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지금 우리가 ‘디아스포라’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 제5회 디아스포라영화제 프로그래머 이혁상 감독

제5회 디아스포라 영화제 기획하는 이혁상 프로그래머 인터뷰

이민자, 난민을 넘어 사회적 소수자 껴안는 ‘디아스포라 영화제’

“‘제 존재 자체가 디아스포라(Diaspora∙이주민) 아니겠느냐’면서 ‘당신의 시각으로 영화제를 꾸려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받았어요. 우리 사회에서 ‘유랑하는 존재’들을 안아주는 영화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맡게 됐어요. 다음 영화 준비하려면 아르바이트도 필요했고요(웃음).”

제 5회 디아스포라 영화제 기획을 총괄한 이혁상<사진> 프로그래머의 말이다. 그를 만난 건, 지난 19일 인천영상위원회 사무실에서였다. 5회를 맞이하는 ‘디아스포라 영화제’는 올해를 기점으로 한층 풍성해졌다. 3일이었던 영화제는 5일로 늘어났고, 상영작도 3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 4년간 ‘영화제 평이 좋았던’ 까닭에 올해부터 인천시 지원 예산이 훌쩍 뛰었기 때문이다. 올해, 영화제 전반을 기획하는 프로그래머로 새롭게 참여하게 된 이혁상 감독은 “‘디아스포라’ 라는 주제로 상영작 50편을 다 채울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제5회 디아스포라 영화제를 기획한 이혁상 프로그래머 ⓒ디아스포라영화제

“규모도 커지고, 새롭게 시작하는 만큼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디아스포라’라고 하면 망명했거나 이주한 난민, 재외 동포만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실은 머물던 공간에서 밀려난 이들, 차별이나 혐오로 인해 주변부에서 떠도는 이들 모두가 우리 시대의 ‘디아스포라’인 셈이거든요. ‘디아스포라’가 생소해 보여도 실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살던 곳을 떠나 온 난민∙탈북민, 재개발이나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뿌리내렸던 ‘공간’에서 떠나야 했던 이들. 그 외에도, 혐오와 차별 시선으로 사회 ‘비주류’로 떠밀리는 이들 모두가 우리 시대의 디아스포라였다.

“‘디아스포라’가 우리와 아주 먼 이야기는 아니거든요. 난민 문제만 해도, 아직은 다른 나라 일 같이 들리겠지만 우리 이야기가 될 날이 머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제3국에서 한국으로 난민 신청한 분들도 늘고 있고, 인천공항에서 억류돼서 승인이 나기만을 기다리는 분들도 많아요. 사회는 다양해지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된 것 같아요. 1년 전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드러났던 여성혐오나 이주 여성에 대한 반감, 성소수자 혐오 등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차별하고, 혐오하잖아요.” 

이번 ‘디아스포라 영화제’의 주제는 ‘환대의 시작’. 그는 “낯설지만 ‘환대’하고 나면, 대화가 시작되고 갈등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주제를 선정하고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데도 세심한 고민이 뒤따랐다. 난민 이야기를 다룬 ‘환대와 연대’, 이주∙노동∙여성을 키워드로 묶은 ‘사라지는 여자들’, 한국전쟁 전후로 타향에서 살아야 했던 한국인들을 담은 ‘코리아 디아스포라’ 등 영화제 코너 하나 하나에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묵직한 질문들을 담아냈다. 일반인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한 자리도 준비했다. 기존 관객들에게 사랑 받았던 대중영화를 디아스포라 시각에서 재해석한 ‘디아스포라의 눈’이나, 팔레스타인 인권변호사나 페미니스트 작가와의 대화 등 “타인과 공존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다양한 판을 깔았다. 그가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담아내고 싶었던 주제는 ‘여성’. 그는 “가장 가까이 있는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곧 다른 소수자에 대한 차별의 시작이라 생각한다”며 “우리 사회 아주 깊은 곳에 깔려있는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도 제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지난해 열렸던 제4회 디아스포라 영화제. 이희원 감독과 정진아 작가의 사이토크 현장. 올해는 지난해보다 훨씬 더 풍성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디아스포라영화제 홈페이지

그 역시도 이 사회의 ‘디아스포라’다. 그는 동성애자 5명의 커밍아웃 이야기를 다룬 자전적인 영화 <종로의 기적> 연출로 주목 받았다. 그는 “페미니즘은 내 삶의 태도고, 영화를 찍는 과정은 일종의 투쟁”이라고도 했다. 영상이론을 배우던 대학원 시절 시작했던 여성주의 인권운동 단체 ‘연분홍치마’에서 활동한 지도 올해로 14년 째다.

“영화 공부하던 친구들 끼리 모여서 페미니즘, 섹슈얼리티 공부하던 스터디모임으로 시작한 게 14년이 된거죠. 페미니즘을 통해 내 정체성을 긍정하게 됐고, 그게 자연히 성소수자, 여성 인권활동으로 이어졌어요. 그런 활동들을 다시 미디어로 기록하면서, 자연스럽게 내 정체성 대한 이야기를 담게 됐어요. 다큐멘터리야 말로 나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방식이잖아요. 그게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잠시 ‘외도(外道)’중인 이혁상 감독. 그는 다음 영화에서 ‘재일조선인’을 다루고자 공부 중이다. 쌍용차, 용산참사, 밀양 송전탑 등 그의 시선은 늘 주변에 머문다.

“차별엔 저항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연대해야죠. 저는 카메라를 들고 싸우지만, 그 안에 있는 활동가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 봐요. 사회 내에 소수자를 그리는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공감대가 조금씩 더 커지다보면, 더불어 살 수 있는 삶의 반경도 넓어질 겁니다. 이번 영화제가 더 많은 이들이 삶의 반경을 넓히는 ‘환대의 시작’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손성원 더나은미래 청년기자 (청세담 7기)

▲ 위 포스터를 누르면 영화제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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