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화)

‘교실에서 찾은 희망’ 5년…학교폭력 예방의 ‘씨앗’ 심다

‘짝하기 싫은 아이’. 이주연(가명·12·경기 수원 상률초 6년)양의 별명이었다. 이양은 수업 중 갑자기 일어나 교실을 돌아다니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쏟아냈다. 그런 이양을 친구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친구들에겐 그저 ‘졸업할 때까지 도와줘야 하는 아이’일 뿐이었다.

하지만 올봄,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계기는 월드비전의 학교 폭력 예방 캠페인 ‘교실에서 찾은 희망’이었다. 학급 친구들이 주제가에 맞춰 춤추는 동안 이양은 피아노 앞에 앉았다. 따라 칠 악보 한 장 없었지만, 친구들의 율동이 시작될 때마다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이양은 정확하게 기억해 음악으로 표현해냈다.

“‘넌 나의 친구야, 소중한 친구야’라는 노래 가사 속에서 서현이의 마음이 들리는 듯했다면 믿으실까요? 친구들과 소통 방법이 조금 달랐기 때문에, 항상 마음을 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우리 아이가 처음으로 온전히 자기 마음을 친구들에게 전달한 것 같아서 영상을 보는 내내 눈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황매진·이주연양 어머니)

학교폭력 예방에 변화의 씨앗을 심은 ‘교실에서 찾은 희망’이 올해로 5주년을 맞았다. 2012년 시작된 이 캠페인은 학교 현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누적 참가자만 12만535명을 기록했다. 책상에 앉아 똑같은 시청각자료를 보던 기존 교육과 확연히 다른 방식 덕분이다. 캠페인 주제가에 맞춰 학급 친구들이 다 같이 춤을 추고 이를 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공유하기만 하면 된다. 이를 위해 작곡가 윤일상은 히트곡 ‘오아시스’의 멜로디를 재능 기부했고, 전국 12개 월드비전 아동권리위원회 어린이들이 직접 가사를 붙여 캠페인 주제가를 만들었다.

지난 5년의 캠페인 효과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됐다. ‘학교 폭력 예방 교육정책과 실효적 방안 탐색 포럼’을 통해서다. ‘학교 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자리였지만, 여느 포럼과 다르게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마치 ‘축제의 장’을 연상케 했다. ‘교찾희’에 참가했던 전국 각지의 초·중·고등학생 100여 명을 비롯한 관계자 200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학교폭력예방 교육정책과 실효적 방안 포럼'에서 축하공연을 펼친 남양주동화중학교 학생들. /월드비전
‘학교폭력예방 교육정책과 실효적 방안 포럼’에서 축하공연을 펼친 남양주동화중학교 학생들. /월드비전

◇존중·성취 경험 통해 성장…차이 이해하는 계기돼

‘교실에서 찾은 희망’ 캠페인 참여 후, 아이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그것은 바로 친구에 대한 ‘공감’과 ‘배려’다. 유튜브에 올릴 영상 제작을 위해, 아이들은 최소 2주에서 최대 9주의 협동 시간을 갖는다. 이 시간 은 학급 구성원의 역량에 상관없이 춤·연주·촬영·출연자 섭외 등 각자의 재능을 활용하는 경험을 제공하고 이는 ‘우리가 함께해냈다’는 공감으로 이어진다.

이화여대 학교폭력예방연구소가 캠페인 참여 학생 2만1666명과 교사 5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실에서 찾은 희망 효과성 연구 조사’에 따르면, 캠페인에 참여하기 전 학급 친구들 사이의 협동·배려심은 평균 57.8점(100점 만점)이었지만, 캠페인 이후에는 그보다 2.87점 오른 60.67점을 기록했다. 친구들과의 ‘정서적 공감’ 점수도 53.44점에서 54.89점으로 올랐다.

“캠페인이 서로의 다름(차이)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다”는 평도 이어졌다. 같은 학급임에도 장애 학생, 다문화 학생 등과 함께 활동하는 시간 자체가 적었던 아이들에게 새로운 성취 경험을 준 덕분이다. 캠페인에 참여한 학급 중 장애 학생이 있는 학급(17%)과 다문화 학생(26.5%)이 있는 학급의 95%가 “캠페인이 아이들에게 서로 배려와 도움을 나누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답했다.

