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월)

‘우린 하나’라는 생각만으로… 국경 너머 내민 도움의 손길

국내 유일 시리아 전문 구호단체 ‘헬프시리아’

“혼자 살아 남았다는 죄책감에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죠.”

시리아 최고 명문대인 다마스쿠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자국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던 압둘 와합(32·동국대 법학대학원 박사과정)은 6년 전 한국으로 유학 왔다 하루아침에 나라를 잃고 가족과 연락이 끊겼다.시리아 내전 때문이다. 무장단체 IS의 횡포까지 더해지면서 시리아에는 4년째 하루에도 수백명씩 죽어가고 있다. 이런 ‘지옥불’ 같은 나라를 탈출하다 목숨을 잃은 숫자가 3000여명에 이른다.

“뭘 해야 할지 한 치 앞도 안 보였다”던 그의 손을 잡아준 것은 한국인 친구 10여명이었다.시리아를 돕기 위한 단체인 ‘헬프시리아’는 지난해 그렇게 만들어졌다.압둘 와합의 지도 교수인 정용상 동국대 법학과 교수가 대표가 돼 주었고, 사법연수원 시절에도 주말마다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최영길 교수에게 아랍어를 배웠을 정도로 ‘중동’에 관심이 많았던 박지훈 변호사가 사무총장을 맡았다. 현재 대기업 변호사로 재직 중인 박 변호사는 빠듯한 업무 스케줄에도 단체 실무를 살뜰히 챙긴다. 내전 발생 전, 시리아로 아랍어 어학연수를 갔다 압둘 와합과 인연을 맺은 한국 친구들 역시 헬프시리아의 홍보와 번역 활동을 통해 힘을 보내는 ‘정예 멤버’들이다.

‘헬프시리아’는 2년 전부터 서울, 인천, 부산, 광주 등 전국 각지에서 시리아 돕기 시민모금과 난민 인식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헬프시리아는 우리는 ‘세계 시민’임을 강조하며 시리아 난민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바란다고 밝혔다. /헬프시리아 제공
‘헬프시리아’는 2년 전부터 서울, 인천, 부산, 광주 등 전국 각지에서 시리아 돕기 시민모금과 난민 인식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헬프시리아는 우리는 ‘세계 시민’임을 강조하며 시리아 난민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바란다고 밝혔다. /헬프시리아 제공

비영리단체 경험이 ‘전혀’ 없는 이들은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2013년 6월부터 2년간 서울, 인천, 부산, 광주 등 전국 곳곳을 찾아다녔다. 일일 경매 등을 개최하기도 하고 아시안게임 시리아 서포터스, 최빈국 어린이들에게 동화책을 보내는 NGO 북스 인터내셔널과 협력해 단체 홍보 활동 등에 나서기도 했다. 이렇게 모은 돈에 헬프시리아 회원들도 십시일반 보태 마련한 총 금액은 2000여만원 남짓.압둘 와합은 이 모금액을 직접 전달하기 위해 지난해와 올 초 두 차례 걸쳐 한 달 일정으로 시리아 땅을 밟았다.

압둘 와합이 찾아가는 곳들은 IS의 수도가 된 시리아의 라카 지역이나, 난민이 100여명이 채 되지 않는 티르마닌 지역 등 위험하거나 소규모 지역들. 모두 도움의 손길이 쉽게 닿을 수 없는 곳들이다.압둘 와합은 “우리의 역할은 지원받기 어려운 ‘빈틈’ 같은 곳들에 도움을 전달하는 것”이라며 “시리아 지리와 정세에 밝은 내가 헬프시리아를 대표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뿌듯해했다. 이를 위해 압둘 와합은 경유국에서 시리아 비자라 입국이 거절되기가 비일비재하고, 시리아에서 빠져나올 땐 국경선을 넘지 못해 은신처에 몇 날을 숨어야 하는 등 고되고 위험한 여정을 감행했다.

압둘 와합이 돌아와 들려준 생생한 시리아 이야기들은 향후 시리아 지원 방안을 위한 ‘나침반’ 역할을 하기도 하고, 단체 회원들의 커다란 ‘에너지원’이 되기도 한다.박지훈 사무국장은 “와합이 시리아에 우리 도움이 전해진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이라며 “일면식도, 갈 수도 없는 시리아를 돕는다는 것이 막막하고 지칠 땐 그 보람으로 버틴다”고 했다.

지난 6일,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쿠르디 추모식’이 열리며, 시민 속에서 시리아 난민 문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들이 나왔다.이 추모식을 이끈 건 국내 유일의 시리아 구호단체 ‘헬프시리아’였다. “시리아의 상황은 스탈린, 히틀러 시대의 학살보다 더 끔찍합니다.”

박지훈 헬프시리아 사무국장이 들려준 시리아의 상황은 처참했다. 정부가 뿌린 맹독성 ‘사린가스’로 한 시간 만에 1300명이 죽어나갈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 시리아에 대한 시민들의 시선은 냉담하다. 모금 활동이나 인식 개선 캠페인을 위해 거리에 나서면 싸늘한 시선과 거절은 기본, 면전에서 “우리 먹고 살기도 힘든데 왜 남을 도와주느냐” 등의 비수 같은 말들을 듣는 게 부지기수다. 이런 저조한 관심과 난민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헬프시리아는 매주 수요일 아랍어와 시리아 문화 강좌를 개설해 운영 중이다.

박지훈 사무국장은 “난민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가족들의 사망진단서 등 증명서 제출을 요구 받는데, 현재 시리아인들에게 증명서를 발급해줄 정부는 한국에도, 시리아에도 없는 상태”라며 “조금만 시리아의 상황을 알면, 제도와 현실이 차이가 나는 부분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일민족’이라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우리의 수십 대조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에스키모인’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웃음)? 난민에 대한 인식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하지만 저희는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계속 걸어갈 겁니다.우리가 한 걸음 걸으면 그다음 주자들이 한 걸음씩 걷고, 그러다 보면 모두가 ‘하나’라는 생각에 도착할 테니까요.”(박지훈 사무국장)

헬프시리아는 이제 막 반 발짝을 떼고 다음 걸음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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