 되자마자 밟은 낯선 한국 땅.‘ 소통’의 부재는 다문화 가정에 상처와 부적응을 남기고 있다.

신발을 벗고 방 안에 들어서려는데 무언가 발끝을 건드리며 지나갔다. 아궁이에서 흘러나오는 뿌연 연기 밑으로 회색 쥐 한 마리가 보였다. “저는 잘 때 깨요. 쥐가 얼굴을 때려서.” 리엔(가명·24·충남 아산)씨가 경직된 기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4년 됐어요. 한국에 온 지.” 7개월 된 딸 정은이(가명)를 안고, 리엔씨는 또박또박 단어를 곱씹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열아홉 살 무렵, 베트남 또래 친구들이 “호강하러 간다”는 말만 남긴 채 하나 둘 모습을 감췄다. 어디로 간 걸까. “한국으로 시집을 갔대요. 비행기 타고 가서 결혼한다고 다들 부러워했어요. 한국 가는 게 유행 됐어요.” 1년쯤 지나니, 친한 친구 여섯 중 리엔씨만 남았다. “나도 한국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비행기 탔어요.”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낯선 남자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혼중개사무소 직원이었다. 그는 서류가 담긴 갈색 봉투를 건네더니, 멀찍이 떨어져 있는 한 남자를 가리켰다. 한국 소개도, 결혼 교육도 없이 세 사람은 그렇게 공항에서 어색한 인사를 마쳤다.

허물어져 가는 판잣집, 스무살 많은 남편, 괴팍한 시어머니. 상상하던 것과 너무 달랐다. 베트남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낯선 땅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리엔씨는 눈앞이 캄캄했다. “무서웠어요. 돌아가고 싶어도 방법 몰랐어요.”

가장 힘든 건 시어머니와의 관계였다. 물건이 없어지면 무조건 리엔씨 잘못이었다. 이유 없는 구박이 이어졌다. 시어머니는 그녀가 방 밖을 못 나가게 문에 커다란 자물쇠를 걸어뒀다. 일용노동직 남편이 집에 돌아오는 밤 11시까지 리엔씨는 그렇게 방안에 갇혀 소리 없이 울었다.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도 이해하고 싶었지만 도무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도움을 주고자 다가오는 손길은 있었다. 그러나 남편이 허락하지 않았다. 인근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관계자가 답답한 듯 한숨을 푹 쉬었다. “리엔씨의 경우, 신청서 한 장만 작성하면 분유값도 받고 집도 개조할 수 있어요. 그런데 남편 분이 절대 안 받으려 하세요. 지원을 받으려면 동사무소나 기관에 가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데, ‘다문화’란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는 걸 자존심 상해하시거든요.”

각 기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싶고, 베트남 친구도 만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시어머니 눈치도 보이고, 두 딸도 돌봐야 한다. “한국 와서 집 말곤 제대로 간 곳이 없어요.” 리엔씨는 체념한 듯 고개를 푹 숙인다.

한국의 다문화 가족은 25만 명을 넘어섰다. 그에 비례해 다문화 가족을 위한 정부 예산도 1000억여 원으로 대폭 늘어났다. 사회통합을 위한 지원은 계속되는데, 정작 현장에선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10년 다문화 이혼 건수는 1만 4319건으로 매년 5~10%씩 증가하는 추세다. 국내 전체 이혼 건수 중 다문화 이혼이 12.3%를 차지할 정도다. 전문가들은 “가난과 가정파탄을 이유로 다문화 2세 아동들이 버려지고 있다. 가정 안에서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지 않으면, 오랫동안 곪아있던 상처들이 사회 문제로 유발될 것이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중, ‘찰칵’하고 방문이 열렸다. “누구여?” 리엔씨의 시어머니가 굽은 등 뒤로 두 손을 올린 채, 방 안으로 들어왔다. “친구예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무거운 공기를 못 이기고, 도망치듯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돌아오는 기차 안. 문밖까지 나와 기자를 매섭게 쳐다보던 시어머니 눈빛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분명히 멀지 않은 한국 땅인데, 마치 다른 세계에 다녀온 듯했다.

