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가장 용감한 엄마 ‘청소녀미혼모’ 지원 대안학교, ‘자오나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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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마치 엄마가 있는 친정집 같아요.”

지난 5월,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의 ‘자오나학교’에서 만난 이선민(가명‧18)씨가 웃으며 말했다. 자오나학교는 청소녀미혼모(25세 미만) 및 위기청소녀를 위해 주거 및 교육을 무료로 제공하는 국내 최초 대안학교다. 이씨는 2년 전 이곳에 왔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후 쉼터를 떠돌며 과자와 음료수로 허기를 채우다 이가 온통 썩기도 했다는 그녀.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기뻤다’며 아이를 지키고 싶었지만, ‘미혼모’라는 세상의 편견은 홀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따가웠다고 한다. 그 용기를 유일하게 받아준 게 자오나학교였다. 아이와 함께 있을 곳을 수없이 찾다 출산 직전 알게 된 이곳에서 이씨는 ‘인생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선생님들과 함께 지내며 아이를 키우고 양육법을 배우니 ‘좋은 엄마가 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최근엔 회계공부도 시작했어요. 계속 떨어지고 있지만 끝까지 도전할거예요. 아이에게 당당한 엄마가 돼야죠(웃음).”

◇피보다 진한 ‘나눔’으로 미혼모‧위기청소녀들의 부모 돼주는 ‘자오나학교’

자오나학교에 들어서자 교실 문밖에서부터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오전 국‧영‧수 검정고시 대비 수업을 마친 뒤, 아이와 놀아주는 법에 대해 배우는 미혼모 학생들이 둘러앉아 색종이 접기가 한창이었다. 아직 앳된 모습이지만, 모두 육아 베테랑들이다. 이날 오후 수업도 학생들 스스로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고민해 선생님과 논의 끝에 정한 커리큘럼이란다. 이 외에 중국어, 일본어 등 제2외국어부터 인문학까지 자오나학교는 중‧고등 과정 각 2년씩 총 4년 간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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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나 학교 교실과 가까이 위치한 기숙사 내부./청세담 5기 상부상조팀

교실 반대편으로 몇 걸음 걸어가자 침실, 거실부터 부엌까지 갖춘 기숙사에 도착했다. 엄마와 아이가 생활하는 공간을 교실과 가까이에 둬, ‘교육’과 ‘양육’을 편히 병행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강명옥 자오나학교 교장은 “보금자리가 안정돼야 삶도 꾸릴 수 있다”며 “극한의 상황에서도 생명을 선택한 어린 청소녀미혼모들이 다시 미래를 열 수 있는 집같은 학교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이후 2014년 자오나학교가 개교, 현재까지 10여명의 미혼모학생들과 학교 밖 청소녀들에게 부모같은 든든한 울타리가 돼주고 있다.
 
◇1600여명 넘는 후원 모여…‘미혼모’에 대한 사회 편견 여전히 ‘태산’

초기 학교 운영은 쉽지 않았다. 비인가학교이다 보니 정부지원이 전혀 없는데다 학생 모집도 직접 뛰어야했던 것. 강명옥 교장은 “현행법상 미혼모 시설과 청소년 쉼터를 관리하는 주무부처가 달라 정식 인가를 받고 지원금을 받으려면 한쪽을 포기해야 하는데, 모두 귀한 아이들이 힘들더라도 둘 다 끌어안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뜻에 ‘아산나눔재단’, 광고 마케팅 회사 ‘펜타프리드’는 물론 1600여명의 후원자가 십시일반 자오나학교에 도움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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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옥 자오나학교 교장. /청세담 5기 상부상조

지속적인 관심과 신뢰에 아이들은 점점 달라졌다. 처음엔 무서워 혼자 산부인과도 못갔다는 박서민(가명‧20)씨는 이젠 아침마다 이유식 만드는 것은 물론, 메이크업 등 다수의 자격증들을 따며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다. “예전엔 문제가 닥치면 울기부터 했어요. 그런데 자오나학교 선생님들은 항상 옆에 계시면서 ‘괜찮다, 다시 해보자’ 응원해주셨죠. 덕분에 ‘자신감’이라는 걸 처음 느껴봤죠(웃음).” 학교 밖에서 ‘문제아’라고 손가락질 받던 아이들은 이곳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시너지가 된다. 담배를 끊지 못하던 가출청소년은 아이들을 안아보고 싶어 금연에 성공하는 등 ‘남다른 이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미혼모청소녀들은 자녀에게 할머니부터 이모까지 ‘대가족’이 생겨 기쁘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난관은 많다.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건 미혼모에 대한 인식 개선과 지원책 마련. 이를 위해 지난 5월 18일, 서울여대에서는 ‘2016 자오나 토크콘서트’가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 박영미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우리 사회의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지적하며 “저출산국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용기는 그 어떤 경우도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스웨덴처럼 미혼모에 대한 별도 지원이 아니라, 모든 출산을 동등하게 보편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우리나라에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금창호·김소영·김형조·나주예·문정민·이화영·조임성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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