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Cover Story] 인도 빈곤 현장 르포

하루 한끼 급식과 길거리 학교가 꿈을 꿀 수 있게 해줘
시집갈 때 지참금 필요해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들은 저주라고 생각…
성감별·낙태 성행하고 태어나자마자 죽이기도 해
쓰레기 마을 앞 공터… 길거리 학교에서의 공부가 가난 탈출의 유일한 수단

기자(記者)의 숙명은 모르고 살 수도 있는, 보지 않아도 될 현장을 간접적이나마 겪어 내고 기록하는 것이다.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을 두 달여 취재하며 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화두(話頭)가 바로 이것이었다. 신이 있다면, 내게 이런 현장들을 보게 하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긴 취재의 마지막 일정인 인도를 향하며,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다.

인도의 가난한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달려온 길. 델리 공항의 출입구를 벗어나자, 훅 하는 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퀴퀴한 냄새와 쉴 새 없이 들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 사람들의 싸우듯 시끄러운 목소리가 인도를 실감나게 했다. 10년 전 인도의 한 성냥 공장에서 만났던 라나가 떠올랐다. 12살의 라나는 갓 태어난 동생을 등에 업고 흙바닥에 앉아 성냥을 만들고 있었다. 황 냄새로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운 곳에서 아이는 하루 12시간씩 일한다고 했다. 또 얼마나 많은 라나를 만나게 될까.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22살 엄마는 젖먹이 아이를 안고 쓰레기를 분리하고 있었다. “열심히 벌어 아이를 잘 공부시키는 것”이 엄마의 꿈이다.
22살 엄마는 젖먹이 아이를 안고 쓰레기를 분리하고 있었다. “열심히 벌어 아이를 잘 공부시키는 것”이 엄마의 꿈이다.

마중을 나온 기아대책 김바울 기아봉사단원을 따라, 무슬림 빈민들이 모여 사는 니잠무딘 지역의 모하바트 학교를 찾았다. 20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50명 가까운 아이들이 모여 함께 노래를 부르고 책을 읽고 있었다. 40도가 넘는 기온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작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함께 있으니 숨을 쉬기도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이들은 의연했다. 김바울 기아봉사단원은 “빈민층이 사는 지역엔 변변한 학교도 없어 아이들이 글을 배우기도 어렵다”며 “아이들이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부인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특히 인도에서 “여자 아이들이 공부를 통해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인도는 여자가 지참금을 가지고 시집을 가야 합니다. 보통 20만 루피(500만원) 정도가 필요한데, 한 달 노동자 월급이 6000루피 정도예요. 그래서 여자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저주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태아 성감별과 낙태가 성행하지요.”

여자 아이라는 이유 때문에 부모에게 죽는 경우가 많은 형편이니, 살아남는다 해도 교육의 혜택을 입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기아대책이 이 지역에서 애쓰는 것도, 여자 아이들에 대한 동등한 교육이다. 카스트 제도의 영향력이 아직도 남아 있지만, 공부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점점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만난 13살 만다는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왜 의사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아이는 현실적인 답을 내놨다. “돈을 많이 벌 수 있거든요. 그러면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김바울 기아봉사단원이 귀띔을 해줬다. “1~2등을 하는 아이예요. 하지만 학비를 댈 수 있는 형편이 안 돼서 상급학교로 진학할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철이 너무 일찍 들어버린 아이를 서글퍼할 틈이 없이, 공부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아이의 사정이 딱했다.

또 다른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도시의 극빈층이 모여 산다는 칼레칸 지역의 ‘쓰레기 마을’을 찾았다. 일자리를 찾아 시골에서 하나 둘 옮겨 온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라고 했다. 도시의 쓰레기를 줍고 분리해서 다시 파는 것이 유일한 수익원이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자 악취가 심해 저절로 구역질이 났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맨손과 맨발로 쓰레기를 분리하고 있었다. 22살 반대라는 갓 낳은 젖먹이를 안고 쓰레기를 분리하고 있었다. 어린 엄마는 무슨 희망을 가지고 있을까. “내 아이만큼은 잘 키워서 공부시키고 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바울 기아봉사단원이 ‘길거리 학교’의 아이들과 얘기하고 있다. /기아대책 제공
김바울 기아봉사단원이 ‘길거리 학교’의 아이들과 얘기하고 있다. /기아대책 제공

이들에게 있어, 평생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길거리 학교’다. 학비가 없어서, 혹은 시골에서 몰래 도시로 이주한 탓에 학교를 못 가는 아이들은 오전 시간에 쓰레기 마을 앞 공터에 모여 책을 읽는다. 14살 알리는 “선생님이 되는 꿈을 꾼다”고 했다. 10년 전 만났던 라나와 똑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9살 아이는 “간호사가 꿈”이라고 했다. 기아대책에서 제공하는 하루 한 끼의 급식과 길거리 학교가 이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내일을 꿈꿀 수 있도록 응원하고 있었다.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인도 아이들. 그래도 아이들은 다가와서 손을 잡고 말을 건네고 활짝 웃었다. 조그마한 고통에도 못 견뎌 하는 나를 오히려 위로하는 것처럼.

인도를 떠나며 고통스럽지만, 또 찾게 될 것을 직감했다. 제2, 제3의 라나를 만나고, 그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이 숙명이다.

아이들 돕기에 동참하려면…

▲홈페이지 후원 신청: www.kfhi.or.kr ▲전화 (02)544-9544 ▲계좌: 하나은행, 353-933047-42037(예금주: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ARS: 060-700-0770 (1통화당 2000원)

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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