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3일(월)

스무 살이 되었다, 살 곳을 잃었다

홀로서기 막막한 그룹홈 퇴소자들
現 그룹홈 제도 ‘만 18세 퇴소’ 떠날 시기에 취업·진학 안되면 갈 곳 없어져 자립 자체가 불가능
자립지원금 평균 100만~500만원 ‘0원’인 지자체 3곳이나 돼 임대주택 정책은 ‘그림의 떡’ 퇴소 청소년 도울 자립요원도 全無

매년 2월 졸업 시즌, 스무 살 고등학교 졸업생들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사회로 나온다. 하지만 가정을 떠나 아동보호기관인 그룹홈에서 생활해왔던 아이들은 걱정이 많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만 18세가 되면 그룹홈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기반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룹홈을 떠나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스무 살 그룹홈 퇴소자들을 만나 그들의 고민을 들었다. 편집자 주


최정훈군은 그룹홈에서 자립해 요리사의 꿈을 꾸고 있다. 최군은 그룹홈 퇴소 아동 중 드물게 자립을 잘한 사례다.
최정훈군은 그룹홈에서 자립해 요리사의 꿈을 꾸고 있다. 최군은 그룹홈 퇴소 아동 중 드물게 자립을 잘한 사례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에서 최정훈(20)군을 만났다. 좁은 골목을 한참이나 지나서 만난 최군은 자신이 사는 대여섯 평 남짓한 옥탑방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방문을 열자 강아지가 뛰어왔다. 최군은 강아지를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예전부터 자립하면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어요. 이름은 맹꽁이인데,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서 걱정이지만 생명이 있으니 버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저도 어릴 때부터 버려지고 누군가에게 보내져서 한곳에 정착하지 못했거든요.”

최군은 지난달 그룹홈에서 나와 자립했다. 그룹홈은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가정과 같은 주거환경에서 보호·양육하는 아동보호기관으로 만 18세가 되면 공식적으로 퇴소하도록 되어 있다. 작년 여름에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 졸업장을 딴 최군은 3월부터 근처에 있는 요리 전문학교에 진학할 계획이다. 최군은 요리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전문 요리사가 될 꿈을 꾸고 있다.

최군의 자립이 가능했던 것은 안산시가 올해부터 지급할 예정인 자립지원금 500만원 덕택이다. 그는 자립지원금을 받으면 갚을 요량으로 방 보증금 500만원을 대출받았다. 최군이 사는 그룹홈 ‘들꽃피는마을’을 운영하는 사단법인 ‘들꽃피는세상’은 그룹홈 퇴소자에게 무담보 소액 신용대출을 해주고 있다. 월세 30만원과 생활비는 지난 일 년간 피자가게에서 매일 8시간씩 풀타임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충당하고 있다. 기자가 최군을 칭찬하자 최군은 “지금까지는 괜찮아 보이겠지만 만약 시 자립지원금이 안 나오면 지금 당장 빚더미에 앉게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룹홈을 퇴소할 때 200만원이 된 ‘디딤씨앗통장(아동양육시설에서 보호되는 아동이나 보호자, 후원자가 매월 일정금액을 저축하면 지자체가 3만원 이내에서 같은 금액을 적립해주는 통장)’을 받기는 했지만, 그 돈은 고스란히 요리전문학교 학비로 나갔다.

그래도 최군은 그룹홈을 떠나야 하는 청소년들 중 드물게 자립을 잘한 사례다. 그룹홈에서의 자립은 전적으로 아이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어 그룹홈에서 퇴소하는 시기에 맞춰 취업을 하거나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면 어려움을 겪게 된다. 취업을 하면 당장 방을 구해 나가 살며 월세라도 낼 수 있고, 대학에 합격하면 장학금을 받거나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든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기 십상이다.

2010년을 기준으로 전국 397개 그룹홈은 모두 2713명의 아동을 보호하고 있다. 그룹홈은 아동을 건강하게 길러내 자립시키는 것이 목적이지만, 자립을 돕는 제도는 미흡하다. 퇴소할 때 지방자치단체별로 지급하는 자립지원금 100만~500만원과 ‘디딤씨앗통장’이 전부다. 하지만 디딤씨앗통장은 활용도가 떨어지는 상황이다. 그룹홈에 입소하는 아동은 기초생활수급자이기 때문에 정기 후원자가 따로 있거나 아동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다음에야 디딤씨앗통장에 매달 일정 금액을 저금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룹홈을 떠날 때 지급되는 자립지원금이 사실상 그룹홈 퇴소자들에게 유일한 희망인 셈이다. 문제는 이 자립지원금을 지방자치단체에서 지급하다 보니 지역마다 그 액수가 천차만별이라는 것(표 참조). 2010년 기준으로 서울과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는 최대 500만원을 지급했지만 지자체 예산이 부족한 충남, 광주 등 일부 지역에서는 100만원을 지급했다. 인천·대구·전남처럼 아예 자립지원금을 지급하지 않는 곳도 있다. 지자체 예산이 열악한 지역에 사는 그룹홈 아동들은 자립하기가 더 어려운 셈이다.

그림=이동운 기자 dulana@chosun.com
그림=이동운 기자 dulana@chosun.com

그룹홈을 떠나 자립하는 아동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주거와 학비를 마련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주거의 경우 L H 공사가 그룹홈 등 아동보호시설 퇴소자가 공공임대주택에 전세로 입주하려고 할 때 우선순위를 주고 있다. 그러나 공공임대주택의 물량이 적고 주택 거래시기와 장소가 그룹홈 퇴소자의 필요와 어긋나는 경우가 많아 거의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학비는 그룹홈 퇴소 직후 교육 기관에 진학하면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주는 학비감면 혜택을 볼 수 있어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자립을 하지 못하고 원래 가정으로 돌아가면 수급자 지정이 어려워져 추후에 다시 대학에 진학하려고 해도 학비감면 혜택을 받기 어렵다.

보육원 등 대규모로 아동을 양육하는 시설과 달리 그룹홈에는 ‘자립전담요원’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각 시설에 있는 자립전담요원은 아이들의 자립상담을 도맡고 아이들이 시설을 떠난 후에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 조순실 이사장은 “그룹홈은 아동복지법 16조에 의거한 아동복지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자립전담요원이 없다는 게 큰 문제”라며 “그룹홈은 7명이 정원인 만큼 몇 개 그룹홈을 지역별로 묶어서 자립전담요원을 두고 그룹홈 거주 청소년에 대한 자립준비 교육을 전문화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이사장은 또 “그룹홈에서 퇴소한 청소년들이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도록 주거, 교육, 취업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지원체계를 정책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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