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7일(화)

지역 사회 문제 해결, 우리는 ‘축구’로 합니다

미상_사진_사회공헌_앤디에번스_2015“축구가 사회를 바꿀 수 있느냐고요? 물론입니다(Absolutely). 저는 어렸을 때부터 늘 키가 작아서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축구를 잘하게 되니깐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의기소침해 있던 제가 사람들과 소통하게 된 계기가 바로 축구였습니다. 축구는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영국의 프로축구팀 ‘퀸스파크 레인저스(Queens Park Rangers·이하 QPR)’ 구단의 사회공헌 활동을 책임지고 있는 앤디 에번스(Andy Evans·47·사진)씨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160㎝를 조금 넘은 작은 체구였지만, 눈빛과 손짓에는 당당함이 가득 차 있었다. ‘박지성의 클럽’으로 한국에서 널리 이름을 알린 QPR 구단은 20년 넘게 지속한 지역 사회공헌의 성과로 업계에서 회자되는 유명 구단이다. 이 구단이 설립한 QPR 재단(QPR in the community trust)은 연간 평균 130만파운드(약 23억원)를 모금해, 매년 유소년 2만5000명을 지원하고 있다. 총 100명의 직원이 사회공헌을 전담해 전문성을 더한다. 주한영국문화원과 FC안양의 초청으로 방한한 앤디 에번스 대표를 만나 프로축구의 사회공헌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는 지난 1994년 QPR재단을 창립한 멤버로, 2009년부터 재단 대표를 맡고 있다. “1년에 두 번, QPR 홈구장엔 특별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은 다운증후군 장애인입니다. 홈경기 오프닝 때 터지는 이들의 골 세리머니에 로프터스 로드(Loftus Road) 경기장은 떠나갈 듯 환호성이 터집니다.”

다운증후군 장애인이 QPR 구단의 홈구장에서 오프닝 골 세리머니를 펼치는 모습. /QPR재단 제공
다운증후군 장애인이 QPR 구단의 홈구장에서 오프닝 골 세리머니를 펼치는 모습. /QPR재단 제공

에번스 대표는 QPR 구단 팬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프로그램으로 2009년 시작한 ‘타이거 컵스(Tiger Cubs)’ 프로젝트를 꼽았다. 이는 런던 서부 지역의 다운증후군 장애인들이 축구, 테니스 등 다양한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도록 지원하는 사회공헌 활동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장애인만 매주 300명. QPR구단은 매년 홈경기 오프닝 때 이들이 팬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골 세리머니 이벤트를 마련하고 있다. 에번스 대표는 “지역 주민들이 재단을 가깝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사회공헌 이벤트를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로프터스 로드 경기장은 지역 주민들을 위한 장소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유소년 축구 프로그램을 여는 것은 물론, 2009년부터는 ‘더 엑스트라 타임 클럽(The Extra Time Club)’이라는 60세 이상 노인 대상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 6주간의 프로그램에서는 요가, 볼링, 살사 댄스, 줌바, 태극권 등을 배울 수 있다. 금요일 오후에는 지역 청년들이 경기장에서 축구, 배구, 크리켓, 심지어 디제잉을 즐길 수 있는 환경도 만들었다. 덕분에 우범 지역이었던 경기장 주변에서 사소한 난동이나 경범죄도 줄어들었다.

“89세쯤 되는 피터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독거노인이죠. 절대 집 밖에 나오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호기심에 한번 경기장에 들렀다가,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50대 여성분들과 친해지신 거예요. 한 번, 두 번 자주 방문하시면서, 자신감을 점점 회복하셨습니다. 얼마 전에는 걷기 대회에 참여하는 동료 노인분을 본인이 직접 모시겠다고, 30년 만에 운전대도 잡으셨다고 하더라고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QPR 구단은 런던 서부(West London) 및 북서부 지역을 연고지로 한다. 이곳을 중심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친 지 22년째, 지역에서는 어떤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QPR 구단이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인종차별 문제’였다. QPR 구단의 홈 그라운드(home ground)는 런던 중심부와 히스로(Heathrow) 공항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주민이 많이 모여 있는 지역이다. 학생(5~16세)들의 71.8%가 흑인 및 소수 인종에 이를 정도다. QPR재단은 지난 20년 동안, 영국 축구계 인종차별 반대 단체인 ‘킥 잇 아웃(Kick it out)’과 함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매년 10월에 12일 동안 진행되는 이 캠페인에는 92개 프로축구 클럽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축구 클럽, 대학 등 다양한 기관이 참여해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이벤트 1000여개가 만들어진다.

이 지역 토박이인 에번스 대표는 “지역사회 내에서 많은 파트너와 장기적으로 협력한 결과”라며 파트너십을 성장의 비결로 꼽았다. 실제로 QPR 재단은 프리미어리그, 나이키, 런던시 등의 대형 기관 외에도 지역 재단인 ‘힐링던 커뮤니티 트러스트(Hillingdon Com munity Trust)’ ‘훕스 펀드(hoops fund)’ ‘옥타비아 파운데이션(Octavia Foundation)’ 그리고 ‘일링, 해머스미스&웨스트 런던 칼리지’ 등 지역 교육 기관과도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지속성’ 역시 QPR 구단 사회공헌의 핵심 키워드다. 10년 이상 지속한 장기 프로그램이 대부분인 것만 봐도 그렇다. 반사회 위험에 처한 유소년들을 지원하는 ‘킥스(Kicks)’ 프로그램이 대표적 예다. 런던 서부 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축구, 치어리딩, 스트리트 댄스 등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지원해 범죄의 위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돕는 사업이다. 퇴학 직전에 처한 청소년이나 범죄에 연루됐던 학생들이 주요 대상이다. 전문성을 위해 지역 경찰서 및 청소년 전문 기관과도 협력하고 있다. “소년원 출신의 한 소년은 킥스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QPR 재단 프로그램의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죠.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공헌은 이런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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