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마음의 병 치료한 후 아이의 아픔 깨달았죠

청소년 교육 생태계를 바꿔라_’우울증 엄마’가 달라졌어요
남편 장사 실패·별거… 술에 의존하는 나날들
구타·무관심했던 엄마, 상담치료 후 변화 가족관계 돈독

“엄마가 달라진 거 많이 느껴요. 예전에는 심하게 많이 때렸는데, 요즘엔 따뜻하게 대해요. 엄마 노력 보면서 나도 잘해야겠다는 생각 해요.”

경옥(가명·46)씨와의 인터뷰 도중 걸려온 진호(가명·16)군의 전화였다. 기자의 질문에 짤막한 답변을 마치고 나서도, 둘의 통화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가족과의 대화가 늘었다는 것. 변화의 긍정적인 신호다.

진호의 첫 가출은 7살 때였다. 처음엔 하룻밤 주변을 배회하는 수준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나흘 동안 집에 안 들어오기도 했다. 공원에서, 공중화장실에서, 주차장 뒤에서 잠을 청하는 날이 늘어갔다. 나쁜 친구과 어울리며, 싸우는 일도 잦았다. 경옥씨는 “너 때문에 힘들어 못살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아이를 때리는 일도 잦아졌다. 진호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경옥씨는 진호와 함께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상담 결과 경옥씨는 우울증, 진호는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판정을 받았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집단상담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동대문구 건강가정지원센터 제공
부모와 자녀가 함께 집단상담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동대문구 건강가정지원센터 제공

변화는 엄마부터 시작됐다. 경옥씨는 “우울증을 치료하고 싶었지만, 정신과 치료가 갖는 사회적인 편견이나 비용 부담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선택한 방법이 ‘상담’이다. 지역가정지원센터, 학교 내 시설, 종교단체 등을 찾아다녔다. “진호가 유치원 때 아빠 장사가 망했어요. 만날 싸우다 결국 별거까지 했죠.” 경옥씨는 “괴로운 마음에 술에 의존했고, 우울증까지 겹쳐 아이를 나 몰라라 했다”며 “상담을 받으면서 ‘진호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미안하다”고 털어놓았다.

동대문구건강가정지원센터의 김은정 상담팀장은 “가출·폭행·절도·학교부적응 등 청소년 문제는 대부분 가정에서 시작된다”며 “상담자 다수가 아이들 문제로 이곳을 찾지만, 결국 부모 상담이나 부부 상담이 주가 된다”고 말했다. 부모가 변화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좋아진다는 것이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하는 가족치료가 필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들의 인식이 낮고 상담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 프로그램 참여율은 낮은 편이다. 서울 은평중학교에서 지역사회교육전문가로 활동하는 김경은 사회복지사는 “어려움을 겪는 아이 중 부모가 조금만 도와주면 쉽게 변할 아이들이 많지만, 부모에게 상담 참여를 권유하면 90% 이상 고사한다”며 “상담받는 것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 간의 집단상담과 부모교육은 부모와 자식을 서로 이해하게 한다. 김은정 상담팀장은 “아이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구타나 학대가 아닌 부모의 무관심”이라며 “문제는 부모님들이 그게 무관심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라고 했다. 본인 입장에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데, 아이에게는 상처가 쌓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 팀장은 “집단 상담이나 역할극을 통해 이들을 소통시켜 가족관계 회복을 도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옥씨가 바로 그 사례다.

“아이의 표정이 너무 밝아지고 부드러워졌어요. 엄마와도 놀아달라고 하고. 많이 싸우던 누나랑도 자기들끼리 속 깊은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서 대견하고 기특해요. 가출이요? 이제 거의 안 하죠. 가끔 친구 집에서 잔다고 하는데 꼭 전화는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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