여러 혜택 받으며 한국 생활에 적응한 ‘손금연씨’
한글·부모교육 받을 땐… 시아버지가 아이 돌봐줘

센터에서 한글 교육부터 부모교육·직업교육까지
13살 나이 차 극복하고 행복한 가정 이끌어

“이쪽이에요.” 활기찬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한 여성이 길 저편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얼굴 가득 미소를 담고, 손금연(29·경기 부천시 역곡동)씨는 기자에게 다가와 살며시 팔짱을 꼈다. 함께 골목 아래로 들어섰다. 갈색 유리문을 열자, 현관 앞에서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얼굴을 찡그린 인호(2)군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 왔어. 울지 마.” 금연씨가 인호를 달래며, 기자를 방 안으로 안내했다.

낯설기보다는 새롭다. 두렵기보다는 설렌다. 충분한‘소통’과 적합한‘교육’은 다문화 가정의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만든다.
낯설기보다는 새롭다. 두렵기보다는 설렌다. 충분한‘소통’과 적합한‘교육’은 다문화 가정의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만든다.

금연씨의 고향은 중국 연길이다. 남편을 처음 만난 건 2008년 여름, 연길에서 결혼을 앞둔 친구의 신혼집 청소를 도우러 간 날이었다. 친구의 예비신랑도 회사 동료들을 불러, 새로 장만한 가구를 옮기고 있었다.

“처음부터 남편이 눈에 들어왔어요. 물론 서로 대화는 할 수 없었지만요.” 그녀의 남편은 당시 중국에서 컴퓨터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사전(辭典)을 펼쳐놓고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년 후, 처음 밟은 한국 땅에서 그녀는 행복한 결혼식을 열었다.

한동안은 언어도 통하지 않고, 친구도 없어서 집 밖으로 나가질 않았다. 게다가 결혼 5개월 만에 아기를 갖게 되면서 덜컥 겁이 났다. 출산, 육아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걱정이 돼 어쩔 줄 몰라 하던 금연씨에게 시아버지 이철영(가명)씨가 종이 한 장을 건넸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소개 자료였다. “여기 가서 한글도 배우고, 부모 교육도 받아보거라.”

센터에 가보니 금연씨처럼 중국에서 온 이주여성들이 많았다. 말벗이 생기니 외롭지 않았다. 한국어도 금방 늘었다. “이제 밖에 나가도 무섭지 않아요. 한국 사람들 친절해요.”

문화 차이 때문에 남편과 갈등이 생기진 않느냐고 물었다. 금연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남편이 도와줘서 힘들지 않아요.” 서로 소통하려는 노력 덕분일까. 부부는 13살 나이 차이를 쉽게 극복했다. 중국에서 귀국한 후 남편은 화장품 용기를 만드는 회사에 어렵게 취직이 됐다. 10평 남짓한 집. 중국에서 살 때보다 형편은 어려워졌지만, 그녀는 “충분히 행복하다”며 미소를 보인다.

전자사전을 서로 열심히 두드리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나갈 시간이 됐다. 오늘은 금연씨가 부천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한글 고급반 수업을 듣는 날. 함께 인호군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세 블록을 지나 골목에 들어서니 할아버지 한 분이 손을 내밀었다. 금연씨의 시아버지였다. 남대문에서 작은 가게를 하는 시어머니 대신, 시아버지인 철영씨가 인호를 종종 돌봐주고 있다.

부천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내에 마련된 한글 교실 안이 금세 꽉 들어찼다.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 20여 명의 이주 여성들이 한국어 교재를 손에 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눌하지만 한 글자씩 또박또박 읽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금연씨는 센터에서 진행하는 부모교육, 직업교육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그녀는 “내가 열심히 배워야 인호가 훌륭한 한국 사람이 될 수 있다”며 눈을 반짝였다.

전국에 설치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수는 201개. 결혼이주 여성들은 이곳에서 한국어교육, 가족통합교육, 직업교육, 자조모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한국 문화를 배우고 적응해가고 있다.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다양한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사회적기업 ‘에코팜므’ 박진숙 대표는 “다문화 가정의 성패는 세밀한 단계별 교육 프로그램에 달려있다”며 “한글 교육에서 가족친화교육, 그리고 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실현시킬 수 있는 다양한 직업교육이 단계별로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천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박혜경 팀장은 “다문화 가정 여성들이 문화체험, 나들이, 캠프 등 일회성 야외 프로그램을 선호하는 데 반해, 자녀교육이나 부모관계증진 교육 등 교육 프로그램에는 참여율이 저조하다”며 “다문화 가정에 이러한 ‘교육’의 필요성을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업을 마치고 센터를 나서는 금연씨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한국이랑 또 친해졌어요.” 기자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아산·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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