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화)

일본은 6만1676원, 한국은 1813원… 말뿐인 아동보호 정책

16개 지방자치단체 아동학대 예방 체계 점검

올해 아동학대 예방 예산 185억원
작년보다 67억원 줄어들어

예산도 정부·지자체 절반씩 부담…
지역별 편성액 4배까지 차이

전국 아동보호 전문기관 55곳
상담원 1인 최대 2만6000명 담당

교대근무 등 제도 없어 이직 잦아

아동 학대 예방은 ‘민간 복지’의 영역일까, ‘정부 정책’의 영역일까. 현재 대한민국 정책에는 아동을 보호할 예산도, 인력도 담겨 있지 않다. 더나은미래가 만난 현장 전문가 25명은 “아동 학대 문제만큼은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원영이 사건을 비롯해 지난해 12월부터 수면 위로 떠오르는 아동 학대 사건들은 국가가 아동 학대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예견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나은미래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설치된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 16곳(세종특별자치시는 충청남도에 포함)을 전수조사하며, 아동 학대 관련 인프라 체계를 긴급 재점검했다. 편집자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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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학대 예방 예산 지자체별 최대 4배 차이…국가가 부담해야

2016년 아동 학대 예방 예산은 185억원. 지난해(252억원)보다 26.5%나 감소했다. 보건복지부는 애초에 503억원의 예산을 요구했지만, 기획재정부는 오히려 전년 대비 67억원을 깎아버렸다. 아동 학대 신고 건수가 늘고 학대 피해 아동이 급증한 현장의 목소리와는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2014년 51개 아동보호전문기관(현재 55개)을 통해 신고·접수된 아동 학대 사례는 1만7791건이다. 전년 대비 30%나 늘었다. 한 현장 전문가는 “올해 미래창조과학부의 ‘창조경제’ 관련 예산이 1302억원인데, 아동 학대 예산은 그에 비해 6분의 1 수준”이라고 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어떨까. 이웃나라 일본의 아동 학대 예방 예산은 약 1조3588억원. 한국보다 무려 73배 많다. 일본은 아동 인구(2203만명) 수 대비, 아동 한 명당 6만1676원의 예산이 쓰인다. 반면, 한국에서 태어난 아동들(1026만명)에겐 1인당 겨우 1813원이 쓰인다.

이 예산마저도 안정적이지 않다. 복지부 일반회계가 아닌,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무부)과 ‘복권기금'(기재부)에서 충당된다. 지난해 ‘노인’과 ‘장애인’ 예산은 10년 만에 국고 사업으로 환수됐지만, ‘아동’은 쏙 빠졌다. 대신 아동 학대 예방 예산은 국가와 지방자지단체가 50대50으로 나눠 분담한다. 대한민국 정책에서 아동은 여전히 후순위임을 방증한다.

이렇다 보니 지역별 편차도 크다. 더나은미래가 16개 지자체를 전수조사한 결과, 아동 1인당 가장 적은 예산을 편성한 곳은 광주광역시(1500원), 가장 많은 예산을 편성한 곳은 강원도(6940원)로 최대 4배 이상 차이가 났다. 가천대 사회복지학과 안재진 교수는 “아동이 태어난 지역에 따라 차별을 받을 수는 없다”면서 “지자체가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설치 주체라는 것은 국가가 지자체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자체별로 예산 편성에 대한 부담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컸다. 아동 학대 특례법이 실시된 후 신고·학대 사례가 쏟아지면서 추가 예산 편성 요청도 빗발치고 있는 상황. 대전 지역 관계자는 “아동보호 전문기관을 추가로 증설할 때는 목돈이 들어간다”며 “현재는 추가 증설할 때도 국비 50, 지방비 50으로 마련하고 있는데 이때만큼은 중앙에서 많은 비율의 예산을 지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기 지역 담당 공무원도 “아무리 인력이 부족하고 보호기관 증설이 필요하더라도 지차제 돈만으로는 어렵다”고 말했다. 전남의 한 관계자는 “농어촌 비중이 높아 재정자립도가 매우 낮은 편인데, 중앙에서 내려온 가이드대로 절반을 부담하다 보면 예산이 부족해 실지 다른 사업은 거의 못 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 25일, 아동학대 예방 예산 80억을 긴급 지원하기로 밝혔다. 하지만 현장 반응은 싸늘하다. 한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이번 예산도 범피기금에서 책정한다는 데 안정적인 재원이 아니다”면서 “지난해보다 67억이나 예산을 깎은 부작용에 대한 생색내기용밖에 보이질 않는다”고 지적했다. 80억원은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 55곳의 상담원 2~3명 충원에 그치는 수준. 이마저도 지자체 매칭 예산이라 한계는 여전하다.

