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허허벌판에 세운 기적의 마을, 빈민 500명을 품다…포스코 베트남 스틸빌리지를 가다

포스코 베트남 스틸빌리지 현장을 가다

 

베트남 호치민에서 100㎞ 떨어진 떤탄현에는 특별한 마을이 있다. 뜨거운 태양과 비를 막아주는 ‘포스코 스틸 빌리지(POSCO Steel Village)’에는 집 없이 쫓겨다니던 주민 500명이 살고 있다. 모두가 입주한 완공식 날, 스틸 빌리지 아이들이 행복한 모습으로 마을 어귀에 모인 모습. ⓒ더나은미래

“딱, 따닥, 딱!”

응우옌티또이(Nguyen Thi Doi·61)씨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방망이를 두드렸다. 초록색 천주머니에 담긴 커다란 얼음 덩어리가 조각조각 깨지는 소리가 났다.

세 번 다시 산다 해도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우리 집이 생기다니, 아직도 꿈 속에 있는 것 같아요.

얼음이 가득 담긴 커피잔을 건네는 그녀의 손엔 굳은살이 가득했다. 응우옌티또이씨는 아들, 딸, 손주를 포함한 열 식구의 가장이다. 염전 위에 나무 잎사귀로 지은 수상가옥이 이들의 집이었다. 비가 올 때마다 무너져내린 집의 나뭇가지를 땔감으로 팔고, 소금을 채취해 끼니를 겨우 해결했다. 뙤약볕 아래에서 일하느라 양쪽 무릎까지 고장난 상황. 살아갈 희망을 잃어가던 그녀는 어느 날 눈이 번쩍 뜨이는 공문을 발견했다. “땅도, 집도 없는 빈민에게 집을 지어준다고 했어요.”

2015년 10월 응우옌티또이씨에겐 방 두 칸짜리 어엿한 집이 생겼다. 그녀는 조금씩 모은 돈으로 자기네 집 거실과 마당을 활용해 구멍가게도 열었다. 과자와 음료수가 전부지만, 매달 150달러를 벌 정도로 생활도 넉넉해졌다.

거실과 마당을 활용해 구멍가게를 연 응우옌티또이씨. ⓒ더나은미래

응우옌티또이씨의 구멍가게 앞은 더위를 식히려 아이스 커피를 찾는 동네 주민들로 북적였다. 한참 주문을 받던 그녀는 “마을 사람들 모두 나처럼 삶이 180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잘 곳을 찾아 떠돌던 아이들에게 삶의 터전을, 끼니조차 해결 못하던 가족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준 이곳은 베트남 호찌민의 붕타우성에 위치한 ‘포스코 스틸 빌리지(POSCO Steel Village)’ 현장이다.

◇현지 니즈 조사·지속적인 사회공헌… 기업의 신뢰도·위상 높여

지난 13일, 베트남 호찌민에서 100㎞ 떨어진 떤탄현에 들어서자, 우거진 나무 사이로 가지런히 솟아난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8910㎡(약 2700평) 규모, 8개 동으로 이뤄진 포스코 스틸 빌리지엔 하늘색 단층 빌라 104채가 나란히 마주보고 있었다.

포스코 스틸빌리지를 하늘에서 본 전경. 8910㎡(약 2700평) 규모의 단층 빌라 104채가 마주보고 있다. ⓒ포스코

이곳엔 불법 철거지역, 산속을 떠돌던 빈민 500여 명(104가구)이 살고 있다. 자기 명의로 된 집이라 예전처럼 쫓겨날 걱정도, 월세 걱정도 없다. 지난달 입주한 응베땅(Ng V Thang·39)씨는 “임시 거주지에서 쫓겨난 뒤로 매일 복권을 팔고 물고기를 손질해도 월세를 부담하기 버거웠다”며 “이젠 딸이 전기 불빛 아래서 밤에도 공부할 수 있다며 기뻐한다”고 말했다.

포스코 스틸빌리지에 입주하기 전 대다수 주민들이 살던 수상가옥의 모습. 오른쪽은 이들이 입주한 스틸빌리지. ⓒ더나은미래, 포스코

포스코가 허허벌판이던 떤탄현에 마을을 조성한 연유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베트남에 대규모 공장을 설립하면서 임직원 자원봉사를 시작한 포스코는 인근 취약계층의 삶을 자연스레 접하게 됐다.

이에 2011년 본격적인 사회공헌을 위해 주민들을 만나며 현지 조사를 한 결과, 주거 문제 해결이 가장 시급한 것으로 나타난 것. 포스코는 그해 12월부터 글로벌 NGO인 ‘해비타트(Habitat)’, 대학생 봉사단 ‘비욘드(Beyond)’와 함께 마을 곳곳 허물어져가는 집을 재건축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온 임직원 및 대학생 봉사자들의 모습을 보고, 포스코 베트남 법인 직원들도 앞다퉈 건축 봉사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해외 법인 중 가장 먼저 포스코1%나눔재단에 급여의 1%를 기부하기도 했다. 그렇게 42채를 완공할 무렵, 베트남 떤탄현 인민위원회로부터 연락이 왔다. ‘포스코의 사회공헌 책임자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시정부와 함께 빈민 주거 개선 사업을 함께 하자는 제안이었다.

