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밀알학교와 봉사자가 만든 20년의 기적, “우리 아이들과 마을이 함께 성장했습니다.”

20년 장기봉사자 김영희씨가 말하는 ‘밀알학교’ 

 

“처음엔 녹록지 않았죠. 간혹 아이들이 할퀴고, 때리고, 머리채를 잡아서 한의원에서 침을 맞기도 했죠.” 

지난 12일 서울 일원동 밀알학교에서 만난 김영희(64) 봉사자가 손가락으로 머리를 문지르며 말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듯 했다. 아프지 않았느냐고 묻자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제 아이들인걸요.
밀알학교 20년 장기 봉사자로 감사패를 받은 김영희씨(오른쪽). ⓒ밀알복지재단

밀알학교(교장 최병우)는 밀알복지재단(이사장 홍정길)이 운영하는 특수학교다. 김씨는 홍정길 밀알복지재단 이사장과의 인연으로 밀알학교 봉사를 시작했다. 그가 다니던 교회의 담임 목사였던 홍 이사장은 1994년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를 세우겠다고 했다. 3년 후 학교 설립 소식을 들은 김씨는 홍 이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목사님의 봉사에 저도 함께하고 싶어요.”

봉사를 시작하고 처음 한 달은 특히 힘들었단다.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울거나 뛰는 등의 행동을 자주 보인다. 초창기에는 봉사 후 집에 돌아가면 머리가 지끈거려 누워있곤 했다. 아이들이 울고 고함치는 소리가 귀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아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몰라서 하는 행동이라 서운하지 않다”면서 이제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정말 소중하다”고 미소지었다.

전화 한통으로 시작된 김씨의 선행은 올해로 20년째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아이들을 향한 그의 애정은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지난 12일, 김씨의 나눔이 세상의 빛을 보았다. 밀알학교 20주년 기념행사에서 졸업생과 학부모 43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우수봉사자로 선정돼 감사패를 수여 받은 것이다. 그는 “오히려 봉사를 함으로써 아이들에게 얻는 게 더 많은 것 같다”면서 “나를 엄마처럼 잘따르고 사랑해주는 아이들의 순수한 눈을 바라볼 때면 너무 행복해서 날아갈 것 같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영광스럽지만 조금 부끄럽다”는 말도 덧붙였다. 자신이 한 일은 식사를 돕거나 화장실에 동행하는 등 사소한 돌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는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칭찬을 받은 것 같다”며 “감사한 만큼 앞으로 더 열심히 아이들을 돌보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밀알학교에서 20년간 봉사활동을 해 온 김영희씨에게 기념패를 전달하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거센 반대 속에 화려하게 피어난 밀알학교 

밀알학교는 지난 20년 간 293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유치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전공과정까지 확대돼 총 32학급으로 운영되고 있다. 57명의 교사와 70여명의 직원 및 보조원이 206명의 장애학생의 교육을 맡고 있다. 발달장애학생을 위한 특수교육의 질을 높이고, 졸업 후 장애학생의 사회적응 및 취업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0년 밀알학교는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특수학교 평가 우수학교 표창을 받았다. 

밀알학교가 20주년의 역사를 담은 연혁집과 교육집을 발간했다 ⓒ밀알복지재단

김씨는 “처음 밀알학교가 세워지던 과정이 생생하다”며 말을 이었다. 1996년 밀알학교 건축 당시, 주민들의 반대는 예상보다 극심했다. 집값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 주민들은 공사장 입구를 봉쇄하고 현장사무소를 점거하는 등 특수학교 설립을 거세게 반대했다. 고함을 치며 몽둥이를 들고 위협하는 주민들에 의해 기공식은 중단됐고, 공사방해는 수일 이어졌다.

“가장 걱정됐던 건 아이들이었어요. 학교가 완공되기까지 인근 교회에서 임시 수업이 진행됐거든요. 발달장애 아이들은 큰 소리에 민감해 울거나 소리를 지를 수 있어요. 칸막이를 치고 수업을 하는 등 환경이 어수선해서 아이들이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참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죠.” 