조선일보그래픽_그래픽_지방자치단체_아동학대_2016

 

◇”더 이상 못 하겠다”며 현장 떠나는 상담원… 인력 확충과 처우 개선부터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업무량과 상담원 처우 또한 ‘위험’ 수준이다. 현재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상담원 수는 522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한국과 아동 인구 규모가 비슷한 미국 캘리포니아주(917만여명) 상담원 4932명의 10%에도 못 미친다. 지역 아동보호 전문기관 55곳이 담당하는 아동 인구 수도 제각각이다. 광주광역시에는 아동보호 전문기관 1곳이 33만8155명을 돌보는데, 전라북도에서는 아동보호 전문기관 3곳에서 37만4704명을 담당한다. 기관당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상담원 수는 평균 12~15명 선. 상담원 1인이 최소 3902명(제주)부터 최대 2만6011명(광주)까지 아동을 관할한다(기관당 13명 기준 추산).

인력 부족으로, 아동 학대 관련 공조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충북의 한 아동보호 전문기관과 공조하고 있는 경찰 관계자 P씨는 “특례법에 따라 경찰이 (아동보호 전문기관) 상담원과 즉시 동행해야 하는데, 상담 인력이 너무 부족하고 관할 지역이 넓어 같이 출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서 “청주부터 음성까지 관할하다 보니 현장까지 오는 데만 평균 1시간 이상 걸린다”고 했다. 아동보호 전문기관 한 곳당 공조하는 경찰서·파출소는 평균 50곳이다. 서울가정법원 권양희 판사는 “아동 학대에 대한 동일한 기준이 없어 아동보호 전문기관, 경찰, 검찰 등 공조하는 기관 사이에 판단도 굉장히 다르다”면서 “협력 체계도 복잡하고 지자체별 편차도 심한 만큼 국가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증가하는 업무량에 비해, 교대 근무도 없고, 호봉제도 인정되지 않아 종사자들의 이직률이 높은 것도 문제다. 2014년 중앙 아동보호 전문기관 조사 자료에 의하면, 상담원들의 평균 근속 연수는 2년 10개월이다. 대부분이 채 3년이 되기 전에 현장을 떠난다. 아동보호 전문기관 관계자 Y씨는 “경찰들도 교대 근무를 하는데 지금은 상담원들만 배제됐다”면서 “아동 학대 현장은 폭언이나 협박, 물리적인 폭력까지 오고가는 특수한 현장이니만큼 종사자들의 처우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선희 서울여대 특수치료전문대 교수는 “엄청난 업무량을 소화해야 하는 것은 물론, 폭력적인 현장에 나가면서 많은 상담원이 대리외상 증후군을 겪고 있다”면서 “학대 아동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현장을 떠나가지 않도록 상담원들을 위한 전문적인 심리치료와 지원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아동 학대 터지면 말만 시끌시끌, 뒤에서는 나 몰라라?

조선일보그래픽_그래픽_아동학대_말말말_2016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민간에 위탁해놓고, 그나마 필요한 예산조차 적절하게 지원하고 있지 않다. 아동보호 전문기관은 사회복지 현장 중에서도 매우 위험하고 열악한 업무 환경이다. 특별한 사명감이 없으면 어느 누가 이 사업을 선뜻 수행하려고 하겠나.”(지역 아동보호 전문기관 현장 관계자)

“정치권은 매번 말만 앞세운다. 대한민국은 아동 학대 방임 국가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아동 학대 현장 전문가 K씨)

반면 정부는 아동 학대 사건이 터질 때마다 말만 앞세웠다. 2014년 초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이 잇따라 터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4월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우리 아이 한 명 한 명을 잘 키워내는 일이 우리 미래를 위해 중요한 일인 만큼 아동 학대는 더 이상 가정의 문제가 아닌 명백한 사회 범죄행위”라고 밝혔다.

그 후 약 2년이 흘렀다. 평택에서는 한 아이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고, 또다시 국민은 공분했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아동 학대 조기 발견부터 사후 보고까지 근본적인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으며, 황교인 국무총리도 지난 22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앞으로는 끔찍한 아동 학대와 사망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8년 ‘영훈이 사건(영훈이 누나는 부모에게 맞다가 숨진 후 암매장됐고, 영훈이 또한 심하게 맞은 상태로 발견됨)’으로 2000년 아동복지법이 만들어졌고, 2013년 ‘서현이 사건(울산에서 계모의 학대로 갈비뼈 18대가 부러져 사망함)’으로 그해 아동 학대 특례법이 만들어졌다. 아동 학대 사건이 크게 하나 터져야만, 국가가 움직이는 모양새다.

정부는 29일, ‘아동정책조정위원회’를 열어 아동 학대 종합 대책을 발표한다. 아동 학대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될지, 이번에도 말뿐인 잔치로 끝날지 지켜봐야 하는 시점이다. 

김경하·오민아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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