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목)

[더나은미래 논단] 아동학대처벌법, 처벌보다 가족 지원 서비스가 우선이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2014년 시도별 아동학대 현황(잠정치)’ 자료에 따르면, 작년에 아동학대로 판정된 사례 건수는 1만27건으로 집계됐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래 처음으로 1만 건을 넘은 것이다. 2013년의 6796건을 기준으로 보면 1년 사이에 거의 50%가 늘어난 수치다. ‘아동학대 보호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표현이 어색지 않을 정도다.

사실 2014년은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이하 ‘아동학대처벌법’)이 시행되고 ‘아동복지법’의 아동학대에 관련된 사항들이 개정되는 등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과 공적 개입이 대폭 강화된 해이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아동학대는 전년 대비 거의 50%가 증가했다. 이러한 결과는, 아동학대 문제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법만으로는 해결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동학대의 84%는 가정에서 일어나고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가 82%에 달한다. 아동학대에 대한 대책이 까다롭고 어려운 이유는 바로 아동을 돌보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부모가 학대 행위자라는 딜레마에 있다.

아동복지의 첫째 원칙은 안전하고 영속적인 가정이 아동에게 가장 바람직한 환경이라는 것이다. 둘째 원칙은 아동은 학대와 방임이 없는 안전한 환경에서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원칙 간에 충돌이 있을 때 국가와 사회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가 문제다.

아동학대를 ‘엄벌’한다는 차원에서 무조건 부모를 사법처리하고 아동을 부모로부터 격리 보호한다면 성장에 가장 이상적일 수 있는 가정을 아동으로부터 박탈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그대로 놔두어서는 아동의 안전이 확보될 수 없다. 이 두 원칙의 긴장관계를 조화로운 균형의 관계로 이끌어내는 것이 아동보호 체계의 과제다. ‘처벌’과 ‘가족지원 서비스’가 균형을 이뤄야 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방 서비스를 통해 애초에 아동학대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문제는 ‘아동학대처벌법’ 시행으로 아동학대에 대한 사법적인 접근이 강조되면서 아동보호 체계의 고유 기능인 가족지원 서비스 기능이 오히려 약화될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자칫 매우 심각한 극히 소수 사례에 대해 가해자를 처벌하고 아동을 격리 보호하는 것에 초점을 두다 보면, 서비스를 통해 변화할 수 있는 대다수의 아동학대 관련 사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동학대 위험에서 드러난 ‘빙산의 일각’에 몰입하는 사이, 드러나지 않은 대다수 아동학대 사례의 고통이 묻혀버리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 우리가 가진 아동보호 체계는 ‘신고’와 ‘조사’에 기반을 둔다. 신고가 이루어지면 보호 체계가 작동해서 조사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체계의 최대 단점은 자칫 신고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신고가 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가정에 대한 서비스가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신고·조사에 기반을 둔 체계는 자칫 아동학대를 조사해서 ‘처벌’하는 곳으로 인식돼 잠재적인 아동학대 위험군은 오히려 접촉을 꺼리게 될 수 있다. 이는 예방 서비스의 소중한 기회를 잃는 결과가 된다.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아동학대에 대한 대응을 다양한 경로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고위험 사례에 대해서는 기존의 조사 방식이 우선되고, 저위험 사례에 대해서는 오히려 아동학대나 방임이 더 심각해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형식의 차등적인 대응 방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에는 관심 밖에 있을 수 있는 ‘저위험 가족’에 대한 서비스의 폭과 기능을 강화한다는 의미가 있다. 최근 미국 등의 국가에서, 아동보호 서비스 시스템 개선 노력으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차등적 대응 시스템(Differential Response System)의 도입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차등적 대응 시스템의 또 하나의 장점은 아동보호 체계에서 공공과 민간의 역할 분담을 좀 더 명확히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민간이 위탁 운영하는 아동보호 전문기관이 신고·조사 업무까지 모두 담당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늘어나는 신고·조사 업무를 처리하기에도 급급해서 전문적인 서비스 역량을 키우기가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차등적 대응 시스템의 도입으로 신고·조사의 기능에 공공의 역할 비중이 강화된다면, 민간기관인 아동보호 전문기관은 아동학대 사례에 특화된 예방 및 조기 발견 서비스, 심리 상담 치료, 가족 재결합 서비스, 가족 보존 서비스 등 다양한 전문 서비스 모듈을 개발하고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아동을 학대와 방임으로 보호하는 것은 복지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의 하나다. 아동보호 체계의 근본적인 개선 방안에 대한 적극적인 모색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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