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일)

임종 앞둔 환자와 나누는 ‘사랑의 대화’

호스피스 자원봉사단

핑크색 원피스를 입은 네 명의 호스피스가 환자의 침대 발치에 서서 찬송가인 ‘사랑의 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반쯤 눈이 감긴 채 미동도 하지 않던 환자 김인혜(가명·47)씨는 노랫소리를 듣더니 가슴을 들썩이며 눈을 파르르 떨었다. 간이침대에 앉아 있던 환자의 어머니가 일어나 환자의 가슴에 가만히 손을 대며 눈물을 흘렸다.
노래가 끝나자 환자의 얼굴은 평온해졌다. 한 호스피스 자원봉사자가 환자의 귀에 대고 기도의 말을 전하자 환자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호스피스들은 환자복 밖으로 나온 환자의 부은 발목과 손을 쓰다듬고 환자의 어머니에게 안부를 전했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강명진(49)씨는 “환자분들은 살짝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 것 같다”며 살포시 웃었다.

 봄 햇살이 내리쬐던 날,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이미경씨는 환자와 함께 산책을 나와 환자에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호스피스는 환자의 통증을 완화하고 마음을 어루만져 남은 생을 편안하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한다.

봄 햇살이 내리쬐던 날,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이미경씨는 환자와 함께 산책을 나와 환자에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호스피스는 환자의 통증을 완화하고 마음을 어루만져 남은 생을 편안하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한다.

지난 8일 오전 10시,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에는 7명의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이 말기 암 환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16개의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들은 더 이상 치료를 통해 병세가 나아지기 어렵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다. 호스피스는 죽음이 가까워 온 환자에게 연명의술(延命醫術) 대신 통증을 완화하고 평안한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을 말한다. 강남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팀장인 박명희 테레지아 수녀는 “호스피스센터를 ‘죽으러 오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남은 생을 가족들과 함께 편안하게 보내기 위한 곳'”이라며 “환자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의식이 있는 환자만 받는다”고 말했다.

60명의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며 센터를 찾는다. 호스피스 봉사를 하려면 30시간의 교육을 받아야 하고, 처음 3개월 동안은 선배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과 환자를 관찰하는 일만 한다. 환자의 자세를 바꾸거나 옷을 갈아입히는 것도 세심한 교육과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호스피스자원봉사를 시작하면 환자들에게 간간이 말을 건네고 노래를 불러주거나 산책을 시킨다. 환자가 임종을 맞았다는 소식을 들으면 봉사하는 날이 아니라도 장례절차를 돕기도 한다. 환자의 종교에 따라 다른 기도를 하고, 다른 장례절차를 밟기 때문에 호스피스들이 들고 다니는 수첩에는 가톨릭, 개신교의 찬송가와 기도문뿐만 아니라 반야심경 같은 불교 경전도 담겨 있다.

하루에 두세명씩 침대째 목욕실로 들여가 몸을 씻기는 것도 호스피스의 몫이다. “아버님, 지금이 봄이에요, 봄나물 좋아하셔?”라고 붙임성 있게 말을 걸며 위암에 걸린 할아버지의 마른 몸을 씻기던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이미경(49)씨는 “4년 정도 봉사했는데, 이제는 환자도 보호자도 모두 가족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미경씨는 “이미자나 심수봉 노래 같이 평소에 좋아하시던 노래를 불러드리면 아이처럼 좋아하신다”고 덧붙였다.

미상_그래픽_자원봉사_하트_2011환절기인 요즘은 환자들이 임종을 맞는 일이 잦다. 기자가 병원을 찾은 날은 다행히 임종환자가 없었지만, 강명희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는 “1년에 300명 정도 돌아가신다고 하니까 하루에 한 명꼴로 돌아가시는 셈”이라고 말했다. 6년간 호스피스 자원봉사 활동을 해 온 명희씨는 “환자가 뭔가를 부탁했는데 바로 도와주지 못하고 집에 돌아간 날 밤에 임종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너무 안타까웠다”며 “호스피스 봉사를 하면서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으니 곁에 있을 때 항상 최선을 다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된 이종해(51)씨는 “돌아가시는 분을 보면 아직은 우울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지만, 오랜 시간 환자들의 곁을 지키며 죽음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선배들을 보면 나도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각오를 밝혔다.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에서 위로받는 것은 환자뿐만이 아니다. 환자의 오랜 투병을 곁에서 지켜봐 온 환자의 가족들도 이곳에서 마음의 병을 치료받는다. 월·수·금에는 호스피스자원봉사자들이 직접 환자의 가족들을 위한 점심식사도 만든다. 집 밥을 먹은 지 오래인 가족들에게는 이 ‘밥심’이 환자를 돌볼 힘이 된다. 벌써 세 번째 호스피스센터에 입원한 김인혜 환자의 어머니는 “인혜는 지금도 선천적 장애 때문에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들에게만 기적이 생기면 자기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기도하는데, 손자가 며칠 전 처음 대변을 가리기 시작했다”며 “고 2인 녀석이 부분이나마 사람이 됐으니 기뻐야 하는데…”라며 눈물을 훔쳤다.

환자를 떠나보낸 가족이 또 다른 환자를 위로하기 위해 나서기도 한다.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시작한 지 6개월 된 서남희(52)씨는 3년 전 이 병동에서 어머니를 떠나 보냈다. 남희씨는 “어머니께서 50일 정도 이 병원에 계시면서 가족들과 함께 마지막을 잘 정리하고 편안하게 돌아가셨고 나도 긍정적으로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돼 고마운 마음에 봉사를 시작했다”고 했다. 남희씨는 “봉사를 하면서 울면 안 되는데, 환자를 보다 보면 어머니가 생각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때가 있다”며 “우리 어머니처럼 내가 돌보는 환자들도 마음이 충만한 기분으로 생의 마지막을 보냈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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