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사회적 기업의 인프라 지원 중요 자립 돕는 펀드도 만들고 싶어”

사회적기업지원네트워크 정선희 상임이사

미상_사진_사회적기업_정선희상임이사_2011“장기적으로 ‘나’를 (사회에) 투자할 수 있는 일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사단법인 사회적기업지원네트워크의 정선희(51) 상임이사가 기자가 질문할 새도 없이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정 이사는 우리나라에 사회적 기업의 개념을 처음 소개하고 지금의 형태가 되기까지 산파 역할을 한 사람이다.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81학번이었던 그녀는 노동운동에 열심이었다. 근로기준법조차 지켜지지 않고 노동조합 설립 자체도 원천 봉쇄됐던 그 때, 뜻 맞는 사람들과 함께 구로공단, 인천공단, 울산까지 내려가 노동운동을 했다. 하지만 사회주의 몰락은 그녀의 인생을 바꿨다.

서울로 다시 돌아와 대기업에 입사했다. 하지만 평범한 직장 생활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36세가 되던 1996년,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유학 준비에 몰두했다. “남편의 반대가 없었느냐”는 질문에 “평생 든든한 후원자”라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이듬해 아이를 데리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본인의 인생을 통틀어 봤을 때 너무나도 잘한 일이라 자부한다. 아이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는 개념조차 생겨나지 않았던 때 사회적 기업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 이사는 “사회적 기업은 인내를 필요로 하는 페이션트 비즈니스(Patient Business)”라고 말했다. 정부나 시장의 실패로 생기는 영역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창의성으로 사업을 꾸리고, 노동시장에서 통합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포용하기 때문에 일반 기업에 비해 손익분기도 늦게 오고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비즈니스라는 얘기다. 정 이사는 미국 유학 중 인내하는 투자로 사회적 기업을 키워내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형태의 활동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4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우리나라에 돌아온 그는 지인의 사무실에 책상 하나만 놓고 웹사이트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당시까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비영리 관련 정보들을 꾸준히 제시해 나가자, 하나 둘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름다운재단 등 이름 있는 단체에서 교육 요청을 해 왔고, 기업사회공헌 컨설팅도 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수익이 따르면서 직원을 고용하고 책도 내게 됐다.

2004년 발간한 첫 책이 ‘사회적 기업'(다우출판사)이었다. 2011년 현재, 고용노동부 출연 단체인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은 공식 홈페이지에 “빵을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파는 기업”이라고 사회적 기업을 정의하고 있다. 7년 전 정선희 이사가 쓴 130쪽 가량의 소책자에는 이미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반응이 뜨거웠다. 시대를 앞서 가기도 했지만, 타이밍도 한몫했다. 2003년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충격을 받은 정부가 일자리 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던 때였다. “굶는 사람에게 물고기 한 마리를 건네면 하루를 먹고살 수 있지만, 낚싯대와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면 평생을 먹고살 수 있다”며 제시한 미국의 사회적 기업 사례에 비영리단체 뿐만 아니라 정부와 언론도 비상한 관심을 드러냈다.

2007년 마침내 우리나라에서 정부 주도의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시행됐고, 같은 해 정 이사는 사단법인 사회적기업지원네트워크 발족에 참여했다. “최고의 자선은 상대의 자립을 돕는 것”이라는 신념에 공감하는 경영, 법률, IT, 회계/세무, 디자인, 과학/기술, 언론/홍보 등 각 분야의 전문가 18인과 은퇴 전문경영인들이 함께했다.

우리나라 사회적 기업 지원 흐름에 대해 정 이사는 “작년 전반기까지만 하더라도 중앙부처 중심의 육성정책과 직접 지원이 기조였다면, 하반기부터는 지자체로 역할과 무게중심이 옮겨가면서 제도 개선이나 인프라 지원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풀이했다. “긍정적인 변화”라며 사회적 기업에 대한 지원 정책은 “떠 먹여 주는 식이 아니라, 사회적 기업이 물건과 서비스를 팔 수 있는 시장을 만들어주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사회적 기업이 효과를 발휘하는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손익분기를 넘어 성숙단계에 들어선 기업을 대상으로 한 지원책도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적 숫자 늘리기를 벗어나서 중장기적으로 생태계를 만들어나가고 기반을 다져야 할 텐데…”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한 그는 사회적 기업의 가장 중요한 성장 조건으로 자금조달 지원책을 꼽았다.

“요즘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사회적 기업이 정부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얘기한답니다. 제 다음 목표는 그래서 사회적 기업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지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의 ‘사회투자펀드’를 만들어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인 듯했다. 그간 전문가 재능나눔(프로보노) 조직을 만들고 사회적 기업과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온 것도, 1년에 500만원 이상의 고액 기부가 가능한 사람들이 사회적 기업을 위해 ‘기다려주고 지원해주며 후원하는’ 흐름을 만들고 싶어서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회적 기업의 새 바람이 또 한 번 정 이사에게서 시작될 조짐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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