최근 학교 폭력 중 가장 큰 비중(34%)을 차지하는 언어폭력 부문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캠페인 전 학생들의 언어폭력 사용 점수는 33.75점이었으나 함께 영상 제작물을 완성한 이후 언어폭력 사용 점수는 32.56점으로 줄었다. 정시영 교육부 학교생활문화과장은 “그간의 학교 폭력 대책은 전담경찰관 투입, 생활기록부에 가해 학생 조치 기재, CCTV 설치 등 강압적이고 통제적인 방법이었지만 학교 폭력의 유형이 ‘은근한 따돌림’ ‘언어폭력’ 등으로 변화한 만큼 대책도 함께 진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교실에서 찾은 희망’처럼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체험형 예방 활동이 더욱 많아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캠페인을 기획하면서 아이들의 목소리를 담는 데 가장 중점을 뒀습니다. 친구를 향한 이해와 배려의 메시지가 담긴 가사가 대표적이죠. ‘기존 교육이 동영상 위주의 강의 형식이라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의견도 적극 반영해, 춤과 노래라는 예체능 요소를 넣었습니다. 또 캠페인을 학교 전체와 가정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친구, 선생님, 가족과 같이 놀기’ ‘행복한 학교 만들어주는 짝 찾기’ 등의 미션을 추가했습니다. 이런 기획들이 5년간 축적되면서 유의미한 결실을 본 것 같습니다.”(전영순 월드비전 국내사업본부장)

◇학교 폭력 저연령화 심각…학교와 가정 함께해야

/인포그래픽제작 월드비전
/인포그래픽제작 월드비전
/인포그래픽제작 월드비전
/인포그래픽제작 월드비전

교육부의 ‘2016 학교 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 폭력을 입었다고 응답한 학생 중 67.7%가 초등학생이다. 중학생(18.2%)과 고등학생(13.3%)보다 각각 3배 이상 많은 수치다. 초등학교 피해 응답자 중 가장 어린 4학년의 비율은 무려 60.2%를 차지했다. 이유미 청소년학교폭력예방재단 학교 폭력 SOS단장은 “청예단 조사 결과, 초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 학교 폭력을 처음 경험했다는 응답이 무려 81.2%에 달했다”면서 “저학년도 이해하기 쉽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프로그램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학교 폭력 저연령화’를 대비한 캠페인이 부족한 상황에서, ‘교실에서 찾은 희망’은 좋은 벤치마킹 사례가 된다는 것이다. 춤과 노래로 초등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메시지를 전달하고, 학급 단위 활동으로 공동체 의식을 쌓아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캠페인에 참여한 4~6학년 학생들의 98.4%가 “캠페인이 학교 폭력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여형 인성 교육 실천 프로그램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무려 99.5%에 달했다. 효과성을 방증하듯 지난 5년간 이 캠페인에 참가한 초등학생은 10만명(85%)이나 된다. 이날 프로그램 효과성 검증 조사 결과를 발표한 한유경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학교폭력예방연구소장)는 “학교 폭력의 40% 이상이 교실 안에서 이뤄지는 현실에 미뤄, ‘교실에서 찾은 희망’이 교실 내 학교 폭력의 직접적인 해소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일 '학교폭력예방 교육정책과 실효적 방안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토론하고 있다. /월드비전
지난 20일 ‘학교폭력예방 교육정책과 실효적 방안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토론하고 있다. /월드비전

기존의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이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 그쳤다면, 이 캠페인은 교사까지 프로그램의 영역 안으로 포함시켰다. 캠페인에 제출된 동영상을 살펴보면, 교과 담당 교사부터 교장선생님, SPO(학교전담경찰관), 시설관리직원까지 다양한 학교 구성원이 ‘농구하기’ ‘함께 춤추기’ ‘구호 외치기’ 등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참여 교사의 97.9%는 ‘캠페인이 교사의 효능감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고, ‘캠페인을 통해 교사로서 본인이 더 행복해진 것 같다’고 응답한 비율도 97.4%에 달했다. 박주형 경인교대 초등교육과 교수는 “요즘 교사들이 ‘교권도 떨어지고, 수업도 재미없다’는 말을 자주하는데, 캠페인을 통해 교사가 학생에게 다가가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본다”면서 “교원 양성기관 등 특수목적교육기관에서 예비 교사들도 캠페인에 참여할 기회가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황옥경 서울신학대 보육학과 교수는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학교 폭력 피해 역시 모든 마을이 개입돼 있다”면서 “교육부는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을 다각화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을 탄탄하게 하고, 민간에서는 학생들의 정서 함양 및 사회 기술 확산에 기여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숙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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