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월)

[Cover Story] 노숙인 축구팀의 도전 “시민 1000명과 함께 뜁니다”

[Cover Story] 홈리스월드컵, 노숙인들의 삶을 바꾸다
6점차 大敗후 선수들과 ‘강남스타일’ 춤춰… 노숙인이라는 선입견, 이곳엔 없었다

“아주 흥미진진한 경기입니다. 대한민국 선수들 아주 영리해요.”

지난달 17일 오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홈리스월드컵 대한민국 대 그리스 경기 현장. 한 점 차로 뒤지던 대한민국이 경기 종료 1분 전 동점골을 만들어내자, 경기장은 이내 ‘흥분의 도가니’가 됐다. 평균 나이 34세의 왜소한 한국 아저씨 군단이 족히 열 살가량 어리고 체구가 큰 해외 젊은이들과 그토록 흥미진진하게 대결할지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모두가 손에 땀을 쥔 순간, 왼쪽 다리에 선수용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인 성윤보(48) 선수가 과감하게 공을 차 올렸다. “슛~골.” 아나운서의 외침과 동시에 종료 휘슬이 울렸고, 객석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노숙인이라고 외면받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었죠.” 이날 경기에서 팀의 왼쪽 날개가 돼 두 골을 넣은 박강현(33)씨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역전승의 주역이자 팀의 최고령자인 성씨는 경기 종료 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10여 년의 ‘지옥’ 같은 시간이 주마등처럼 떠오른 것.

“또다시 패배자가 될까 겁이 났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긴장이 풀리자, 지난날의 서러움이 한꺼번에 복받치더라고요.”

지난달 12일부터 19일까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선 ‘2015 홈리스월드컵’이 개최됐다. 노숙인들에게 축구를 통해 자립 의지를 심어주기 위해 시작된 이 대회는 올해로 13년째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0년부터 올해까지 6년째 출전하고 있다. /김상준 사진작가 제공
지난달 12일부터 19일까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선 ‘2015 홈리스월드컵’이 개최됐다. 노숙인들에게 축구를 통해 자립 의지를 심어주기 위해 시작된 이 대회는 올해로 13년째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0년부터 올해까지 6년째 출전하고 있다. /김상준 사진작가 제공

◇홈리스월드컵 출전 한 달 전까지도 후원사 못 구해 발 동동 굴러

지난달 12일부터 19일까지 네덜란드에서 아주 특별한 월드컵이 열렸다. 전 세계의 노숙인들이 함께 모여 치르는 ‘2015 홈리스 월드컵’이다. 2003년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돼 올해로 13회째. 2010년부터 이 월드컵에 출전해온 우리나라는 올해 월드컵이 더욱 특별하다. 시민 1000여 명이 십시일반 모아준 후원금 덕분에 네덜란드 땅을 밟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숙인 선수를 선발, 대회 출전 준비까지 맡은 빅이슈코리아 안병훈 대외협력국장은 “대회 출전 한 달 전까지도 후원사가 없어서, 비행기 삯을 마련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굴려야 했다”며 “정부도, 기업도 외면한 노숙인들의 손을 잡아준 것이 바로 1000명의 시민이었다”고 말했다.

“‘최후의 보루’였죠.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해피빈이나 와디즈 등 크라우드펀딩(Crowd Funding·대중적으로 웹이나 SNS를 통해 자금을 모으는 방식)을 통해 재원 마련에 나섰습니다. 첫 시도라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예상보다 뜨거운 반응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살았다’ 싶더라고요.”

