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오승훈의 공익마케팅] ② 채리티워터, 비영리 브랜딩의 힘

오승훈의 공익마케팅

브랜딩이란 사람들이 우리와 우리가 아닌 것을 구분하게 해주는 것이다. 애플과 애플이 아닌 것, 코카콜라와 코카콜라가 아닌 것, 제주도와 제주도가 아닌 곳, 난타와 난타가 아닌 공연, 달라이라마와 달라이라마가 아닌 사람, 그리고 당신과 당신이 아닌 사람을, 사람들이 구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브랜딩이다. 다른 말로 정체성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정체성은 존재의 본질을 규명하는 것이고, 브랜딩은 그 본질이 여타 존재의 본질과 다름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채리티워터와 다른 비영리단체가 다른 점은 ‘100% 모델’이다. 신용카드로 100만원을 기부했다 하자. 수수료로 3만원이 빠져나가고 97만원이 기부금 통장에 입금된다. 억울하긴 하지만, 이해 못하는 사람은 없다. 채리티워터는 3만원을 별도의 방법으로 메꾼 다음에, 기부자가 낸 100만원을 온전하게 깨끗한 물 프로젝트에 사용한다. 이것이 ‘100% 모델’이며, 브랜딩이다. 참고로 채리티워터는 기부금 통장과 운영비 통장이 따로 있고, 단체의 운영비는 별도의 펀드레이징으로 충당한다.

왜 이렇게 어려운 길을 선택했을까? 채리티워터의 설립자 ‘스캇 해리슨’은 유흥과 마약에 찌든 클럽 매니저였다. 어느 날 신의 계시를 받은 듯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를 타고 여러 곳을 다니며 의료 봉사를 하는 ‘머시 쉽(Mercy Ship)’에 참여하면서 간단한 치료를 받지 못해 팔을 잃은 사람, 얼굴의 반을 덮는 종양으로 고통받는 소년, 무료 수술을 받기 위해 한 달을 걸어온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그 후로 우연히 마을 우물을 파는 친구를 따라갔다가, 마을 사람들이 웅덩이에서 쓰레기만 건져내고 물을 마시는 장면을 목격했다. 의료상의 치료보다 더 광범위한 임팩트가 있는 물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지구 상의 모든 사람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것을 목적으로, 비영리단체를 만들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설립 초기, 모금에 어려움을 겪던 스캇은 사람들이 기부하지 않는 이유를 고민했다. 자신조차도 기부를 잘 하지 않았던 것은 사람들이 낸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투명하게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채리티워터는 기부금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는지 상세한 내용을 공개한다. 어떤 지역에서 어떤 공법으로 어떤 단체와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그로 인해 몇 명이 깨끗한 물을 마시게 되었는지를 웹사이트, 동영상, 편지, 구글맵, 보고서 등으로 투명하게 공유한다. 한 마디로 ‘당신이 낸 기부금이 어떻게 보람되게 쓰였는지.’ 한눈에 가시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모든 것을 한 마디로 귀결시키는 것이 바로 100%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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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ndan이란 소년은 하얀 면티에 자신이 그림을 그려서 판매하는 쇼핑몰을 운영 중이며, 수익금 100%를 채리티워터에 기부한다. 그만큼 100% 모델은 강력하다

100% 모델의 브랜딩이 강력한 이유는 독특함(Unique)이다. 어떤 비영리단체도 신용카드 수수료까지 채워서 기부금 100%를 목적 활동에 사용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런 비영리단체가 있는 것과는 상관없다. 우리의 머릿속에 그런 곳이 이미 저장되어 있는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우리는 실제의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한 번도 바다를 본 적 없는 사람은 바다를 상상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이제껏 100% 모델을 본 적 없는 점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브랜딩에서 ‘독특함’이란 우리 머릿속 빈 곳에 자리 잡을 수 있는 새로움이다.

독특한 모든 것이 강력하지는 않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브랜드도 관계 속에서 존재할 수 있다. 브랜드가 내게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지, 고객인 나는 브랜드에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이해관계’가 명확히 정의되지 않으면 브랜드와 나는 관계가 생기지 않고, 브랜드는 존재할 수 없다. 브랜딩은 독특하지만,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관계가 생겨야 힘을 발휘한다. 100% 모델은 나의 돈을 소중히 여기고 보람있게 써주는 새로운 관계이다.

브랜딩은 개념이나 구호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것은 우리의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브랜딩은 구호가 아니라 행동의 기준이다. 100% 모델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강력하게 자리 잡은 것은 그것의 독특함과 더불어 그 행동들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채리티워터는 1년 한 번 ‘채리티볼(Charity: Ball)’이라는 대규모 모금 파티를 한다. 아프리카의 사람들처럼 무거운 물통을 들고 런어웨이를 걷고, 참석자들과 후원 조직들이 내놓는 물품 경매도 한다. 2012년의 채리티볼은 하루 만에 300만달러를 모금했고, 8만명의 사람들에게 깨끗한 물을 제공했다. 이 행사에서도 스캇 해리슨의 브랜딩 전략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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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Charity:Ball 행사에서, 316만6300달러를 모금했다는 전광판이 돋보인다. /출처 bizbash.com

‘얼마가 모금되었다’가 아니라, ‘우리가 이만큼 해냈다’라고 얘기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저 파티의 현장에 있었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채리티워터가 300만달러를 모았구나’가 아니라 ‘내가 이만큼 기여했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채리티워터의 말과 행동은 ‘신뢰할 수 있는 조직’에 한 치의 어긋남도 없다.

우리는 흔히 ‘관심이 없다’라는 말을 한다. 관심(關心)의 한자 뜻을 살펴보면, ‘관계하는 마음’이다. 관심은 받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를 살면서도 끊임없이 수요자와 공급자로 관계를 설정하고 관심을 만들어간다.

마케팅은 수요자와 공급자가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을지, 관계와 관심을 만들어가는 도구이자 수단이다. 기업은 상품을 주고 고객은 돈을 준다. 엄마는 사랑을 주고 아이는 삶의 의미를 주며, 선생님은 지식과 지혜를 주고 학생은 보람을 준다. 유권자는 표를 주고 정치인은 올바른 세상을 주어야 하며, 기부자는 기부금을 주고 공익 활동가는 더 나은 세상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마케팅이고, 채리티워터의 브랜딩의 힘이다.

마케터.
세 글자로 저를 소개할 수 있는 그날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마케팅은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쓰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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