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토)

“163억 매출, 비결은 정직과 기다림”

계육가공업체 에이스푸드 윤준현 대표 인터뷰

“직원의 90%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하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1년 5개월 정도 아이템을 연구했어요. 먹거리가 미래 산업으로 주목 받던 때라 마늘, 양파, 돼지, 닭 등 웬만한 사업장은 다 다녀봤죠. 상품의 무게, 지속가능성, 시장수요 유통구조 등 다이어그램을 그려놓고 하나씩 지워나갔습니다. 마지막에 남는 게 닭이더라고요. 팔에 힘이 약한 장애인이 다루기에 크기나 무게도 적당하고, 사시사철 먹는 음식에다 보존 기간이 짧아 수요도 유지되고…. 그래서 만든 게 이 회사(에이스푸드)입니다.”

김준영청세담5기_사회적기업_에이스푸드_계육가공업체_장애인고용_2016

경기도 구리시에 위치한 ㈜에이스푸드는 2006년 설립된 닭고기 가공업체다. 2009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회사를 세운 윤준현(53) 대표는 설립 당시 장애인 고용률 90%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창업 10년이 지난 현재, 52명의 직원 가운데 35명이 장애인으로 채워졌다.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70%에 달하는 비율이다. 지난해 매출은 163억원을 기록했다. 우리나라 사회적기업의 평균 매출액인 12억300만원(사회적기업진흥원, 2014)보다 10배 이상 높은 수치다.

“설립 이래로 매출액은 꾸준히 증가했지만 거래 업체 수는 많이 늘어나지 않고 기존 업체의 거래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났어요. 거래처에 신뢰를 주니 우리 쪽으로 거래를 늘려 준거죠. 그러니 거래처를 공격적으로 늘리지 않아도 매출 상승이 가능했어요. 신뢰가 없었으면 진작 망했겠죠.”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넘어서 신뢰를 구축하는 것은 일반 기업보다 배는 힘든 일이었다. 사업 초기에는 장애인이 만든 식품은 위생적이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 때문에 거래가 중단된 적도 있다.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윤 대표는 위생에 더욱 신경을 썼다. 영업 초기에는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인 HACCP 인증을 취득해 거래처에 제품의 안전성을 설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유효했던 것은 계속되는 거래를 통해 제품의 질을 확인시켜 준 것이었다.

“한번은 거래처에 닭고기를 크기에 따라 A, B, C 등급으로 분류해서 납품한 적이 있어요. 직원들이 A 등급 20%, B~C 등급을 80% 정도로 맞춰서 보냈는데 나중에 거래처에서 전화가 왔어요. ‘우리 쪽에서 직접 다시 분류해보니까 보내준 닭 중 A등급이 족히 70%는 되는 것 같은데 이렇게 분류해서 보내면 사장님 회사 망하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장애인 직원 분들이 워낙 정석대로 엄격하게 제품 등급을 구분해서 생긴 해프닝이죠. 그 거래처와는 지금도 오랜 파트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직원의 정직함이 거래처와의 신뢰를 쌓는 기초가 된 거죠.”

김준영청세담5기_윤준형대표_사회적기업_에이스푸드_계육가공업체_장애인고용2_2016

“닭고기 1kg당 20g, 그러니까 딱 2%만 무게를 속인다고 해봐요. 산술적으로 따졌을 때 매출이 150억이라고 하면 3억원이 남아요. 이 사업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회사가 ‘사회적기업’이라는 것을 항상 생각합니다. 내가 순간의 이익에 눈이 멀어버리면, 우리 직원들은 직장을 잃게 돼요. 나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유혹에 흔들릴 때마다 사회적기업이라는 것이 저를 다잡아 줬습니다.”

윤 대표는 에이스푸드를 제대로 된 ‘사회적기업’으로 운영하기 위해 ‘쉽고 빠른’길보다 ‘느려도 오래가는’ 방법을 택했다. 직원 교육도 마찬가지다. 육가공업의 특성상 신입사원이 업무에 익숙해지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고기를 자르는 정육도(精肉刀) 등 위험한 도구를 다루기 때문이다. ‘칼은 위험하니 손대지 말라’고 가정과 학교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교육을 받은 장애인 직원들에게는 더욱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칼을 잡는 데만 8개월이 걸린 직원도 있었다.

윤 대표의 해법은 ‘기다림’이었다. 제대로 칼을 잡을 수 있게 되기까지 작업 과정을 견학하게 하고, 일을 하지 않아도 월급을 꼬박꼬박 챙겨줬다. 직원들이 회사를 안전한 곳으로, 칼을 무섭지 않은 것으로 인식할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사업 초기에 8개월을 손 놓고 기다리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이 있어야 회사가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다고 믿었죠. 요즘 신입사원들은 이틀이면 칼을 잡습니다. 자기와 비슷한 친구들이 칼 들고 일하는 걸 보고 배우기 때문이죠. 10년 전에 제가 기다려줬던 친구들이 이제는 신입사원 교육까지 맡으며 제 역할 이상을 해내고 있는 거죠.”

윤 대표는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터득한 노하우를 예비 사회적기업가들과 공유하고 있다. 한세대학교에서 사회적 경제를 주제로 강의하고, 사회적기업을 창업하려는 사람이 조언을 구하면 퇴근길에 밤 10시라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윤 대표는 현재 경기도 고양시에 에이스푸드처럼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업장을 하나 더 준비하고 있다. 이미 HACCP 인증과 사회적기업 인증을 취득하고, 설비도 다 갖췄다. 이달 내로 본격적으로 생산이 시작될 예정이다.

“좋다고 해도 많이들 안 하니까 제가 하나 더 하려고 합니다. 사회적기업과 장애인 고용에 뜻이있는 예비 창업자들이 저의 노하우를 쉽게 복제할 수 있게 소셜 프랜차이즈 형태로 준비 중이죠. 아쉬운 것은 안정적인 시스템과 네트워크예요. 검증된 시스템을 그대로 보고 베낀다고 해서 시행착오가 없는 건 아니거든요.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시간과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다면, 사회적경제 정착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김준영 더나은미래 청년기자 (청세담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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