특히 다음 뉴스펀딩, ‘홈리스월드컵 새롭게 태어나다’ 프로젝트는 시민 모금의 불을 지폈다. 노숙인 국가대표 선수들이 각자가 한없이 부끄럽게만 여겼던 사연들을 후원자들에게 7회에 걸쳐 소개했다. 프로젝트를 제안한 정다워 축구전문기자가 펜을 잡고 오랜 기간 빅이슈코리아에서 재능기부를 해온 김상준 사진작가가 힘을 보탰다. 제1화의 주인공은 조욱(21) 선수. 열세 살에 혼자가 된 후 길에서 지내는 비행 청소년이 됐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경찰서가 죽기보다 싫어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주인공이다. 세상의 따뜻함을 알려준 쉼터 선생님들처럼 남을 돕는 사회복지사가 되려는 꿈을 키우는 그의 이야기에 ‘대견하다’ ‘힘내라’ 등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응원은 곧바로 후원으로 이어졌다.

안 국장은 “이전에도 몇 번 홈리스월드컵이 TV 등에 소개됐지만, 순간의 감동에 그치고 말았다”며 “이젠 개개인의 스토리를 보고 한 번 클릭으로 후원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시스템 덕분에 더 많은 참여를 끌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욱 선수의 이야기 연재 후 바로 다음 날엔 사단법인 양천 월드휴먼브릿지에서 십시일반 모아 대표 선수들의 항공료로 써달라며 1000만원을 보냈다. 성미산 마을도 홈리스월드컵 모금으로 들썩였다. 빅이슈코리아에서 인턴을 하던 성미산학교 3학년생이 담임선생님인 최영미(39)씨에게 홈리스월드컵에 대해 알리며 모금을 시작한 것. 최씨는 곧장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와 성미산 마을 홈페이지, SNS에 모금 소식을 알렸다. “홈리스든 노숙인이든 용어가 어찌 다르든, 누구도 배제하거나 소외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학생들과 마을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죠.” 이렇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면서 모금에 참여한 시민 수는 1000여명, 모금액은 시작 후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목표액인 1300만원을 세 배 가까이 초과 달성했다.

◇홈리스 월드컵 나가고파 가슴 아픈 사연도 대중에 공개

이번 시민 모금은 홈리스월드컵에 대한 인지도를 넓히는 동시에 대중의 노숙인에 대한 ‘인식’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막연히 ‘불쌍한 사람’ 또는 ‘위험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노숙인들의 사연 하나하나를 읽으며 ‘누구나, 심지어 나 자신도 가정이나 사회환경에 의해 노숙인 같은 처지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해볼 기회를 준 것이다.

하지만 더 큰 용기를 내야 했던 사람들은 실제 뉴스펀딩의 주인공들.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 쉽지 않아 사실 많은 고민을 했다”는 뉴스펀딩 2화의 주인공이었던 황대영(35) 선수. 그는 2006년, 2012년 두 차례나 시설에 입소해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황씨의 가족들은 그의 치료 사실을 일절 알지 못한다.

“20대 때 알코올 중독으로 환청, 환시에 시달리다 자살을 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어요. 형 덕분에 겨우 목숨을 구했지만, 온 가족에게 너무 큰 상처를 줬죠. 아직도 술과 싸우고 있다는 걸 알면 또다시 가족들이 아파할까 10여년째 말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뉴스펀딩 인터뷰에 나선 이유는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 황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다시 국가대표 선발전에 도전한 ‘재수생.’ 그가 이렇게 홈리스월드컵에 매달리는 이유는, 홈리스 국가대표 선배들의 ‘변화’를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가장 친한 형 두 분이 지난해 칠레 홈리스월드컵에 나가셨어요. 갔다 온 후 홈리스월드컵 이야기를 어찌나 쉴 새 없이 많이 해주시던지(웃음). 월드컵 이후 두 사람 표정이 완전 바뀌었어요. 얼굴만이 아니라 삶에도 자신감이 붙었죠. 지금 다들 조금씩 돈을 모아 뚝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안정적으로 사세요. 그 모습이 참 부럽더라고요. ‘나도 꼭 국가대표가 되겠다’ 선배들이 ‘자극제’가 됐죠.”

