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반죽부터 다른 ‘특별한 피자’… 아픈 아이들에게 추억되길”

레시피 기부

PKU 환아들을 위해 특별한 피자를 굽고 있는 유병규 셰프./매일유업 제공
PKU 환아들을 위해 특별한 피자를 굽고 있는 유병규 셰프./매일유업 제공

 “우와~. 피자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요? 세 조각이나 먹었어요. 이런 맛은 처음이에요(웃음).”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더 키친 살바토레 쿠오모’. 태어나 처음으로 피자를 맛본 이진우(가명·10)군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빵 위에 빨간 토마토소스와 치즈가 듬뿍 담긴 평범한 피자처럼 보이지만, 진우군을 위해 반죽 단계부터 ‘맞춤형’으로 만든 특별한 피자였다.

 진우군은 또래 아이들보다 10㎝ 이상 작다. 태어날 때부터 특정 효소가 부족해 단백질 등 영양소가 분해되지 못하고 몸에 독으로 쌓이는 ‘선천성 대사 이상 증후군(PKU)’이란 병 때문이다. 엄마 젖은 물론 밀가루, 심지어 쌀밥조차 먹어보지 못했다. 영양을 최소화한 탓에, 맛이 없는 특수 분유나 저단백쌀(전분미)이 주식이다.

 이런 진우군을 위해 맞춤형 피자를 만든 이는 ‘더 키친 살바토레 쿠오모’ 한국 총괄셰프인 유병규(37)씨. 한 요리 예능 프로그램에서 우리나라 3대 피자 맛집으로 꼽힐 만큼 유명한 인물이다. 이날 유 셰프는 맞춤형 피자 외에도 영양 샐러드, 저단백쌀을 이용한 연어 리소토, 특수 분유로 만든 아이스크림까지 총 4가지 맞춤 코스 요리를 선보였다. 덕분에 진우를 포함해 11명의 환아는 가족들과 생애 첫 외식 나들이를 즐겼다. 진우군의 어머니 진미경(40)씨는 “매일 아이가 먹지 못하게 막느라 전쟁 같았는데, 오늘은 ‘마음껏 먹어도 된다’고 말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울먹였다.

 유병규 셰프가 PKU 환아와 가족들을 초대해 특별한 식사 대접을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 레스토랑의 공동 운영자인 매일유업에서 오랫동안 지원해온 PKU 환아들의 가장 큰 소원인 ‘가족 외식’을 이뤄주고 싶다며 그에게 재능 기부를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이야기를 듣자마자 어릴 적 주말마다 가족끼리 외식하러 갔던 단골 곰탕집이 생각나더라고요(웃음). 아픈 아이들도 ‘인생의 추억’으로 내 음식을 떠올리면 얼마나 멋질까 상상해보고 단번에 하겠다고 했죠.”

 재능기부지만 철저했다. PKU와 관련해 국내엔 자료가 거의 없어 해외 사이트까지 뒤졌다. 식재료에 환아들이 피해야 할 단백질 등의 성분이 들어 있는지 일일이 확인해 메뉴를 골랐고, 성분 검증에 전문성을 더하기 위해 매일유업 모유연구소 정지아 소장, 순천향대병원 영양사였던 이봉미씨에게 한 번 더 감수를 요청했다. 가장 공을 들인 것은 ‘맛’을 잡는 것. 환아들이 먹을 수 있는 전분미를 활용해도 보통의 피자 맛과 비슷하도록 1년이 넘게 실패를 거듭했고 한 번에 300판 분량의 반죽을 버리기도 했다. 그는 “12년간 요리사 생활 중에 PKU 환아를 위한 메뉴 개발 과정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건 없었다”고 고개를 내둘렀다. 덕분에 그는 지난 2년간 PKU 환아들을 위해 7가지 메뉴를 개발, 매일유업과 19명의 환아에게 가족 외식을 선물할 수 있었다.

 “지난해 한 환아 부모님이 음식을 드시고 ‘고맙다’고 제 손을 잡고 우시더라고요. 누군가가 제 음식을 먹고 눈물을 흘려준 게 처음이어서 저도 덩달아 울컥했죠. 환아들과 가족들을 대접할 때면 평소보다 마음이 여유롭고 넉넉해져 오히려 요리에 집중이 더 잘되더라고요.”

 그는 벌써부터 내년 PKU 환아와 가족들을 초대할 식탁을 고민 중이다. 내년엔 육류 질감이 나는 요리로 환아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맛을 알게 해주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음식이 약이다’라는 말이 제 요리 신조지요. PKU 환아들을 포함해 더 많은 이가 제 요리로 건강을 찾고, 입도 눈도 즐거운 요리를 계속 해나갈 겁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