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저신장 장애인과 함께하는 ‘대심땐쓰’ 기획자, 현대무용가 안은미

 “신체적 크기는 마음속 에너지와 비례하지 않아… 키는 작아도 ‘대심大心’”

 

지난 11일, 프레스콜에서 ‘대심땐쓰’ 의 주요 장면을 시연 중인 배우들 ⓒ예술의전당

작은 키에서 내뿜는 에너지는 무대 위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보라색과 은색, 검고 하얀 줄무늬 의상을 입은 10여명의 무용수들이 무대에 등장했다. 흐느적거리는 음악과 함께 시작된 느릿한 움직임. 점차 빨라지는 템포에 맞춰 배우들이 천장을 향해 뛰놀기 시작했다. 격렬하게 몸을 교차하며, 무대를 휘젓던 이들 중 눈에 띄는 무용수 두 명이 있었다. 성인 남성의 3분의 2 정도에 지나지 않는 키, 김범진(26)‧김유남(24) 씨다. 이들은 저신장 장애를앓고 있다. 저신장 장애인은 성인이 됐을 때 키가 약 147.5㎝ 이하인 사람들을 가리킨다.

지난 5월 12일부터 3일 동안 안은미 예술감독의 신작 ‘대심(大心)땐쓰’는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의 무대를 달궜다. 이번 공연은 안은미컴퍼니와 저신장 장애를 가진 무용수들이 함께 만든 무대다. 지난해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꾸린 ‘안심(安心)땐쓰’에 이어, 사회적 소수자들과 소통하려는 취지로 기획됐다. ‘몸은 작지만 마음은 크다’는 뜻에서 ‘대심大心’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무대의 핵심 키워드는 ‘길이’

 

공연을 기획한 안은미(55) 예술감독은 국제적으로 주목 받는 현대무용가이자 예술단체 안은미컴퍼니의 대표다. 대심땐쓰를 통해 신체적 ‘길이’에 상관 없이 인간이 가진 잠재력을 춤으로써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극단에서 활동중인 범진이를 우연히 만났는데 키가 너무 작아서 눈에 띄었죠. 그런데 그 작은 체구에 주체할 수 없이 넘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지난 11일, 공연 프레스콜에서 질의응답 중인 안은미 예술감독 ⓒ예술의전당

‘어떻게 하면 그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끼와 에너지를 우리 사회에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는 안 감독. 안무와 의상, 배경음악까지도 이 고민을 담아내는 데 맞춰졌다.

수직으로 교차한 줄무늬, 4가지 색상이 어우러진 무대의상은 ‘다양함’을 나타낸다. 키큰 무용수들 사이에서 눈에 띄게 짧은 길이의 범진, 유남씨의 줄무늬 의상은 기묘하게 조화를 이뤘다. 안 감독은 “무대를 통해 낮은 높이, 낮은 시선에서 바라본 삶을 느낄 수 있다”며 “우리 사회가 소수자들과 소통하고 공존하는 방법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았으면 했다”고 말했다. 신체적 크기는 정신적 길이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순탄치만은 않던 준비 과정

 

공연에 열중한 배우 김범진씨 ⓒ예술의전당

시작부터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섭외 과정에서부터 애를 먹었다. 저신장장애인은 사회적 편견 때문인지 수줍은 성향의 사람이 많고, 다른 장애에 비해 그 정보가 적은 편이다. 모집 공고를 보고 자발적으로 찾아온 친구들 덕분에 공연을 출발시킬 수 있었다.

연습하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은 계속 발생했다. 저신장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근육통과 관절통을 자주 겪는다. 따라서 비슷한 양을 움직여도 필요로 하는 에너지 소비량이 훨씬 많다.

안은미 예술감독은 “유남이 같은 경우에는 관절 수술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도 연습에 최선을 다했다”며 “그런 열정적인 모습이 함께 하는 우리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었다”고 말했다.

어려움들은 범진‧유남 안에 잠재된 열정과 에너지를 꺾지 못했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현실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도 큰 감동을 선사했다.

“현대무용에서 생소하고 놀라운 도전이자 하나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에너지의 거대함은 신체적 크기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보이는 거죠. 저는 이 두 친구를 한국 현대예술계를 이끌어갈 거두로 성장할 거라 믿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길이’가 존재한다. 신체의 크고 작음, 인식의 길고 짧음, 또는 에너지의 많고 적음까지. 안은미 감독은 대심땐쓰를 통해 하나의 물음을 던진다. 단지 겉으로 보이는 신체적 크기로 사람을, 그리고 사회를 대하고있지 않느냐고. 이 질문에 그는 또한 나름의 대답을 내놓는다. 마음 속 에너지는 신체 사이즈와 비례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우리는 대심大心으로 함께 소통할 수 있다고.

안은미컴퍼니 특유의 재기발랄함과 긍정의 에너지는 언제나 유쾌한 호응을 끌어낸다. ‘안심 – 대심 – 방심’으로 이어지는 ‘땐쓰 3부작’은 이제 본격적으로 소통을 시작했다. 시각장애인이 참여한 ‘안심(安心)땐쓰’는 올해 유럽에서의 공연을 앞두고 있으며, ‘대심땐쓰’는 이미 내년에 프랑스 공연이 확정돼 있다. 성소수자들과 함께하는 ‘방심(放心)땐쓰’ 또한 부지런히 준비 중이다.

 

현지호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7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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