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외롭고 배고픈 겨울방학이 싫어요”

저소득층 아이들의 겨울나기

“겨울방학은 너무 길어요. 하루 종일 집에 있으려니까 심심해요. 학기 중에는 수업만 끝나면 금방 오후가 되는데….”

수연(가명·13)이는 방학을 기다리지 않았다. 어차피 방학이 되어도 마땅히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중학교 선행학습이다 뭐다 해서 학원을 몇 개나 다닌다는데, 수연이는 이번 방학에도 별다른 계획이 없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학원에 다니는 것도, 가족 나들이를 가는 것도 꿈도 못 꾼다.

수연이의 아버지는 버스운전사다. 하루 12시간씩 2교대로 일하는 아버지는 집에서는 늘 잠만 잔다. 작은 반찬 가게에서 일하던 어머니 역시 얼마 전 자궁수술을 받고 일도 그만둔 채 집에 누워만 있다. 수연이와 동생 미연(가명·11)이는 집에 있으면 하루 종일 배를 곯기 일쑤다. 두 아이는 학교수업이 끝나면 매일같이 지역아동센터로 간다. 지역아동센터는 수연이처럼 보살펴줄 사람이 없는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학습지도, 특별활동 지도, 급식지원 등을 해주는 복지기관이다.

서울 중랑구 솔로몬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저녁밥을 먹고 있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센터에서 점심·저녁을 모두 해결해야 하지만, 추가비용 지원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다.
서울 중랑구 솔로몬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저녁밥을 먹고 있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센터에서 점심·저녁을 모두 해결해야 하지만, 추가비용 지원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다.

진석(가명·10)이는 집 열쇠가 달린 목걸이를 항상 목에 걸고 다닌다.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진석이는 “집에 아무도 없어서 혼자 문을 따고 들어갈 때가 많다”고 말했다. 건설일용직으로 일하는 진석이의 아버지는 매일같이 술을 마신다. 어떤 때는 술병이 나서 며칠씩 앓아눕기도 한다. 사흘 정도 잠을 자다 겨우 술이 깨면 아버지는 진석이에게 돈을 조금 쥐여준다. 진석이는 학교 수업만 끝나면 지역아동센터로 간다. 그곳에선 저녁도 주고, 숙제지도도 해주기 때문이다. 센터가 문을 닫는 시간은 밤 9~10시지만, 진석이는 항상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가 선생님의 권유에 못 이겨 집으로 향한다.

지난 20일 서울 중랑구 망우동 솔로몬지역아동센터(이하 센터)에서 만난 아이들 49명은 모두 겨울방학을 싫어했다. 아이들과 어울려 술래잡기를 하며 뛰어놀던 민희(가명·9)와 지원(가명·9)이는 겨울방학 계획을 묻자 굳은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학원에 다닐 형편도, 나들이를 할 형편도 안 되는 센터 아이들은 방학이 되면 갈 곳이 없어진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자니 보살펴줄 사람이 없어 끼니를 거르기 쉽다. 공부를 가르쳐줄 사람도 없다. 센터 아이들은 올해 겨울방학도 스무 평 남짓 되는 비좁은 센터에서 하루 종일 지낼 예정이다.

지역아동센터는 방학이 되면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아이들을 보호한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 예산이 늘지는 않는다. 지역아동센터는 기본적으로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운영되는데, 운영비 지원은 학기 중과 똑같다. 충남지역아동센터 협의회장 홍승훈(46)씨는 “방학 중에는 아이들이 센터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 길기 때문에 프로그램비와 운영비, 간식비가 더 드는데 지원은 똑같으니 운영이 어렵다”며 “식사도 센터에서 점심, 저녁 두 끼를 먹여야 하는데 추가 비용지원이 없어서 저녁 급식비를 당겨 일단 점심을 먹이고 저녁은 자체 예산으로 먹이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아동센터의 방학 중 운영이 어려워지면 당장 피해를 보는 건 아이들이다. 식사의 질은 물론 다른 서비스의 질도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로 갈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하트하트재단 김진아 부장은 “강원, 전남, 전북과 같이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에서는 저녁급식 지원을 하지 않고 있어, 재단에서 지역아동센터를 통해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국 이광진(30) 간사는 “아이가 어디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급식을 먹을 수 있는가 없는가가 결정된다”라고 한탄했다. 그는 “특히 이번에 결식아동 급식지원 예산이 전액 삭감되어서 저소득층 아이들이 올해 겨울방학을 보내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상_그래픽_아동_겨울방학_2010겨울방학 때는 지역아동센터가 감당해야 할 난방비도 만만치 않다.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에 따르면 지역아동센터에서 겨울 한 철을 나기 위해 쓰는 난방비는 보통 120만~140만원이다. 구청에서 지원받는 총 운영비의 13~15%를 차지한다. 방학 때면 지출이 더 늘어나는 지역아동센터들로서는 여름방학보다 겨울방학이 더욱 힘겹다. 이광진 간사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난방비 명목으로 매년 50만~60만원을 지원받는 지역아동센터도 많았는데, 올해는 지원받을 수 있는 센터 수가 많이 줄었다”며 “전국 16개 시·도 중 경기·인천·강원·충북·충남·경북·제주 등 7곳에 있는 지역아동센터는 올해 아예 지원을 못 받았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 사는 아이들에게는 올해 겨울방학이 유난히 춥게 느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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