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토)

포탄 떨어지는 위급 상황에도… 이젠 안전합니다

KT, 백령도·임자도·DMZ 마을에 초고속 통신 인프라 구축

‘기가스토리’ 프로젝트
백령도 대피소에 초고속통신망 설치
26곳 대피소 실시간 정보 공유

심박수 측정·휴대용 소변검사기 등
취약 지역 노인에 의료 서비스 지원

농가 주민 위한 ICT 솔루션도 개발
스마트폰으로 작물 관리 도와

파도가 높아지자 주민들의 얼굴에 초조함이 묻어났다. 인천여객터미널에서 백령도를 오가는 배편은 하루 두 번뿐. 그마저도 한 달에 절반은 날씨 탓에 결항된다. 2300t이 넘는 대형 선박에 올랐지만 거센 파도에 몸이 좌우로 연신 휘청거렸다. 4시간쯤 지났을까. 먼발치에서 백령도 곳곳의 기암절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불과 10㎞ 거리의 북한 장산곶 주변으로 수백 개의 쇠창살이 경계를 짓고 있었다. 백령도 주민에게 북한은 가장 가까운 육지이면서, 가장 먼 나라다.

1 백령도 진촌2리 주민인 함응택(67)씨가 스마트워치로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2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 주민이 KT가 개발한 농가 ICT 솔루션을 통해 비닐하우스의 농산물을 재배하고 있는 모습. 3 백령도 북포초등학교에 다니는 박신영(12)양이 온라인상에서 KT ‘드림스쿨멘토링’으로 외국어 학습을 하고 있는 모습. /조선영상미디어 임영근 기자, KT 제공
1 백령도 진촌2리 주민인 함응택(67)씨가 스마트워치로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2 전라남도 신안군 임자도 주민이 KT가 개발한 농가 ICT 솔루션을 통해 비닐하우스의 농산물을 재배하고 있는 모습. 3 백령도 북포초등학교에 다니는 박신영(12)양이 온라인상에서 KT ‘드림스쿨멘토링’으로 외국어 학습을 하고 있는 모습. /조선영상미디어 임영근 기자, KT 제공

“아직도 대피 방송이 나오면 가슴이 철렁해. 사이렌 소리가 너무 무서워.”

지난 20일, 백령도 진촌리에서 만난 주순선(52)씨의 말이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으로 뿔뿔이 대피소로 흩어져 가족의 생사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백령도에 설치된 대피소는 총 26곳. 길가에 성인 남자 키보다 낮은 시멘트벽을 세워 만든 대피소는 주민들에게 불안한 장소였다. 난방은 물론 통신 시설도 없어 대피가 해제될 때까지 추위와 고립에 그대로 노출돼야 했다. “통신도 안 되고 대피소끼리 연락할 방도가 없으니 이대로 못 만나면 어쩌나 가슴만 졸였지. 집에 누워 있는 시부모, 고등학교에 가 있는 막내딸 걱정에 눈물만 났어.” 대피 방송이 나올 때마다 주씨는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뛴다.

4 백령도 주민들이 KT의 기가인프라가 구축된 주민대피소로 대피 훈련을 하는 모습. / 조선영상미디어 임영근 기자, KT 제공
4 백령도 주민들이 KT의 기가인프라가 구축된 주민대피소로 대피 훈련을 하는 모습. / 조선영상미디어 임영근 기자, KT 제공

면사무소 옆을 지나자 파란 건물에 설치된 철문이 눈에 들어왔다. 2m 높이의 견고한 문을 열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지하 2층 깊이로 내려가니 100평 규모의 주민 대피소가 드러났다. “1년 새 확 달라졌습니다.” 강용환 백령도 면사무소 민방위 팀장이 곳곳을 소개했다. 대피소 벽면엔 50인치 대형 모니터 2대가 설치돼 있었다. 화면 속엔 백령도 내 다른 대피소 모습이 실시간 나오고 있었고, 다른 모니터로는 백령도에서 218㎞ 떨어진 인천시 옹진군청과의 영상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연평도 사건 당일, 주민 모두 대피소에 모였는데 여고생 한 명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대피소마다 돌면서 딸을 찾아 헤맸죠. 나중에 알고 보니 학생이 혼자 배를 타고 인천으로 나갔더라고요. 이젠 그럴 걱정이 없습니다. 이 시스템을 통해 마을 26개 대피소가 실시간 소통하고, 유사시 인천시청·인천시 소방안전본부·옹진군청·백령도 면사무소 4곳이 연결돼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이는 지난해 8월, KT가 백령도 주민들을 위해 26개 대피소와 인천시청 상황실에 화상회의 시스템을 구축해 서로 연결하고, 1초에 1기가바이트(GB) 이상의 데이터를 전송하는 초고속 통신 인프라를 구축한 덕분이었다. 백령도에 적용할 솔루션 선정을 위해 한 달에 두 번 이상 백령도에 들어간 KT CSV팀은 비상시에도 통신이 가능하도록 KT네트워크부문과 협력했다. KT의 그룹사인 KT파워텔과 함께 원거리 무전이 가능할 수 있도록 LTE 기반의 무전 단말기 ‘라져원(RADGER1)’을 백령도에 적용했고, 통신 장비가 소실돼도 위성을 통해 연락이 가능한 위성 광대역 LTE 기술을 세계 최초로 백령도에 적용했다. KT의 역량과 자원을 활용해 백령도를 안전지대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대피소 한편엔 카페를 연상케 하는 은은한 조명 아래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공간과 테이블이 마련돼 있었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매주 2회 컴퓨터 강좌를 듣고 있다. KT의 임직원 재능기부팀인 ‘IT서포터즈’가 강사로 초빙돼 활동 중이다. 탁구대뿐만 아니라 영화 감상이 가능한 설비까지 완비했다. 강용환 팀장은 “예전엔 위험한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모이는 장소였는데, 지금은 주민들이 수시로 내려와 이야기 나누는 마을 사랑방이 됐다”며 미소를 보였다.

