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일)

“여행금지국에도 긴급구호 의료진 보내야… 韓 국제위상 높아질 것”

[인터뷰] 엠마 캠벨 국경없는의사회 한국사무소 사무총장

“분쟁 지역이나 재난 현장에서 사망자를 줄이려면 의료시스템부터 재건해야 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MSF)의 전문 의료진이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서 긴급 수술과 응급 처치 활동을 벌이는 이유죠. 다만 한국 국적의 활동가는 정부의 엄격한 여행금지 제도 탓에 지원 못하는 지역이 많아요. 정교한 의료 기술을 갖춘 한국 의료진의 도움이 절실한데도 말이죠.”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MSF 한국사무소에서 만난 엠마 캠벨 신임 사무총장은 “한국에서 할 일이 많다”며 입을 뗐다. 신임 사무총장으로 취임한 지 보름만에 만난 자리에서 캠벨 총장은 서툰 한국말로 “한국에서 일하게 돼 너무 기쁘다”며 “한국어가 아직 서툴러 평일 저녁과 주말에 혼자 공부한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리즈대학교에서 법학과 중국어 학사를 취득하고, 런던대학교에서 아시아 정치학으로 석사 학위를 땄다. 이후 호주국립대에서 한국 정치사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에서 한국학 연구·강의를 진행하며 한국에 대한 전문지식과 관심을 쌓아온 친한파 인사다.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국경없는의사회(MSF) 한국사무소에서 엠마 캠벨 신임 사무총장을 만났다. /주민욱 C영상미디어 기자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국경없는의사회(MSF) 한국사무소에서 엠마 캠벨 신임 사무총장을 만났다. /주민욱 C영상미디어 기자

-한국에 대한 관심이 유별나다고 들었습니다.

“하하. 저는 한국을 정말 좋아합니다. 역사가 깊고, 특수성을 가진 나라라고 생각해요. 1996년 중국 베이징으로 1년간 교환학생을 갔을 때 한국인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룸메이트들이 대부분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한국 음식과 문화, 역사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죠. 이때 노래방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웃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이란 나라에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이듬해인 1997년에는 북한을 방문했고, 1998년에는 친구들을 만나러 한국에 갔죠. 남북을 방문하면서 한국의 역사와 정치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다양한 서적을 읽었습니다. 석·박사는 모두 한국과 관련된 전공을 택하기도 했죠.”

-MSF 한국사무소 사무총장 자리도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택한 건가요?

“그렇죠. MSF 한국사무소는 제게 ‘꿈의 직장’이에요. 사무총장 자리가 공석이라는 것을 듣고 바로 지원했습니다. 그동안 비영리·영리 단체에서 관리자 직함으로 쌓아온 다양한 경력을 어필했고, MSF 한국사무소가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큰 역할을 수행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냈어요. 이 자리에 오게 돼 영광입니다.”

캠벨 사무총장은 MSF 한국사무소 부임 이전 MSF 호주사무소에서 구호활동가로 근무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에스와티니·레바논·튀르키예·시에라리온 등에서 에이즈와 결핵, 에볼라에 대응하는 프로젝트를 주도하면서 행정 업무를 담당했다. 또 지난 3년간 호주수도준주사회복지의회(ACTCOSS)의 수장으로서 호주 내 이주민·난민 정책, 사회정의 등에 대해 옹호(어드보커시)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호주 외교부와 국제개발부 예비장관 자문역, 영국계 항공사 케세이퍼시픽에서 관리직을 역임하며 영리·비영리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캠벨 사무총장은 "인도적지원 구호활동가들이 더 많은 국가에서 지원을 펼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여행금지제도·여권법 등에 예외조항을 신설하도록 하는 것이 MSF 한국사무소의 장단기 도전과제"라고 말했다. /주민욱 C영상미디어 기자
캠벨 사무총장은 “인도적지원 구호활동가들이 더 많은 국가에서 지원을 펼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여행금지제도·여권법 등에 예외조항을 신설하도록 하는 것이 MSF 한국사무소의 장단기 도전과제”라고 말했다. /주민욱 C영상미디어 기자

MSF는 무력 분쟁, 전염병 창궐, 자연재해 현장에서 긴급 의료서비스를 지원하는 글로벌 NGO다. 재난 현장에 간이 병원을 설치해 의료품을 제공하고, 각국의 의사·간호사·물리치료사·약사 등을 현장으로 파견한다. 한국사무소는 지난 2012년 개소해 10년 남짓됐다. 지난해 기준 MSF 한국사무소의 후원자 수는 약 21만명, 후원금은 456억원 수준이다.

-지난 8년간 MSF 한국사무소를 이끈 티에리 코펜스 전 사무총장은 대내외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전임자의 성과·업적에 대한 부담도 있을 것 같은데요.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누가 더 잘했느냐를 따지면서 경쟁하는 자리는 아니잖아요. 코펜스 전 사무총장의 성과를 디딤돌 삼아 앞으로 MSF 한국사무소가 국제사회에 얼마만큼 기여할 수 있을지, 후원자 규모를 어떻게 하면 더 키울 수 있을지를 고민해봐야죠.”

-여행금지제도·여권법을 MSF 한국사무소의 장단기 도전과제로 꼽았는데, 이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계획인가요?

“여행금지제도가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니에요. 미국도 자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 위험지역으로 출입국하는 걸 제한하죠. 하지만 미국은 인도적지원을 펼치는 구호활동가들은 예외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어요. 때문에 미국의 구호활동가들은 인도적위기에 처한 국가에서 즉시 긴급구호활동을 펼칠 수 있죠. 한국 정부도 이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인도적지원 단체들의 출입국은 예외적으로 허용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의 뛰어난 의료진과 의료기술, 구호물품 보급역량이 국제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기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한국 정부에 인도적지원의 개념과 중요성, 국제구호활동이 한국의 글로벌 위상을 드높일 수 있음을 알릴 예정입니다. 또 MSF같은 구호단체들이 어떻게 활동가·직원의 안전을 체계적으로 보장하는지도 지속적으로 보여줄 계획입니다.”

-앞으로의 포부를 말해주세요.

“MSF 전체회의나 국제행사를 위해 제네바·파리사무소를 방문했을 때 ‘한국사무소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앞으로 기후위기가 심화하면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민들의 건강·복지는 지대한 영향을 받을 겁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빈곤 불균형이 더 심해질 수도 있어요. 그렇기에 한국사무소 직원들이 계속해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한국의 잠재적인 인도적지원 역량을 발휘해 국제사회 내 한국의 역할을 키우는 게 목표입니다. MSF 한국사무소가 좋은 성과를 내서 다음에 또 인터뷰를 하게 되면, 그땐 한국어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목표도 있답니다(웃음).”

김수연 기자 ye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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