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분쟁지역 청소년이 자립할 기틀 마련이 목표”

‘권홍헤어아카데미’ 권홍 원장

류정화기자_사진_권홍헤어아카데미_권홍원장_2011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위치한 ‘권홍헤어살롱’에 들어서자 ‘권홍헤어와 함께하는 기아대책’ 벽보가 한눈에 들어왔다. 벽보에는 권홍(46) 원장이 후원하는 저개발국 아이 5명을 비롯해 직원들이 후원하는 아이들 26명의 폴라로이드 사진이 붙어 있었다. 권 원장은 “사진을 보고 관심을 갖는 고객과 직원들에게는 후원을 권유하는데, 동참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며 뿌듯해했다.

미용실뿐만 아니라 미용교육기관 ‘권홍헤어아카데미’로 유명한 권홍 원장은 봉사와 나눔에 열정적이다. 권홍헤어 직원들과 아카데미 학생들의 지각벌금을 모아 지역 독거노인들에게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북한이탈주민들의 사회정착지원기관인 ‘하나원’과 미혼모시설 ‘여성의집’ 등에서 지속적인 미용봉사도 했다. 미용교육에 뜻이 있는 북한이탈청소년에게는 무료로 미용교육을 해주기도 했다. 그중 한 명은 미용실 직원으로 채용했다. 권 원장은 “실력도 좋았지만 북한이탈주민 신분이 알려지면 아이가 힘들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우리 직원으로 채용했다”며 “형편이 어렵거나 공부에 뜻이 없지만 열심히 하려는 의지가 있는 친구들을 가르치는 것이 ‘미용교육가’로서 나의 보람”이라고 말했다.

권 원장이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특히 관심을 갖는 것은 자신의 어린 시절과 비슷해서다. 권 원장은 구두수선하는 아버지와 몸이 편찮으신 어머니와 함께 목포 달동네에 살았다. 친구들이 모두 좋은 대학에 가고 권 원장만 연이어 대학입시에 실패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형은 “미용기술을 배워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당시 미용실은 권 원장에게 ‘의자 두 개 달랑 놓고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 화투 치는 곳’이었지만, “유학을 가서 한국 최고의 미용사가 되어 보라”는 형의 말에 의지가 생겼다.

보조미용사로 1년 일해 비행기표를 마련하고, 일본에서 4년, 영국에서 3년간 미용기술을 익힌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권 원장은 “한국에서 정식미용사로 일했다고 거짓말하고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이것이 들통날까 봐 더 열심히 일하고 연습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유학시절 외롭고 힘들 때마다 교회에서 만난 멘토들이 조언도 해주고 밥도 사줬는데, 이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꿈을 이루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나도 내가 후원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권 원장은 한국으로 돌아온 지 4년 만에 ‘권홍헤어아카데미’를 만들고 10년 만에 국내 최대의 미용교육기관 중 하나로 키워냈다. 지금까지 아카데미를 거친 미용교육생은 1만여명이나 된다. 권 원장은 “내가 가진 모든 기술을 학생들에게 알려주다 보니 주변에서는 ‘다 가르쳐주면 네가 망한다’며 걱정했지만 내 안의 지식을 다 비우면 오히려 새로운 영감이 찾아왔다”며 “좋은 일을 계속 하는 것도 사랑을 남에게 베풀수록 내 안의 사랑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권 원장은 올해 중국 우루무치 지역에 권홍헤어아카데미를 세울 예정이다. 분쟁지역의 가난한 청소년들에게 미용기술을 가르쳐 자립하도록 하는 것이 설립 목적 중 하나다. 2009년 말에는 기아대책과 협약을 맺고 베트남의 한 마을을 지속적으로 도우면서, 장기적으로는 그 지역에도 미용기술교육을 할 예정이다. 권 원장은 “빈털터리였던 내가 이만큼 성장한 것은 나를 도와주고 보살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내가 가진 것들을 나누고 베풀면서 그 은혜를 갚고 싶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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