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12년간 늪지대 구조한 남자, 삶의 ‘터전’을 구하다

네이처 이라크 설립자 아잠 알와시
경제와 환경 선택의 문제가 아냐, 습지 살리는 것이곧 경제 살리는 것

네이처 이라크 설립자 아잠 알와시
네이처 이라크 설립자 아잠 알와시

잘나가는 ‘토목 공사 엔지니어’로 20여년을 살았다. 언덕과 산맥을 깎고 터널과 길을 낼수록, 부와 명성이 따라왔다. 그런 그가 환경 단체의 수장이 됐다. 이라크 최초 환경 NGO인 ‘네이처 이라크(Nature Iraq)’의 설립자이자 대표인 아잠 알와시(Azzam Alwash·57·사진)의 이야기다.

네이처 이라크는 사담 후세인 독재정권 시절 파괴된 습지를 재생하고, 주변국들의 대규모 댐 건설 저지 등 이라크 환경보호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공로로 아잠 알와시는 2013년, 환경 분야의 노벨상이라는 ‘골드만 환경상’을 수상키도 했다. 지난달 환경재단이 주최한 ‘그린아시아포럼’에서 만난 그는 “한 번도 잊을 수 없었던 고향 땅을 지켜내며, 뒤늦게야 자연의 가치에 눈뜨게 됐다”고 했다.

“1978년 7월, 사담 후세인의 독재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을 갔습니다. 당시 이라크에서 손꼽히는 엔지니어로 알려지면서, 정부 관료가 될 것을 종용받았지만 거절했죠. 더 이상 이라크 내에서 어떤 활동도 할 수 없게 되었고, 쌓은 모든 걸 버리고 미국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고향 땅 이라크 남부 습지대, ‘나스리아’에 돌아가겠다 생각했어요. 그러다 97년, 남부 아랍 지방의 습지가 완전히 메말라 없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접하게 됐습니다. 제 삶을 바꾼 계기였죠.”

이라크 남부 늪지대는 한때 1만5000㎢의 뛰어난 생태 환경지이자, 지역민들의 먹거리와 일자리인 삶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사담 후세인이 정부에 반대하는 습지 지역 부족민들을 소탕하기 위해 모래를 쌓고 강줄기를 막았다. 습지대도 소멸 위기에 처한 것. 10년 새 습지 면적은 절반 이하까지 줄었다.

이라크 남부 늪지대는 지역민들에게 먹거리와 일터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지난 정권의 의도적 파괴와 주변국들의 댐 건설로 한때 1만5000㎢였던 늪의 면적은 10년간 절반으로 줄었다. /픽사베이
이라크 남부 늪지대는 지역민들에게 먹거리와 일터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지난 정권의 의도적 파괴와 주변국들의 댐 건설로 한때 1만5000㎢였던 늪의 면적은 10년간 절반으로 줄었다. /픽사베이

2003년 3월, 그는 후세인이 탄핵·체포된 후 3개월이 지나 입국이 가능해지자마자 이라크로 돌아갔다. 25년 만이었다. 곧장 ‘네이처 이라크’를 설립하고 사람들을 모아, 고향의 습지대를 되살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이 ‘자연의 놀라운 힘을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인위적으로 막아둔 보(洑)를 파내 물이 들고 나게 하는 ‘브리치(Breach)’ 작업이 급선무였죠. 보 한 개당 400달러가 필요해 정부에 도움을 청하기도 했지만 ‘비싸다’고 거절당했죠. 결국 사비를 털었습니다. 다행히 수자원 분야의 관료셨던 아버지가 물길을 꿰고 계시고, 제 17년 기술 경력을 더해 가장 효율성이 높은 3곳을 정해 물꼬를 텄죠. 4개월 뒤 가보니, 악취가 나던 갈색 물이 정말 깨끗해졌어요. 단 3곳만에! 놀라웠죠.”

그 후부터 12년 동안 크고 작은 수백 건의 보를 허무는 공사가 이뤄졌다. “바닥에 쌓인 모래를 덜어내 물이 흐르게 하기만 하면, 물이 들고 나면서 더욱 물길이 넓어져요. 그러면서 습지에도 물이 생기고 소금기가 빠지기 시작해 조금씩 옛모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그와 네이처 이라크가 회복시킨 츄바시 지역은 이라크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그는 “이라크로 왜 돌아왔는지가 명확히 해결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습지대 보호를 위해 대규모 댐 건설 사업을 저지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댐을 건설하면 또다시 강물이 막혀 늪이 파괴되는 ‘악몽’을 겪어야 합니다. 이라크의 늪은 ‘리빙(living·삶)’입니다. 습지가 파괴되면서 농업이 안 돼 굶주림에 시달리거나, 돈을 벌기 위해 도둑질과 납치가 늘면서 삶 자체를 잃게 됩니다. 늪은 ‘경제냐, 환경이냐’ 선택의 문제가 아니죠. 습지를 살리는 것이 곧 경제를 살리는 것입니다.”

아잠 알와시는 이제 환경 보호를 위해, 사람을 키우고 국내외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다. 그는 “우리는 하나로 연결된 ‘공동체'”라며 “고향 땅의 습지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면서 이러한 문제의 복잡성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습지 보호를 위해 6~7개의 지역 자치 조직을 세우고, 영국과 미국 등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이라크 청년 6명을 단체 활동가로 키운다. 직접 버스를 빌려 환경부 장관을 현장에 데려가 필요한 점들을 설득한다.

이뿐 아니다. 곧 있으면 이 단체에서 찍은 다큐 영화까지 개봉한다. 터키에서 이라크로 이어지는 강줄기를 두 달 동안 3개의 작은 보트만 타고 내려온 내용이다. 강물과 함께, 이라크와 주변국 간 경제 및 문화가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짚는 기획이다.

그는 “2년이면 습지 회복을 마치고 가족에게 돌아갈 줄 알았는데, 벌써 12년이 지났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우리 세대는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고 나서야 자연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은 때였습니다. 오늘의 세대는 경제적 가치만이 아니라 환경적 가치에도 많은 관심을 두고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길 바랍니다. 이러한 태도와 사고방식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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