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직원 두 명으로 시작해 60년간 봉사… 이젠 국내 넘어 해외로 뻗는 ‘나눔의 손’

이화여대 사회복지관
대학 최초 지역사회복지관 설립, 통합사례관리 등 한국 복지 기틀 마련

“1년 전 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왔어요. ‘묻지마 폭행’을 당한 아버님이 있는데, 치료비는 물론 방 보증금을 낼 돈이 없어 온 가족이 쫓겨날 위기라는 거예요. 곧바로 집을 방문한 뒤, 협력 기관들과 지원책을 마련했습니다. 더 큰 문제가 발생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죠.”

올해 설립 60주년을 맞은 이대 사회복지관은 지역 밀착형 복지를 실천함과 동시에 대학과 연계해 학문적 연구 발전에도 힘쓰고 있다. /이대 종합사회복지관 제공
올해 설립 60주년을 맞은 이대 사회복지관은 지역 밀착형 복지를 실천함과 동시에 대학과 연계해 학문적 연구 발전에도 힘쓰고 있다. /이대 종합사회복지관 제공

판잣집이 빼곡한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언덕길을 오르며, 이예린 이대 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가 말했다. 20여 분을 계속 걸어 도착한 10여 평의 낡은 반지하 공간. 강정석(50·가명)씨가 아내, 열 살짜리 외동딸과 생활하는 곳이다. 2014년 6월, 괴한에게 습격당한 후 강씨와 가족의 삶은 송두리째 망가졌다. 강씨는 수술이 불가능할 정도로 머리를 크게 다쳤고, 불안 증세로 아내 없이는 집 안에조차 홀로 있지 못했다. 부부 모두 경제 활동을 중단하고 병원을 전전하면서부터, 쌀이 떨어지고 딸은 홀로 방치됐다. 아내 김미란(44·가명)씨는 “‘다 같이 죽을까’ 싶었다”고 한다.

흔들리는 가족의 손을 잡아준 건, 이대 종합사회복지관의 ‘통합 사례 관리’였다. 아내에겐 주기적인 심리 상담이 이뤄졌고, 다양한 후원처를 발굴해 남편의 의료비가 지원되도록 했다. 딸 가영(가명)양에겐 이대생들을 멘토로 선정해 진로 설계와 다양한 체험을 함께 하게 했다. 이예린 복지사는 격주로 집을 찾아 이런 지원이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는지 등 상황 전반을 관리하고 있다. 덕분에 반년 만에 부부는 안정을 되찾아 장사를 다시 시작했다. 항상 풀죽어 있던 딸 가영양도 이제 새 친구를 사귀는 데 망설임이 없을 정도로 자신감이 늘고 밝아졌다.

이대 사회복지관에서 위기 가정을 직접 방문하고 복지관 이외의 대학 및 지역 자원을 통합 지원하는 제도를 시작한 건 1975년, 우리나라 최초 시도였다. 지난 16일 이화 사회복지관 설립 60주년 기념식에서 차흥봉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은 “이화 사회복지의 선도적 실천 결과가 우리나라 사회복지 나무에 큰 밑바탕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대는 1947년 독립 직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던 어수선한 때, 빈곤 등 사회문제를 해결할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국내 대학 최초로 사회복지학과를 개설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6년엔 학교 주변 피란민과 전쟁고아를 돕기 위해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지역사회복지관을 설립하기도 했다. 당시 열악한 재정에도, 초대관장인 이메리 교수는 월급 전부를 복지관에 기부하고 이대생들은 야학을 열어 교육 봉사를 하는 등 교수와 학생들의 자발적 노력으로 운영을 이어갔다. 그러다 1975년, 캐나다아동복지회가 복지관 운영비의 절반을 부담하며 복지관은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대학의 우수한 사회복지 인재들을 영입하면서 전문적이고 다양한 연구와 지식을 현장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영순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당시 가정 방문, 가족 치료, 집단 상담, 지역 사회복지자원 연계 등의 다양한 지원 모델이 개발됐고 현재 복지 프로그램들의 뿌리가 됐다”고 설명했다.

교수 1명과 직원 2명이 건물 하나로 시작한 이화여대 사회복지관은 60년이 흐른 현재,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주요 복지 시설은 6개 기관으로 늘었고 총 인력 규모는 160여 명에 이른다. 국내를 넘어 해외에도 사회복지 모델을 수출하고 있다. 2011년 캄보디아왕립대학교에 ‘캄보디아 이화사회복지센터’를 개소한 것이 대표적이다. 센터에서는 수도 프놈펜의 저소득 가정 어린이와 청소년, 캄풍수프 농촌 주민들을 대상으로 대학생 봉사 활동 및 통합 사례 관리 등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5년간 초등학생의 학교 복귀율이 97%로 높아졌고, 저소득 농가는 소득이 48%나 늘었다. 주성아 센터장은 “극빈층 가정을 만나 아이들 방과후 교실과 부모 교육을 시행했더니, 아이들은 싸움 대신 대화로 문제를 풀고 부모들도 자녀를 학교로 보내는가 하면 교육을 위해 저축하더라”며 “주민들 스스로 강해지고 있다”고 현지의 변화를 전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관 총괄관장은 “앞으로도 선도적이고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시행해 지역과 함께하는 전문 사회복지기관으로 더욱 발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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