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7일(화)

물의 양극화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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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계 물의 날’이다. 유엔은 1992년 11월 개발도상국의 식수공급과 수자원보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년 3월 22일을 세계 물의 날로 제정, 선포했다. 21세기를 사는 지구촌의 물소비는 뚜렷한 ‘양극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지구 한쪽에서는 물이 단순한 ‘식수’를 넘어서 문화코드나 패션의 일부가 되고 있지만 지구 반대편에서는 당장 먹을 물이 없어 죽어가거나 오염된 물 때문에 질병에 걸리고 있다. 편집자 주


빙하水… 고급생수 열풍, 먹는 물에서 ‘문화코드’로

커져가는 물 시장

지난 10일,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 지하 식품 매장에 마련된 ‘워터바’를 찾았다. ‘워터바’는 3년 전 신세계 백화점이 오픈한 워터 카페다. 이곳에선 세계 각국에서 온 생수 100여 종 중 마시고 싶은 물을 골라 여유롭게 마실 수 있다. 워터 카페의 개념과는 다르지만 대부분의 백화점들은 백화점 내 식품매장에 고급수입생수를 파는 코너를 따로 마련해두고 있다.

이날은 워터바 매장에 단 한 병 비치되어 있던 ‘블링’이 팔렸다. 375mL에 7만9000원으로 한국에 들어오는 수입생수 중 가장 비싸다. 이 미국산 생수는 물병에 스와로브스키 고급크리스털이 박혀있다. 미국 유명배우인 패리스 힐튼이 자신의 애완견에게 먹이는 물이라고 해서 화제가 됐다. 매장을 관리하는 박소희(29) 워터어드바이저는 “손님은 블링을 몇 병 더 사고 싶어 하셨는데 1병밖에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셨다”라고 말했다. ‘워터어드바이저’는 다양한 수입 생수 중 손님이 원하는 생수를 찾아 추천하는 역할을 한다. 와인을 골라주는 전문가가 ‘소믈리에’라면 물을 골라주는 전문가는 ‘워터어드바이저’인 셈이다.

워터바에는 이 외에도 빙하를 녹여 만든 캐나다산 생수 ‘버그'(750mL, 6만원)를 비롯한 몇 개 제품들이 열쇠로 걸어 잠근 유리 장식장 안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스워터(375mL, 5500원), 10bc(750mL, 1만5000원)등 냉장고에 진열된 수입생수들도 일반 국산생수 가격의 10~30배에 달했다.

워터바에서 생수는 단순히 목을 축이는 역할을 넘어서 고유의 기능을 갖고 있었다. 아기들을 위한 물인 ‘베이비워터’가 대표적이다. 이 백화점에서 한 시간 거리에 살고 있는 김지연(22)씨는 갓 아이를 낳은 친구에게 선물할 물을 사러 왔다. 김씨는 분유가 잘 녹는 물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워터어드바이저는 “부드럽기로 유명한 캐나다아이스”와 “산소가 많아서 분유가 잘 녹는 오스트리아 생수, 와일드알프 베이비워터”를 추천했다. 김씨는 “선물용이기도 하고 아기가 먹을 물이라 신경 써서 사려고 수입생수만 따로 파는 곳으로 멀리 왔다”며 “수입생수는 국내 생수와 약간 다른 맛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워터바’에서 한 손님이 수입 생수를 고르고 있다. 수입 생수의 가격은 일반 국산 생수의 10~30배다. /류정화 더나은미래 기자
신세계백화점‘워터바’에서 한 손님이 수입 생수를 고르고 있다. 수입 생수의 가격은 일반 국산 생수의 10~30배다. /류정화 더나은미래 기자

수입생수를 갖고 다니는 것은 때로 하나의 문화코드로 읽히기도 한다.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물을 사러 온 최윤주(29)씨는 가장 좋아하는 생수로 프랑스 생수 ‘에비앙’을 꼽았다. 최씨는 “생수를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먹는 편인데, 수입생수는 병이 예뻐서 들고 다니면 특별한 기분이 든다”며 “특히 운동을 하고 나서 수입생수를 먹으면 몸이 건강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좋다”라고 말했다. 박소희 워터어드바이저는 “최근에는 산소나 비타민 등을 첨가한 기능성 생수나 칼슘이나 마그네슘을 첨가해 영양을 강화한 생수가 잘 팔린다”며 “평일 30~40명, 주말 60~70명이 워터바를 찾는데 일주일에 2~3박스씩 사가서 집에 두고 드시는 분들도 꽤 된다”라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워터바를 연 2008년 이후, 매년 평균 1.5배씩 매출액이 늘어나고 있다.

국내 수입생수시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수입생수량은 1만6000t으로, 수입액은 역대 최대치인 790만 달러(89억5000만원)에 달한다. 5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양이다. 수입생수의 평균가격은 원유보다도 비싸다. 지난해 수입생수의 평균 수입가격은 L당 907원으로 2010년 우리나라 평균 원유가격(L당 578원)보다 약 2배 정도 비쌌다.

2006년 기준 600억달러(68조원) 규모에 달하는 전 세계 생수(Bottled water) 시장에서 수입생수들은 만들어질 때부터 고급화 전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버그’는 지난해 캐나다에서 열린 G20에서 각국 정상들이 먹은 물이다. 버그를 수입하는 펠릭스클라비스의 데이비드 황 대표는 “버그는 북극의 빙하를 녹여 만들기 때문에 매년 한국에 들여오는 양 자체가 한정되어 있어 VVIP를 대상으로 판매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라고 말했다.

