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쓰레기로 상반기에만 60억원 매출, ‘이큐브랩’ 권순범 대표

권순범(사진 첫째 줄 왼쪽에서 셋째)대표와 '이큐브랩' 직원들. 권 대표를 포함, 4명이 시작했던 이큐브랩은 설립 5년만에 직원이 25명으로 늘었다. /이큐브랩 제공
권순범(사진 첫째 줄 왼쪽에서 셋째)대표와 ‘이큐브랩’ 직원들. 권 대표를 포함, 4명이 시작했던 이큐브랩은 설립 5년만에 직원이 25명으로 늘었다. /이큐브랩 제공

“밤이 깊어지면 신촌 길거리 쓰레기통이 꽉 차 흘러넘쳤죠. ‘누군가 꾹꾹 밟아주기만 하면 좋겠다’싶었어요.”

2010년, 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 3학년 권순범 학생은 신촌 밤거리가 더러워서 못참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밤 늦은 시간 환경미화원들이 모두 퇴근하면 신촌이 쓰레기통으로 변합니다. 모두 더럽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연대와 신촌을 사랑했던 마산 출신 청년 엔지니어 지망생은 ‘뭐 어려운 일이냐 레버(지렛대)를 달아 쓰레기를 자동으로 눌러버리자’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현장조사에 나섰습니다. 한 달 간 새벽마다 환경미화원들을 따라 거리를 치우면서 쓰레기 치우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뒤 그는 사회적 기업에 컨설팅 해주는 봉사단체에서 만난 이승재(29)씨 등 3명의 공대생들과 쓰레기 처리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순탄한 길을 걸은 것은 아닙니다. “좋게 말해 수 많은 불량품 나쁘게 말하면 쓰레기를 만들었습니다. 너무 쉽게 봤습니다.”

도전과 실패를 되풀이 한 끝에 이들은 ‘태양광 압축 쓰레기통’을 개발,  쓰레기 처리 전문 기술 벤처 ‘이큐브랩’을 설립했습니다. 이후 약 5년이 흘렀고 현재 이큐브랩의 상반기 매출 예상 규모는 약 60억원에 달합니다. 영국, 콜롬비아 등 25개국에 수출도 합니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권 대표는 어떻게 쓰레기통을 돈통으로 바꿨을까요?    

이큐브랩의 태양광 쓰레기통 '클린큐브'는 (왼쪽부터) 서울 종로구, 영국, 콜롬비아 등 국내를 포함 총 26개 국가에서 쓰이고 있다./이큐브랩 제공
이큐브랩의 태양광 쓰레기통 ‘클린큐브’는 (왼쪽부터) 서울 종로구, 영국, 콜롬비아 등 국내를 포함 총 26개 국가에 설치됐다. /이큐브랩 제공

◇하숙방 공장 삼아… 출시까지 꼬박 2년
 
공대생이었던 권 대표는 학교에서 배운 ‘태양광’ 발전을 떠올렸습니다. 비용도, 인력도 필요 없는 태양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해 내용물을 압축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책에서 읽었을 때와 달리 실제 제작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실패가 계속 이어졌죠. “청계천 기계 골목만 가면 다 만들어지는 줄 알았어요.” 권 대표는 개발을 시작했던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기계 제작하면 청계천. 청계천에 가서 만들어 달라고 하면 물건이 뚝딱 나올 것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결국 외관만 제작해와 내부 부품은 직접 만들기로 합니다. 권 대표가 하숙하던 원룸을 첫 공장으로 삼아 시제품을 만듭니다. 150kg 되는 기계가 방 한 칸을 가득 차지한 탓에, 몸 하나를 겨우 넣고 웅크린 채 작업을 했습니다. 초기엔 작동 때마다 삐거덕 소리를 내며 곧 폭발할 것처럼 불안했습니다.

불침번을 서가며 테스트만 수백 번을 했고, 돈이 없어 지게차 대신 맨손으로 기계를 들어 나르기도 했습니다. “비 오는 날 20톤(t) 트럭 한가득 기계를 실었지만 우리 작품이니 힘든 줄도 몰랐죠. 정작 가장 힘들었던 건, ‘다른 일 해보는 게 어떠냐’는 말을 들을 때였습니다. 벤처기업에 돈을 대주는 투자자들을 만나니 너희들 팀 구성이 좋으니 쓰레기통 말고 다른 것을 만들어보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우린 쓰레기에만 매달렸습니다.”

이큐브랩이 개발한 태양광 쓰레기통 '클린큐브'의 내외부 모습 /이큐브랩 제공
이큐브랩이 개발한 태양광 쓰레기통 ‘클린큐브’의 내외부 모습. /이큐브랩 제공

2년간 기술 개발에 매달린 끝에 태양광 배터리와 모터를 활용, 500㎏의 힘으로 쓰레기를 최대 8분의 1까지 압축하는  쓰레기통, ‘클린큐브’를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지금의 ‘이큐브랩’을 설립했습니다. ‘클린큐브’ 기술을 바탕으로 중소기업청과 에너지관리공단 등의 지원 사업에 공모해 모은 5000여만원이 첫 자본금이었습니다.