노숙인 선수들에게 ‘축구’는 단순한 운동을 넘어, 상처 많은 과거의 ‘치료제’가 된다. 이번 홈리스월드컵 이한별(31) 감독은 “몇 주 전만 해도 자기 발 앞의 공밖에 볼 줄 몰랐던 선수들이 상대의 위치를 파악해 사인을 주고받으며 패스하는 하모니를 이루게 됐다”며 “선수들에게 네덜란드에서 몇 골을 넣는 것보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삶의 새로운 목표를 정하도록 돕는 게 중요한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들과 함께 하는 한 달간의 합숙훈련을 위해 병행하던 어린이축구교실까지 잠시 접었다고 한다.

한국 대표팀 8명의 선수들은 6: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다. 이들은 지난 8월부터 한 달간 합숙 훈련에 매진했다. (왼쪽부터)이한별(31)축구감독, 임효준(20)·장승국(35)·유철훈(34)·조욱(21)·이연승(40)·성윤보(48)·박강현(33)·황대영(35) 선수, 이창용(48) 빅이슈코리아 스포츠팀 팀장. /김상준 사진작가 제공
한국 대표팀 8명의 선수들은 6: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됐다. 이들은 지난 8월부터 한 달간 합숙 훈련에 매진했다. (왼쪽부터)이한별(31)축구감독, 임효준(20)·장승국(35)·유철훈(34)·조욱(21)·이연승(40)·성윤보(48)·박강현(33)·황대영(35) 선수, 이창용(48) 빅이슈코리아 스포츠팀 팀장. /김상준 사진작가 제공

축구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이 노숙인들에겐 특별한 경험이 됐다. “효준이가 공을 막는 솜씨가 남다른데….” 쉼터에서 우연히 축구 골키퍼를 맡았다가 사람들에게 들은 칭찬 한마디가 임효준(20) 선수를 바꿨다. ‘나도 잘할 수 있는 것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공을 막기 위해 몸을 던지면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어요. 그 ‘맛’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죠(웃음).”

석 달 밤낮으로 공 막는 연습에 몸을 던져 팔다리에 든 멍이 아직도 거뭇거뭇하다. 노력은 그대로 실력으로 이어졌다. 훈련장 맨 끝 골대 앞, 사방에서 날아오는 9개의 공을 효준군은 몸을 날쌔게 오른쪽 왼쪽으로 던지며 작은 손으로 다 막아냈다.

박강현 선수는 ‘공’이 ‘자기 인생’ 같다고 한다. “공에 대해 모르고 뻥뻥 찰 때는 아무 데나 날아가더니, 조금씩 배우고 강약 조절해 살살 다루니 원하는 방향으로 나가더라고요. 공이 잘 굴러 나가면 내 앞날도 곧게 뻗어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들의 경기 결과는 어땠을까. 11경기 중 단 2승을 거두었다. 강호 남아프리카공화국에는 6점 차로 대패도 했다. 하지만 한국과 남아공 선수들은 경기 후 함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추고 아프리카 전통 춤을 추느라 엉덩이를 흔들었다. 최선을 다해서인지 패배도 무섭지 않았다. 이 감독은 “선수들이 처음보다 자신감이 훨씬 늘고 얼굴이 밝아졌다”고 흐뭇해했다. 황대영씨는 “아무도 나를 알코올 중독자, 노숙인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보지 않았다”며 “20년 만에 평범한 삶을 살아보면서, ‘나도 충분히 똑같은 사람이다 기죽을 필요도 없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축구가 가져다준 ‘가족’ 그리고 ‘미래’

꿈에 그리던 세계 월드컵 대회를 나간 뒤, 선수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지난 2일 한자리에 모인 선수들을 만났다.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성윤보씨는 홈리스월드컵 이후 13년 만에 가족을 만났다. 18년 전 IMF 때 부도를 맞아 빚더미에 앉고 민·형사 재판을 받으며, 그의 가정은 붕괴됐다. 아내는 집을 나갔고 아이들은 성씨의 노부모에게 맡겨졌다. 이후 술에 빠지고 대부업체에 가담했다 전과자가 됐고, 마음잡고 일을 하던 건설 현장에선 추락 사고로 크게 다쳤다. 모아 둔 돈을 병원비로 다 쓰고 난 성씨는 길거리 노숙자가 됐다. 그 이후 부모도, 자식도 찾지 못했다. 인터넷 뉴스펀딩으로 아버지의 경기 출전을 알게 된 딸과 가족들은 성씨의 경기를 모두 생중계로 지켜봤다.

