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기쁜 기부, 해피플’ 캠페인] ⑨ 2000명 후원자 만든 30년 나눔 球歷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초록우산어린이재단 ‘기쁜 기부, 해피플’ 캠페인 (9)
후원금 1억원, 봉사시간 2만시간… 헌혈 독려로 ‘흡혈귀’ 별칭 붙기도…
“어려울수록 쪼개 베푸는 것이 나눔”

미상_사진_기부_송화태_2015

“스리랑카에서 북한까지, 가난하고 어려운 아이들을 만나봤지만 우리나라 아이들이 가장 어두워요. 더 많은 어른이 나서야죠. 성인 다섯 중 한 명이 나눔을 실천하도록 하는 게 제 인생의 목표입니다.”

지난달 27일, ‘나눔왕’으로 꼽히는 송화태(56·사진) 한전 광주전남본부 순천전력처 급전부소 과장을 만난 곳은 광주의 한 영세아파트 놀이터였다. 정글짐 등 최신 놀이기구와 쿠션매트로 새 단장을 한 놀이터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감격이 서렸다. 녹슨 그네 하나뿐이던 낡은 놀이터를 주차장으로 개조하려는 어른들과 맞선 지 반 년. 그는 한전 직원들과 십시일반 모은 850여만원을 후원금으로 내놓았고,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하 어린이재단) 및 지역 교육 관계자들과 함께 놀이터를 지키는 데 힘을 모았다. 놀이터 완공식이 진행되는 이날도 근무시간을 주말로 바꿔가면서 순천에서 광주로 한걸음에 달려왔다. 혹시 아이들에게 부족한 것이 없을지 염려됐기 때문이다. “나눔이란 남는 돈, 남는 시간을 나누는 게 아니에요. 없는 것을 쪼개서 베푸는 것이지.” 영하(零下)의 날씨, 세 시간 넘게 아이들을 지켜보느라 꽁꽁 언 그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송씨의 나눔 구력(球歷)은 30년이 넘는다. 어린이재단에 기부한 후원금만 1억원, 봉사한 시간은 2만 시간을 훌쩍 넘는다. 속옷 살 돈까지 아끼고, 봉사를 하기 위해 야간 근무를 자처하며 이어온 헌신이다.

◇IMF 때 오히려 후원금 늘려… 매일 1004원씩 기부하는 ‘1004 캠페인’ 기획

송씨와 어린이재단과의 인연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난 때문에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들을 보면서 “마치 어린 시절의 내가 버려지는 듯해,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어려운 형편에서 9남매 중 여섯째로 자란 그에게 배고픔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후원을 시작한 이후 그는 28년간 단 한 번도 정기 후원금을 거른 적이 없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수많은 후원자가 떨어져 나갈 땐,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오히려 후원금을 늘렸다. 그는 “경기가 어려우면 대부분 기부금부터 줄인다”며 “누군가의 절약이 아이들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다”고 일침을 놨다. ‘제2의 금융위기’라 불렸던 2007년엔 매일 1004원씩 후원하는 1004명을 발굴하는 일명 ‘1004캠페인’을 직접 기획해, 1호 가입자로서 후원자 발굴에 팔을 걷어붙였다. 현재 ‘1004캠페인’에 참여한 이들은 700여명에 달한다. 이렇게 송씨가 28년간 후원한 아동은 40여명. 10년 전부턴 에티오피아, 스리랑카, 우간다 등 해외 아동 6명의 아버지 역할을 하고 있다. “중학생 때부터 후원한 아이가 자신도 ‘다른 아이들의 후원자가 됐다’면서 연락이 왔는데, 가슴이 울컥하더군요. 그때 결심했습니다. 제 나눔에 입구는 있어도 출구는 만들지 말자고요(웃음).”

송화태 회장은 37년 째 매 달 헌혈을 하고 있다. 본인뿐만 아니라 회사 동료,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직원들도 독려해 함께 헌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광주지역본부 제공
송화태 회장은 37년 째 매 달 헌혈을 하고 있다. 본인뿐만 아니라 회사 동료,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직원들도 독려해 함께 헌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광주지역본부 제공

◇봉사하려고 야간 근무 자청해… 발굴한 후원자만 2000명

송씨의 평일 격일 근무시간은 오후 4시40분부터 다음 날 새벽 5시 반까지. 본인이 자청해 야간 근무조로 바꿨다. 새벽 5시 반에 퇴근하면 곧장 노인 무료 급식소로 향한다. 오후 1시까지 자원봉사를 하고 나면 쉴 시간은 3시간 남짓. 이렇게 일과 봉사를 병행하는 빡빡한 일정은 5년째 계속돼왔다. 이유가 궁금했다. “매주 나주 수덕의 집, 영광의 집 등 영세한 양로원을 직접 찾아가 봉사활동을 해왔어요. 정작 도움이 필요한 평일 낮엔 봉사자가 없다는 고충을 듣고, 바로 근무 시간을 옮겼죠.” 그는 “정성스레 만든 음식을 어르신들이 맛있게 잡수시면 되레 감사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뿐만 아니다. 1979년부터 매달 헌혈해온 그의 양팔엔 바늘 자국과 검푸른 멍이 없어질 날이 없다. 혈액원에 직접 전화해 회사로 헌혈차를 부르기도 한다. 지역 내 다른 사업장들도 돌며 헌혈을 독려한다. 그 때문에 회사 내에선 ‘흡혈귀’란 별칭이 붙기도 했다. 그는 “주사 자국을 보곤 주변에서 ‘뽕 맞느냐’고 묻기도 한다”고 농을 던지며, “나에게 따끔한 1초가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아픔보다 기쁨이 크다”고 설명했다. 광주 지역 근무 당시엔, 사내 봉사활동도 매달 직접 기획해 직원들을 이끌었다. 이를 위해 장애인복지관, 지역아동센터 등 다양한 기관을 찾아다니며 도움이 필요한 곳을 발굴하기도 했다. 그는 “처음엔 봉사활동을 내키지 않아하던 사람들이 ‘도울 것 없느냐’며 함께하려고 적극 나서는 변화가 눈에 보인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광주지역본부 후원회장인 그의 또 다른 별명은 걸어 다니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홍보대사’다. 송씨가 발굴한 후원자만 2000명에 달한다. 그는 자신을 통해 재단 후원자가 된 이들을 직접 엑셀 파일로 정리, 후원을 지속하도록 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는다. “TV 등 방송을 보고 즉흥적으로 기부를 시작한 사람들보다 후원자 추천으로 기부를 시작한 이들이 오랜 기간 후원을 이어가더군요. 함께 독려하며 나눔을 이어가는 게 큰 힘이죠.” 어린이재단 광주지역본부 후원회 부회장인 권철환씨 역시 송씨를 통해 재단에 15년째 후원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할 일이 많다고 한다. “비영리단체가 할 일이 없어질 정도로, 나눔과 봉사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제가 앞장서야죠. 나눔은 평생 제 임무니까요.”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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