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청년들의 실패를 응원하는 사회를 꿈꾼다

청년 커뮤니티 ‘실패를 즐기는 사람들’ 김성빈 대표 인터뷰

전 세계 누적 다운로드 수가 35억 건에 이를 정도로 큰 인기를 끈 모바일 게임 ‘앵그리버드’. 앵그리버드는 핀란드 게임회사 ‘로비오’가 51번의 실패를 딛고 52번째로 만든 게임이다.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선 배경에는 실패를 손가락질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다. 핀란드에선 매년 10월 13일을 ‘실패의 날(Day for Failure)’로 지정, 이날 만큼은 유명 기업가들뿐만 아니라 네티즌들도 SNS 등을 통해 각자의 실패담을 당당히 공유할 정도다.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52번째 ‘앵그리버드’가 탄생해 비상할 수 있었을까. 여기 한국판 ‘실패의 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가 있다. 주인공은 바로 청년 커뮤니티 ‘실패를 즐기는 사람들(이하 실,사)’의 김성빈(26) 대표.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그를 만나 남다른 ‘실패예찬론’을 들어봤다.

◇후배 따라다니며 알게 된 성공비결로 실패의 장(場)을 만들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의 인생이 바뀐 건 같은 과 후배 한 명을 만나고부터다. “성적표가 C+로 도배된 친구가 어느 날 대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더라고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유심히 관찰했죠. 뭔가 남다른 구석이 있더군요.” 경영학도였던 후배는 ‘소비자의 행동을 직접 관찰하겠다’며 강의실 밖에서 혼자 옷을 팔았다. 입사 지원서도 그냥 내는 법이 없었다. 택배회사 직원으로 위장하고 직접 인사팀에 찾아가 서류를 제출하곤 했다.

 김 대표가 발견한 후배의 성공비결은 하나, 도전의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이를 알게 된 후 그는 듣고 싶은 수업이 있어도 학점 걱정에 수강신청을 망설이던 스스로를 돌아봤다. 주변을 둘러보니 크고 작은 도전 앞에서 주저하는 사람은 자신만이 아니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누구나 다 알죠. 하지만 정작 우리 사회는 무언가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지 않잖아요. 도전하지 않는다고 탓할 게 아니라 실패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후 김 대표는 또래 청년들이 실패 경험담을 털어놓고 서로의 어깨를 토닥일 수 있는 장(場)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2014년 6월 실,사는 그렇게 탄생했다.

◇ 신나게 웃고 떠드는 ‘실패파티’ 통해 고민해결까지

김 대표는 일단 실패를 둘러싼 우울한 이미지를 벗겨내고 싶었다고 한다. “실패를 경험한 뒤에는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깨달음이나 배운 점이 남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축하받을 일이 아닐까요.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는다면 우리끼리 축하해주자!’라는 ‘실패파티’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실패파티에 온 사람들은 각자 두 장의 스티커를 가진다. 파란색 스티커에는 자신이 잘하거나 실패를 극복한 적 있는 분야를 적고, 빨간색 스티커에는 서툴거나 실패를 겪었던 분야를 적는다. 예를 들어 ‘패셔니스타지만 연애에는 영 소질이 없는’ 참가자라면 파란색 패션 스티커와 빨간색 연애 스티커를 지니는 식이다. 참가자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고민과 조언을 나누며 한 분야에서는 선생님이 됐다가 또 다른 분야에서는 학생이 된다. 김 대표는 “실제로 자신의 고민을 해결하고 가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여행을 떠나겠다고 늘 마음만 먹던 참가자가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와 조언을 들은 뒤 용기가 생겼다며 훌쩍 세계 일주를 떠나더군요.”

지난 3월부터 총 3번에 걸쳐 진행된 ‘실패파티’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끈 건 포장마차 형식의 ‘실패포차’였다. 김 대표는 “앞으로도 다양한 형식의 파티를 열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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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빈 ‘실패를 즐기는 사람들’ 대표./실패를 즐기는 사람들 제공

◇ 실패가 허락된 4박 5일간의 여정 ‘실패로드’, 도전의 가치를 깨닫다

김 대표는 나아가 본격적으로 청년들에게 도전할 기회를 제공했다. ‘실패가 허락된 JUST 5 DAYS’라는 슬로건을 내건 ‘실패로드’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지난 7월, 총 24명의 참가자가 8개의 팀을 이뤄 4박 5일 동안 부산·대구·대전·서울을 가로지르는 로드트립을 떠났다.

매일 아침 각 팀에게는 단돈 2만 원의 ‘씨드머니’가 주어졌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이 돈을 불려 의식주를 해결했다. 달고나를 만들어 판 팀부터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면서 숙식을 해결한 사람들까지 도전은 가지각색.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들에 부딪히기도 했다. 김 대표는“부산 바닷가에서 야광 팔찌를 팔아 돈을 벌겠다며 가진 돈을 몽땅 투자한 팀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바닷가에서 물건을 파는 일이 불법이어서 도중에 쫓겨나 돈도 날리고 고생도 꽤나 했다”고 웃었다.

누군가에게는 ‘사서 고생’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참가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김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이상과 현실 사이에 차이는 있었지만 일단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볼 수 있는 ‘멍석’을 깔아주니까 정말 좋았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 어떤 실패도 용인해주는 5일 동안 도전의 가치를 맛본 거죠. 마지막 날 한 참가자가 ‘앞으로는 이런 멍석이 없어도 주저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걸 듣고 정말 뿌듯했어요.” 청년들의 인식변화를 끌어내는 데 성공한 실패로드는 올해 겨울, 일본에서 두 번째 여정을 떠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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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즐기는 사람들’의 김성빈 대표(앞줄 맨 오른쪽)와 ‘실패로드’ 프로젝트 기획단의 모습/실패를 즐기는 사람들 제공

그의 도전은 실.사에서 멈추지 않는다. 작년 9월부터는 새로운 스타트업 ‘whywhy’를 만들었다. 김 대표는 “청년들에게 강연이나 여행 등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문화 기획단체들은 많지만, 그 가운데  whywhy는 경제적인 한계 때문에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단체들을 지원할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에게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묻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한민국 최고의 실패 전문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아마 곧 그렇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에게서는 실패를 ‘즐길 줄 아는’ 자의 당당함과 패기가 물씬 풍겼다.

김소영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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