나영훈 포스코 ER실 사회공헌그룹 나눔재단섹션 리더는 “2년 넘게 꾸준히 주거 개선 사업을 하는 모습을 보고 포스코를 신뢰하게 됐다고 하더라”면서 “정부가 떤탄현에 마을 부지와 상하수도 인프라를 지원하고, 포스코가 건축 비용과 주택 건립을 맡는 협력 모델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지난 3년간 1500여명의 봉사자들이 포스코 베트남 스틸빌리지 완공을 위해 건축 봉사에 참여했다. ⓒ포스코

정부·기업·NGO·봉사자 협력… 베트남 빈민의 주거 문제 해결

곧장 정부, 기업, NGO 간 TF(태스크포스)가 꾸려졌다. 주민들의 어려움을 가장 가까이서 접해온 해비타트가 입주자 수요 조사를 시작했다. 불법 철거지역 등 빈민가에 안내문을 붙이고, 땅과 집이 없는 주민들로부터 신청을 받았다. 이렇게 선정된 1차 리스트를 들고 베트남 시정부, 포스코, 해비타트는 직접 가정을 방문했다.

현장의 어려움을 눈과 귀로 체감하니 도움이 시급한 이들이 면밀히 파악됐다. 현장 실사를 거쳐 선발된 주민 리스트는 다시 마을 커뮤니티센터·동사무소·지역협의체를 통해 소유하고 있는 땅과 집이 없는지 2차 검증을 했고, 베트남 경찰·국토부를 거쳐 최종 승인을 받았다.

포스코 스틸 빌리지가 완성되기까지 서로의 역량을 모으는 협력은 계속됐다. 포스코그룹 임직원 2만5000여 명은 매월 급여의 1% 나눔(포스코 1%나눔재단)으로 건축비를 지원했고, 베트남 현지법인인 포스코SS비나(SS-VINA)는 이곳에서 생산하는 H형강 등 철강 소재를 공급했다. 포스코그룹 임직원과 대학생 봉사단원은 해비타트의 도움을 받아 주택 건축 봉사에 동참했다. 입주민들도 함께 벽돌을 나르며 봉사자들 곁에서 땀을 닦아줬다.

이렇게 3년간 땀을 흘린 봉사자만 1500여 명에 달한다. 이뿐만 아니다. 설계감리 전문 회사인 포스코 A&C는 열대 몬순 기후에 적합한 주택 모델을 개발, 지붕을 30도 각도로 기울여 자연 통풍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천장에 단열재를 설치해 직사광선을 차단하고 빗소리까지 방지했다.

집이 없는 이들이 모여사는 임시거주지에서 쫓겨났다가 포스코 스틸빌리지로 입주한 응베땅씨 가족. ⓒ더나은미래

마을이 조성되자 자연스레 일자리도 창출됐다. 산속에서 살던 응우옌 레탄(Nguyen le Thanh·35)씨는 재봉틀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하루에 2.5달러씩 번다”면서 “주거가 안정되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더라”고 말했다. 가족이 함께 수퍼, 옷가게 등을 운영하면서 기존 소득보다 3~4배 이상 늘어난 가구도 생겨났다. 김유식 해비타트 해외사업팀장은 “언제든 벽돌을 사서 집 뒤편을 증축할 수 있도록 설계했는데, 벌써 1~2평씩 늘린 가정도 많다”고 덧붙였다. 그야말로 정부, 기업, NGO, 봉사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함께 개도국의 사회문제를 해결한 ‘컬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 사례인 셈.

지난 13일 ‘포스코 스틸 빌리지’ 완공식에 정부, 기업, NGO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응우엔 반 탐 떤딴현 인민위원장, 문병철 주호치민총영사관 영사, 이대우 포스코 노경협의회 전사대표, 응우엔 반 찐 바리아-붕따우성 인민위원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당 민 통 바리아-붕따우성 부인민위원장, 윤형주 한국해비타트 이사장, 곽정식 포스코 ER실장. ⓒ더나은미래

지난 6월 13일, 포스코 스틸 빌리지 완공식은 관계자 300여 명이 모인 축제의 현장이었다. 주민들은 행사장에 마련된 좌석에 빼곡히 앉아, 완공을 축하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이날 행사엔 특별히 임직원 자원봉사자 대표로 최향숙 포스코휴먼스 매니저가 참석, 2년 전 스틸빌리지 건축 봉사를 하며 만났던 입주자 응유옌반꾸앙씨와 감동의 재회를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스틸빌리지 건축 당시 함께 벽돌을 나르며 정을 쌓았던 이들은 몸짓으로, 눈빛으로 못다한 안부를 나눴다. 최 매니저는 “3일 전부터 언니(응유옌반꾸앙)를 만난다는 생각에 잠이 오질 않았다”면서 “허물어가던 집에서 눈물 짓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이렇게 튼튼한 집에서 옷가게까지 열었다는 이야길 들으니 마음이 뭉클하다”고 전했다. 

2년 전 스틸 빌리지 건축 봉사를 하러 떤탄현에 왔던 최향숙 포스코휴먼스 매니저와 입주자 응유옌반꾸앙씨가 감동의 재회를 하는 모습. ⓒ더나은미래
 

응우엔 반 찐 바리아 붕타우성 인민위원장은 “떤탄현의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던 주민들에게 안정적인 주거를 마련해준 포스코와 해비타트에 깊은 감사를 전한다”고 했고, 윤형주 해비타트 이사장은 “이는 단순히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세우는 뜻깊은 프로젝트”라며 스틸 빌리지 주민들의 자립을 응원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포스코1%나눔재단 이사장)은 “정부·기업·NGO 등 모두의 역량이 모인 덕분”이라고 공을 돌리며, “2009년부터 포항·광양·인천 등에서 어르신·시청각장애인·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해 스틸하우스 복지시설을 건립해온 역량과 노하우를 살려, 개도국 주민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공헌을 확산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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