이 소식을 접한 한 변호사가 자원해 밀알복지재단의 변호를 돕기 시작했고, 주민들을 상대로 공사방해중지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그 해 2월 21일 법원은 장애인 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며 밀알복지재단의 손을 들어줬다. 그렇게 준공까지 꼬박 3년이 걸렸다. 특수학교 설립에 대한 반발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4월 20일 서울시교육청이 장애인의 날을 맞아 서울시에 특수학교 세 곳을 설립했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심해 설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시 지역주민들이 밀알학교 공사현장를 방해하는 모습 ⓒ밀알복지재단

그로부터 20년. 밀알학교는 지역사회를 위한 최고의 문화공간이자 사랑방으로 자리매김했다. 이곳을 찾는건 교육을 받는 장애학생들만이 아니다. 주민들은 밀알학교에서 연중 개방하는 미술관, 음악홀, 베이커리, 카페에 들러 휴식을 취하거나 학교에서 장애아동을 돌보는 자원봉사를 한다. 설립 당시부터 주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아트센터를 짓고, 세라믹팔레스홀, 체육관, 개방형 카페 등을 운영하며 지역 문화공간으로 끊임없이 변신하며 노력해온 결과다. 밀알학교가 장애인 시설에 대한 극심한 님비현상을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이유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넘어서 지역주민의 통합의 장을 마련하는 지역의 명소로 거듭난 것. 김씨는 “20년이란 세월만큼 주민들의 밀알학교에 대한 애정이 계속 자라났다”면서 “카페를 이용하거나 미술관에 왔다가 자연스레 장애아동들을 보게 되면서 편견이 깨졌다는 주민들도 많았고, 장애아동을 돌보는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며 찾아오는 이들이 계속 늘어났다”고 말했다. 

밀알학교 내부 전경 ⓒ밀알복지재단

◇“손자손녀 같은 밀알 아이들 덕분에 내가 행복해”

밀알학교 20주년 기념공연을 보던 김씨가 한 사람을 반가운듯 손짓했다. 이날 행사에서 발달장애 클라리넷 앙상블인 ‘드림위드앙상블’이 축하공연을 선보였다. 김씨와 인사를 나눈 단원은 어릴 때부터 밀알학교에서 그녀의 보살핌을 받아왔던 것. 김씨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면 보람이 느껴진다”면서 “밀알학교 졸업생들은 일반 기업과 보호작업장, 근로작업장 등에서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활동 중” 이라고 설명했다.

밀알학교 20주년 기념식에서 참석 내빈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김 씨가 20년 간 봉사를 이어온 원동력은 아이들이었다. 1997년 밀알학교 개교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봉사활동은 오히려 김씨에겐 “활력소가 됐다”고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를 묻자, “딱 한 명만 꼽기 어렵다”며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처음 만났던 ‘수지’란 아이를 떠올렸다. 

“하루종일 양말 벗는 일만 반복했던 아이였어요. 제가 양말을 신기면 다시 벗고, 또 신기기를 하루종일 반복했죠. 아토피가 심해서 하루종일 긁고 있어서, 그 손을 잡아주고 밥을 먹여주며 정이 많이 들었죠. 그러던 어느 날, 수지를 집에 보내려고 버스에 태운 후에 창 밖에서 손을 흔들었는데 수지가 저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바라보고 반응이 없더라고요. 그때 너무 서운한 마음이 들었는데, 가만히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섭섭해하던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어요. 봉사를 하며 수지를 만난 것에 감사하고, 그 자체로 행복해할 줄 아는 삶을 살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김씨는 “봉사를 하면 행복이 온다”며, “궁금하다면 지금 한 번 시작해보라”고 권유한다. 

“간혹 제가 나이가 많아 아이들이 싫어할까봐 걱정이 됐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할머니’라며 친근하게 저를 부를 때 얼마나 기분이 좋은 지 모릅니다. 할머니가 손주들을 예뻐하는 이유가 따로 있겠어요? 그 자체로 귀하고 사랑스러운 것이죠.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아이들과 만나며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김광연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7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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