◇유럽까지 퍼지는 이큐브랩의 기술력

2013년 말 첫 매출이 나옵니다. 당시 한화케미칼이 태양광 사업에 적극 투자한다는 소식을 들은 이큐브랩은 태양광 쓰레기통을 활용한 CSR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덕분에 첫 매출 1억원을 달성했습니다.

“한화케미칼은 탄탄한 기술력에도 불구, 대학생들이 잘 모르는 회사였어요. 우리 제품을 대학마다 설치해 회사 인지도는 물론 대학생 창업에 투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보라는 설득이 통한 거죠.”

쓰레기통 60개가 연세대, 동국대 등 서울 주요 대학에 깔렸습니다. 입소문이 나면서 쓰레기 처리 비용에 고민하던 지자체가 구입 문의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현재 서울 종로구와 마포구, 대구 중구, 제주시  등 전국 주요 도시 중심가에 이큐브랩의 태양광 쓰레기통 300개가 작동 중입니다. 

해외 반응은 더 뜨겁습니다. 권 대표는 “2013년부터 매년 10회 이상 미국, 호주, 홍콩 등 해외 박람회에서 발품을 판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유럽에서 관심이 높습니다. 일찍부터 쓰레기 처리를 민영화한 유럽에서는 태양광 쓰레기통으로 쓰레기를 압축, 처리 횟수를 줄이면 인건비가 줄어듭니다. 게다가 쓰레기 수거 차량 운행 횟수를 줄일 수도 있습니다. 비용이 확 줄어드는 것입니다.

2013년,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환경박람회 ‘폴루텍(Pollutec)’에서 당시 프랑스 환경부 장관 필리페 마틴(Phillippe Martin)은 이큐브랩 부스를 직접 찾아 기술력을 극찬했습니다. 덕분에 현재 프랑스는 물론 영국과 네덜란드 등 유럽 10여개국에 태양광 쓰레기통을 수출하고 있습니다.

① 2013년 폴루텍(Pollutec) 박람회에서 필리페 마틴(Phillippe Martin) 전 프랑스 환경부 장관(사진 왼쪽에서 둘째)이 이큐브랩 부스를 찾아 설명을 듣는 모습. 이 박람회에서 이큐브랩은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혁신적 기술을 가진 회사에게만 수여하는 '이노베이션 배지(innovation Badge)를 획득했다. ②이큐브랩의 네덜란드 파트너가 계약을 체결하는 모습. 이큐브랩은 10여개국에 파트너 회사를 두고 현지 영업 활동을 펼치고 있다./이큐브랩 제공
① 2013년 폴루텍(Pollutec) 박람회에서 필리페 마틴(Phillippe Martin) 전 프랑스 환경부 장관(사진 왼쪽에서 둘째)이 이큐브랩 부스를 찾아 설명을 듣는 모습. 이 박람회에서 이큐브랩은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혁신적 기술을 가진 회사에게만 수여하는 ‘이노베이션 뱃지(innovation Badge)를 획득했다. ②이큐브랩의 네덜란드 파트너가 계약을 체결하는 모습. 이큐브랩은 10여개국에 파트너 회사를 두고 현지 영업 활동을 펼치고 있다./이큐브랩 제공

태양광 쓰레기통에 이어 권 대표는 2014년  쓰레기통에 부착할 수 있는 센서를 개발, 제품에 적용했습니다. 센서는 쓰레기양을 실시간으로 측정, 이를 인터넷으로 스마트폰에 전송해 쓰레기통마다 내부 상황을 실시간 손안에서 알 수 있게 한 것이지요. 이른바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한 것입니다. 덕분에 환경미화원들은 모든 쓰레기통을 일일이 확인할 필요가 없고, 테이터를 한 번에 모아 쓰레기가 많이 생기는 곳과 적게 생기는 곳을 한눈에 알아보고 관리할 수 있죠.

센서 '클린캡'은 어느 쓰레기통에나 부착 가능, 사물인터넷(IoT)로 실시간 쓰레기통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이큐브랩 제공
센서 ‘클린캡’은 어느 쓰레기통에나 부착 가능, 사물인터넷(IoT)로 실시간 쓰레기통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이큐브랩 제공

권 대표는 “최근엔 쓰레기통 센서를 공유기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해 인터넷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신흥국가들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 쓰레기통이 인터넷 공유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는 “기존 제품을 조금씩 발전시켜 가는 재미가 크다”고 웃었습니다.
    
◇해마다 연 매출 5배씩 성장…“창업, 주저 말고 도전해봐야”

회사는 2015년 10억여원을 매출을 냈습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6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매출은 주로 수출에서 나옵니다. 3월엔 미국 북동부 델라웨어주에 법인을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권 대표는 “아이템보다 중요한 것이 실행력”이라며 청년들에게 당당히 창업에 도전해보라고 조언합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잘 몰라서’였던 것 같아요. 이렇게 어려운 줄 알았다면 시작도 못 했을 겁니다. 처음엔 네트워크도, 자산도, 노하우도 부족했어요. 하지만 부딪혀보니, 생각보다 세상을 빨리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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