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서른 살 장애 청년의 고군분투 협동조합 창업기

위즈온협동조합

청년 실질 실업자 100만 시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20대 청년 실업자 수는 44만 8000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1년 전에 비해 10% 가까이 급증한 수치다. 창업을 해도 문제다. 중소기업청의 ‘소상공인 생존율’ 자료에 따르면 창업 후 5년을 버틴 소상공인 10명 중 7명이 문을 닫고 있다. 소기업에 취업을 하더라도, 수년 내에 또 이직을 해야 한다.

“장애 청년들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죠. 인식의 문제도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접근성’의 문제거든요. 사무실에 엘리베이터는 없고 계단만 있는 경우도 많고요. 이런 불리한 요소들을 안고서 취직을 어렵사리 했지만, 몇 년 사이에 회사가 없어지고. 다시 구직 활동을 하고, 또 회사가 없어지는 과정을 3번이나 겪었어요.”

사진_위즈온 협동조합_오영진
위즈온 협동조합의 오영진 대표

오영진(30·지체장애 1급)씨는 퇴행성 근육병(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는 장애 청년이다. 근이영양증은 근육이 약해져 폐근육 활동이 중단되면 사망에 이르는 불치병이다. 오씨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다. 대덕대 웹디자인과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고 1년 6개월만에 5학기 과정을 모두 마치고 과 수석으로 졸업한 오씨지만 사회에 진출하자마자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고스란히 겪었다. 100여개의 회사에 원서를 보냈지만 면접 기회를 준 곳은 오직 3곳뿐. 2006년 가을, 렌즈 회사에서 웹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경영난으로 회사가 문을 닫자, 지난한 구직 활동은 다시 시작됐다. 3번의 구직 과정을 경험한 오씨는 2012년, 사회적기업을 직접 ‘창업’하기로 결심했다. 우리(장애 청년)의 일자리를 우리가 직접 만들겠다는 의미로 말이다.

사진_위즈온 협동조합_201610
각종 대회에서 위즈온이 수상한 상장들

회사의 이름은 ‘위즈온’. ‘우리가 함께 온 세상을 밝히자’는 뜻이다. 위즈온은 홈페이지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웹 에이전시로, 특히 장애인이나 고령자에게 편리한 웹접근성이 높은 홈페이지를 만드는데 강점을 가지고 있다. “처음엔 웹접근성을 지켜나가는 홈페이지를 만드는 모델로 생각했는데, 갈수록 정보접근성을 확장하자는 개념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웹접근성이 잘 갖춰진 홈페이지가 있더라도, 포털 사이트 검색에서는 어떤 홈페이지가 웹접근성이 잘 갖춰진 사이트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최근에 주력하는 것은 장애인에게 필요한 정보를 접근하기 쉬운 방식으로 제공해주는 것. 정보가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형태로 가공하는 일이다. 휠체어를 타고도 출입이 가능한 은행, 식당 등의 정보를 지도에서 보여주거나, 모바일로 대전시내 전동휠체어 급속 충전소 위치를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등의 일이다. 현재, 전동휠체어 급속 충전소 위치는 홈페이지 상에서 주소만 명시되어 있는 정도다.

“이번 휴가 때 처음 제주도를 다녀왔어요. 차를 가지고 배로 다녀왔는데, ‘장애인 여행 지도’ 프로젝트 사전 조사차 다녀온 거예요. 비장애인도 ‘맛집’ 검색하든, 장애인도 똑같거든요. 근데 지금까지 장애인들에게 주어진 정보들을 보면 맛집 수준이 아니라 그저 배 채울 수 있는 곳 정도예요. 혹은 숙박시설도 호텔 위주로만 정리돼있어요. 1박에 30만원, 40만원하는 곳들이요. 먼저 로드뷰로 숙박업소나 식당에 계단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전화 걸어서 또 물어보고, 직접 가서 경험하면서 ‘믿을 수 있는 정보’를 남겼어요. 이런 정보들이 모이게 되면, 장애인들의 생활 반경이 놀랍게 확장될 겁니다.”

사진_위즈온 협동조합_201610
위즈온 협동조합은 대전의 다른 협동조합들과 공유 공간도 사용하고 있다

주요 클라이언트는 사회적경제 동종 업계 종사자로, 60~70%를 차지한다. 오씨가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영업권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고, 법인 수익이 늘면서 하나, 둘씩 상근 직원으로 채용했다. 현재 위즈온의 직원은 6명. 대표인 오씨를 비롯해 조합원 모두 IT 및 디자인 전문성을 가진 중증장애인이다.

위즈온은 2013년 협동조합 기본법이 시행되자마자,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법인 형태를 전환한 곳이기도 하다. 투자 받기도 어렵고, 은행권에서 대출도 어려운데 ‘협동조합’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협동조합 법인은 출자금 한도 내에서만 대출이 가능하다). 오씨는 “내부적인 만족도가 크기 때문”이라 했다. 사람 중심으로 구성된 조직이니만큼, 사람에 대한 투자에도 신경을 쓴다. 도서 구입비나 교육비(워크샵, 콘퍼런스 참석비) 등은 법인에서 전액 지원해주고, 대학 등록금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직원 중 2명이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작년 12월에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회사가 문을 닫을 뻔 했어요. 건물주가 바뀌면서, 사무실을 나가라고 한 거죠. 현금 유동성이 없는 시기라 정말 어려웠는데, 직원분들이 출자금을 추가로 더 내서 보증금을 만들어냈어요. 조합원과 함께 회사를 만들어간다는 것이 협동조합의 가치인 것 같은데, 사실 사업을 진행할 땐 대출이나 투자 등 금융 부분의 제약 사항들이 좀 풀렸으면 좋겠죠.”

오씨의 목표는 ‘사무실을 매입하는 것’이다. 직원들에게 가장 편리한 근무 환경을 만들고 싶어서다. 사실 올해로 창업 4년차인데, 벌써 사무실 이사만 5번이다. 장애인으로 구성된 회사이니만큼, 잦은 사무실 이전은 큰 부담이다. “사무실 구하기 정말 어려워요. 부동산에서 잘 알아봐주지도 않거든요. 저희 같은 경우는 발로 뛰어서 경사로는 있는지, 화장실 턱은 없앨 수 있는지 등 알아봐야하는데᠁ 쉽지 않죠.” 오씨에게 “정부나 지자체, 학교에서 지원하는 창업지원공간은 왜 사용하지 않느냐”고 묻자 “초기 창업할 때는 공간 자체가 부족 햇고, 모 대학교 공간을 사용하다가 리모델링을 했는데 오히려 휠체어가 갈 수 없도록 설계가 돼 다른 공간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누구보다 수많은 장벽을 넘어온 오씨는 “장애인도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저희가 육체적으로는 케어를 받고 있지만, 우리도 사회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랍니다(웃음).”

대전 = 김경하 더나은미래 기자 

* 이 콘텐츠는 더나은미래와 열린책장의 ‘대전 사회적기업 현장 탐방기’ 프로젝트로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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