“한때는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죠. 하지만 최선을 다해 경기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울컥했어요. 얼마나 다시 일어서려고 하시는지 느껴지더라고요. 아버지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위부터) 이한별 감독이 경기 중 선수들에게 작전을 설명하는 모습. 성윤보(48) 선수는 팀의 최고령 선수였지만 몸을 아끼지 않는 투혼을 보여줬다.
(위부터) 이한별 감독이 경기 중 선수들에게 작전을 설명하는 모습. 성윤보(48) 선수는 팀의 최고령 선수였지만 몸을 아끼지 않는 투혼을 보여줬다.

성씨의 딸 성미선(가명·24)씨는 아버지가 보여준 남다른 끈기와 투혼을 보며, 아버지에 대해 닫힌 마음의 문을 열었다. 성씨의 부모 역시 경기 후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아들에게 “축구선수가 몸 다치면 안 된다”고 일으켜 세워 안았다.

“부모님께 운동선수로 제대로 인정받고 싶었는데 꿈이 이뤄졌죠. 이젠 자신감을 갖고 축구할 겁니다.”

성씨는 축구선수로 활약했던 자신의 경험과 특기를 살려 현재 노숙인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건강이 닿는 한 이 일을 끝까지 하고 싶다고 한다.

“홈리스월드컵이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였죠. 정말 좋은 시간이었으니 친구들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요.”

박강현씨는 홈리스월드컵 이후 10여 년 가까이 먹던 우울증 약을 끊었다. 추석엔 결혼하고 싶은 여자친구 부모님을 만나 인사도 드렸다. “2년 안에 일도 열심히 하고 결혼도 할 계획이에요. 이제 제 미래를 상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하지만 아직 홈리스월드컵이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올해 선수 선발 대상을 수도권에서 전국으로 확대했지만, 소외 계층, 주거 취약 계층, 비행 청소년 등으로 폭넓게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창용 빅이슈코리아 스포츠팀 팀장은 “현실적으로 중장기적인 후원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한 핵심은 바로 ‘노숙인에 대한 인식 개선'”이라고 말했다. 실제 국내 대표 기업들은 우리나라 대표팀에 대한 후원은 외면한 채, 노숙인에 대한 평가가 관대하고 축구를 좋아하는 칠레 등 홍보 효과가 더 높은 다른 나라 대표팀을 수년째 후원한다.

멕시코는 아예 정부 부처와 자국 최대 통신사인 텔맥스텔레콤이 홈리스월드컵 출전 전 과정을 후원한다. 지난 3년간 준우승에 이어 올해 우승을 거머쥐었고, 지금까지 주거 취약 계층에서 벗어나 프로축구선수로 키워낸 이만 10여 명이나 된다. 반면, 한국에선 노숙인에 대해 ‘의지 박약’ ‘도덕적 해이’ 등 부정적인 평가가 많아 아예 후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기업이 많다.

“노숙인에 대한 인식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숙인을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변하지 않도록 좋은 모습을 보이고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겁니다.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이 변하면 언젠가 사회 전체가 바뀔 겁니다. 마치 우리가 작은 축구공 하나를 차다 보니 어느새 술을 잊고 약을 끊고 사람 전체가 변한 것처럼 말이에요.”(황대영)

홈리스월드컵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참가한 선수들의 93%가 새로운 삶의 동기를 얻었고, 71%가 실제 삶이 변했으며, 38%는 주거 상태가 개선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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