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당신의 아이가 얼어 죽을 수도 있다면 값싼 텐트 보내겠는가”

긴급구호 현장에 셸터박스 도입한 톰 핸더슨 대표
텐트·식기구·모기장 등 생활 물품 넣은 셸터박스 48시간 내 구호현장 도착
시속 200㎞ 바람 이기고 영하 20~영상 70도 견뎌
비 새고 무너지는 텐트는 도움 안 주는 것만 못해
박스마다 고유번호 부여 최종도착지 웹에 보여줘 기부자에게 신뢰 얻어
정부지원 받지 않고 소액기부 통해 운영 10년간 75개국 도와

톰 핸더슨 셸터박스 대표는 2008년 미 CNN방송 ‘올해의 영웅’에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3월 초 조선일보의 ‘아시안리더십 콘퍼런스’에 참석한 톰 핸더슨 대표.
톰 핸더슨 셸터박스 대표는 2008년 미 CNN방송 ‘올해의 영웅’에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3월 초 조선일보의 ‘아시안리더십 콘퍼런스’에 참석한 톰 핸더슨 대표.

아이티 대지진, 일본 쓰나미 하면 누구나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체육관이나 길거리에 담요 한 장 깔아놓고 앉아있는 피해자들의 초점 없는 눈초리, 구호트럭 앞에 길게 늘어선 줄….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이 모습에 의문을 품은 사나이가 있다. 영국 해군 수색팀 다이버 출신인 톰 핸더슨(62)씨는 1999년 TV를 통해 재난 뉴스를 보면서 ‘왜 이재민들은 구호트럭이 던져주는 물품을 받기 위해 달려들어야 하는가. 왜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모든 걸 잃은 그들이 존엄성까지 잃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품었다.

이것이 긴급구호 전문 NGO인 ‘셸터박스(Shelterbox)’가 탄생한 배경이다.

“TV를 보는 순간, 머릿속에 큰 박스를 떠올렸습니다. 낯선 사람들과 한데 엉켜서 자지 않도록, 자기만의 공간인 텐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요. 그 안에 4인 가족이 생활할 물품을 넣되, 어른 두명이 들고 갈 만큼 너무 크지 않아야 한다고요.”

셸터박스 안에는 텐트와 담요, 식기구, 물 정화시설, 망치, 모기장, 색연필 등이 들어 있다. 이 박스는 24~48시간 내에 지진이나 홍수 등 긴급구호 현장에 도착한다. 2001년 143개의 셸터박스가 인도의 지진현장에 보내졌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열정은 모금 현장을 움직였고, 로터리클럽과 보이스카웃 등에서 재원 마련에 도움을 줬다. 지난 10년 동안 셸터박스의 도움을 받은 사람은 75개국 200만명. 이 단체의 모금 규모는 한 해 9000만파운드(1600억원 규모)에 달한다. 톰 핸더슨씨는 “우리는 정부지원을 받지 않고, 5달러에서 1만달러까지 6만건에 달하는 소액기부를 통해 운영된다”고 했다.

“영국에선 최근 기부가 2% 줄어든 대신, 기부문화가 매우 똑똑해지고 있어요. 과거보다 훨씬 까다롭게 기부할 기관을 선택합니다. 돈이 제대로 쓰이는지에 관심이 많지요. 대신 투명하고 능력 있는 곳을 선택하면 지속적으로 기부합니다. 우리는 셸터박스에 고유번호를 부여해서, 기부자에게 그 고유번호를 알려주고, 이 번호의 최종도착지를 웹사이트를 통해 볼 수 있도록 합니다. 기부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죠.”

 셸터박스는 ‘생명의 박스’다. 갈 곳 없는 이재민들은 셸터박스에서 제공한 텐트에서 길게는 2년까지 산다.

셸터박스는 ‘생명의 박스’다. 갈 곳 없는 이재민들은 셸터박스에서 제공한 텐트에서 길게는 2년까지 산다.

셸터박스의 활동 기준은 ‘존엄성’에 있다. 운송비용은 같기 때문에, 보내는 물품은 반드시 최상의 물품이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빵을 바닥에 던져주는 걸 보고 속이 상했습니다. 존엄성을 생각하고 나눠주고 싶었어요. 이왕 보내는 물품인데 최고의 제품을 보내자고 생각했죠. 저희는 11년 동안 첨단텐트를 개발했어요. 시속 200㎞의 바람도 이겨낼 수 있고, 일반 가족이 2년 동안 살아도 불편함이 없어요. 한번은 중앙아프리카 니제르에 텐트를 보냈는데, 55℃의 고온에 텐트막대 접착제가 녹아버렸어요. 이후 영하 20℃부터 영상 70℃까지 견딜 수 있는 텐트막대를 만들었어요.”

“한 개에 1000달러(110만원)에 달하는 셸터박스 비용이면, 더 많은 긴급구호 이재민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질문에 대해, 톰 핸더슨씨는 “만약 당신의 아이가 극한의 재난상황에 빠져 곧 얼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보면, 저렴한 텐트로 대체하자고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생명을 구하는 문제입니다. 우리의 텐트는 텐트가 아니라, 생명을 구하는 장비입니다. 저도 저렴한 것을 써볼까 고민도 했고, 4분의 1 가격에 값싼 텐트를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6개월 후 비가 새고 무너지면 이것은 부실한 도움일 뿐이죠. 저희가 제공하는 물품은 최소 5년~최대 10년의 내구성을 갖고 있어요. 심지어 텐트에서 2년 동안 사는 경우도 봤어요. 초록색 박스 자체는 물을 받아두는 수조나 아이욕조로 사용하기도 해요. 바퀴를 달아서 수레처럼 쓰기도 하고요.”

셸터박스의 원칙 또 하나는 ‘협업’이다.

셸터박스 내부 물품. 텐트와 담요, 식기구, 물 정화시설, 망치, 모기장, 색연필 등이 있다.
셸터박스 내부 물품. 텐트와 담요, 식기구, 물 정화시설, 망치, 모기장, 색연필 등이 있다.

“저희는 긴급구호 현장의 1차 대응기관이 아닙니다. 때문에 필요하면 유엔, 적십자, 월드비전 등과 협업합니다. 때로 그들이 먼저 요청을 해오기도 하지요. 또 지원할 수 있는 셸터박스에 비해 이재민 수가 많기 때문에, 지역사회 지도자들과 협력합니다. 우리가 단독으로 나눠주지 않아요. 일차적으로 가장 필요한 이재민이 누구일지는 지역지도자들이 잘 압니다. 저희는 ‘여러분이 스스로를 도울 수 있게, 우리가 돕도록 해달라’고 얘기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NGO로서, 짧은 기간에 이렇게 큰 규모로 성장한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영국 속담을 들려줬다. “영국 속담에 ‘어둠 속에서 미소를 지어봐야 아무도 못 본다’는 게 있지요. 우리 단체가 뭘 하는지 홍보하는 게 중요합니다. 지난해 4400건의 기사에 셸터박스가 언급됐어요. 이걸 비용으로 환산하면 100만파운드(1780억원)와 맞먹습니다.”

그는 “미디어는 우리의 친구”라고 윙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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