‘블링’의 경우 가격을 보면 실제 ‘먹는 물’이라고 하기 어렵다. 블링의 한국 브랜드 매니저 윤승원(39)씨는 “한국에는 들어오지 않지만 블링의 다른 제품의 경우 2500달러(280만원) 정도 하는 것도 있다”며 “블링은 처음부터 소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특별한 가치를 표현하기 위한 액세서리로 만들어졌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고급 수입생수를 사는 사람들에게 생수는 단순히 ‘먹는 물’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하나의 수단인 셈이다.

세계 인구 7명 중 1명 오염된 지하수 마신다

저개발국, 한방울 물이 생명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3시간가량 떨어진 다딩 지역 아그라 강가에서 만난 네 명의 여자아이들은 자신의 몸만큼 큰 물통에 3분의 2쯤 물을 채워 집으로 가고 있었다. 식수대에서 집까지는 험한 계곡과 돌길을 왕복 1시간쯤 걸어야 한다고 했다.

“물통에 물을 가득 담으면 집까지 걸어가기가 힘들어서 이만큼만 채웠어요. 우리 가족들이 먹을 물을 하루에 5~6번 정도 길어 나르는 것이 제 일이에요. 학교에 가는 오전 시간을 빼고는 부모님을 도와야 해요.” 가장 어린 라와트(8)는 수줍어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그라 강가를 따라 띄엄띄엄 형성된 마을들은 2~3개 마을이 하나의 수도를 공유하고 있었다. 수도 하나를 여러 개의 마을이 공유하고 있으니, 아이들과 여자들은 몇 시간씩 걸어서 물을 운반해야 한다. 마을과 마을의 경계에는 큰 돌이 가로막고 있었다. 이 지역 학교 교장선생님인 사누카시 알레(30)는 “수도를 가진 마을 사람들이 옆 마을 사람들이 넘어오지 말라는 뜻으로 건기에 돌로 막아놓은 흔적”이라며, “건기에는 물 때문에 싸움이 나기도 하고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저개발국 어린이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식수대로 물을 길으러 가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려면 하루에 2L의 물이 필요하다. /뉴시스
저개발국 어린이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식수대로 물을 길으러 가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려면 하루에 2L의 물이 필요하다. /뉴시스

저개발국 사람들은 물 때문에 생명과 직결되는 위기를 겪고 있다. 전 세계 197개국 중 깨끗한 식수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세계 평균(87%) 이하인 58개국은 모두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 몰려 있다. 건기와 우기가 반복되는 열악한 기후 조건이 이들 세 지역의 특징이다. 이들 지역은 물관리 설비와 인프라가 부족해 식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13%인 8억8400만 명이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있다. 일곱 명 중 한 명이 흙탕물과 다름없는 우물, 비소 등 독성물질로 오염된 지하수를 먹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국가인 부르키나파소의 예그리소 지역은 건기가 되면 평균 50도가 넘어가지만 마실 물도, 씻을 수 있는 물도 없다. 지역에 단 하나뿐인 우물은 바닥이 드러나 있고, 개울에는 물이 흐른 흔적조차 없다.

국제개발NGO 기아대책 서혜경 기아봉사단원은 “부르키나파소에는 상하수도가 있지만, 5000여 명이 공동수도 하나로 생활하다 보니 물이 나올 때보다 나오지 않을 때가 더 많다”며 “한 달 월급이 5만원 남짓한 나라에서 1L들이 생수 한 통이 300~500세파프랑(750~1000원)이라 가난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땅 위에 고여 있는 흙탕물을 마셔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다”라고 말했다.

물이 부족한 지역에서 생기는 또 하나의 문제는 오염된 물을 통해 전염되는 수인성 질병(水因性疾病)이다. 유엔인간계발연구보고서(UN HDR)에 따르면 수인성 질병 때문에 20초에 1명꼴로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도심의 슬럼가에서는 30가구 정도가 수돗가 하나와 5개의 재래식 화장실을 공유한다. 화장실은 항상 사람들의 배설물로 가득 차 있는데 우기가 되면 여기에 빗물이 스며들어 배설물이 흘러넘친다. 배설물은 식수까지 오염시켜 질병을 유발한다.

이 지역 아이들이 영양실조 다음으로 많이 앓는 질병이 장티푸스와 열병인 것은 이 때문이다. 장티푸스와 열병은 대표적인 수인성 질병으로, 선진국 사람들은 거의 걸리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5년간 매년 220만 명이 오염된 물로 인한 설사로 사망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최소한의 물만 공급되면 설사병 환자 수는 지금의 4분의 1로 줄어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의 급격한 기후변화로 물 문제는 지구촌 전체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2010년 유엔환경계획(UNEP)은 지금의 추세라면 2025년이 되면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물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물 스트레스’ 지역에, 18억 명은 물이 아예 없는 지역에 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저개발국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둘 수만은 없는 이유다.
※ 저개발국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선물하려면 이곳으로 연락주세요.

유니세프(www.unicef.or.kr), 02-723-8215
기아대책(www.kfhi.or.kr), 02-544-9544
굿네이버스(www.gni.kr), 1599-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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