◇도서 지역을 스마트한 안전 마을로… KT의 ‘기가스토리’ 프로젝트

대피소를 나와 소형 선박이 정박돼 있는 장촌포구로 향했다. 조업 경력 20년차 장세견(55)씨는 “지금은 물결이 잠잠해 보여도 언제 돌풍이 불지 모른다”면서 배에 묶어둔 닻줄을 쓰다듬었다. 얼마 전에도 파도가 높게 일면서 이웃 배 3척이 바다에 떠내려간 적이 있다고 했다. 특히 일거리가 적은 겨울철이 되면 유실 사고가 자주 벌어진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KT는 백령도의 두무진, 용기, 장촌포구 등 3곳에 CCTV를 설치했다. CCTV 화면은 실시간 스마트폰으로 전송돼, 배 전체 모습은 물론 파도 높이까지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젠 파도가 높은 날 포구에 나오지 않아도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으니 마음이 놓여.” 장씨가 휴대전화를 꺼내 들며 말했다.

건강 이상 징후를 감지해 가족에게 정보를 전송하는 ‘스마트워치’도 주민들의 반응이 뜨겁다. KT가 개발한 솔루션을 탑재한 이 손목시계는 내부에 장착된 센서가 5분마다 심박수를 측정하고, ‘평소와 심박수가 다르다’는 문자가 보호자에게 전송된다. 빨간색 응급 전화 버튼을 누르면 119와 바로 연결된다. 성선옥(75)씨는 “작년에 혼자 사는 노인이 쓰러졌는데 도움을 청하지 못해 위험했던 적이 있었다”면서 “이제 좀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비단 백령도뿐만 아니다. KT는 지난해부터 소외 지역에 기가 인프라를 구축해 주민의 안전과 편의성을 높이는 ‘기가스토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전남 신안군과 MOU를 체결한 KT는 임자도를 제1호 기가아일랜드 대상자로 선정해 인터넷 공급망을 비롯, 의료·지역경제·교육·문화·에너지 등 5개 분야에 걸친 솔루션을 개발했다. 의료 서비스에 취약한 섬 주민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개발한 4.3인치 휴대용 소변 검사기 ‘요닥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이는 소변 검사지에 소변을 묻힌 뒤 약 1분이면 당뇨·만성 신장염·방광염·요로간염 등 20여개의 질병 여부를 발견할 수 있는 검사 장비다. 보건지소에 20대를 보급해 1만명에 달하는 임자도 노인들이 건강관리를 받기 시작했다. 장연철 임자도 이장은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 간호사들이 요닥서비스로 검사한 결과가 실시간 가족에게 문자 메시지로 전달된다”면서 “당뇨 수치가 올라가면 바로 알 수 있으니 자녀들이 ‘걱정을 덜었다’며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81%가 농사를 짓는 임자도 주민을 위해 농가 ICT 솔루션도 개발했다. 14년 동안 1000평 남짓한 땅에 브로콜리 농사를 짓고 있는 나승철(67)씨는 수확량이 20%까지 늘었다. 비닐하우스에 장착된 복합 환경 제어 시스템이 온도·습도에 따라 자동으로 물을 주고, 문을 개폐해 통풍 관리를 해준 덕분이다. 나씨는 “작년만 해도 하루 종일 비닐하우스 관리에 매달렸는데, 이젠 스마트폰으로 작물 상태를 확인해 버튼 하나로 관리할 수 있으니 언제든 섬 밖으로도 자유롭게 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을과 지속적인 소통, 그룹사와 협력… 맞춤형 ICT 교육 모델로 발전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에 위치한 대성동(자유의 마을)은 비무장지대(DMZ)에 있는 유일한 마을이다. 우리나라의 통제를 받지 않는 UN군 사령부(이하 UN사) 관할 구역이라 주민들은 1년의 70% 이상 마을에 거주해야 한다. 친척 및 직계 가족만 UN사 허락을 받아 출입 가능하고,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출입이 통제된다. 1㎞ 앞에 있는 북한의 기정동 마을은 육안으로 보일 정도. 철저한 통제 때문에 대성동 아이들은 정보에 소외돼 있었다. 대성동초등학교 교사 박정훈(36)씨는 “통신·인터넷망이 부족하다 보니 수업 도중에 아이들과 컴퓨터실에 가서 필요한 자료를 일일이 출력해 오거나, 학년별로 컴퓨터실을 예약해 쓰는 등 불편함이 많았다”면서 “외부 장비를 들여오거나 컴퓨터 시설 공사도 UN사 허가 없이 함부로 할 수 없어서, 컴퓨터가 고장 나면 애를 먹었다”고 설명했다.

2012년부터 대성동 초등학교에서 재능기부로 ICT 교육을 진행하던 KT 임직원(IT서포터즈)들은 이러한 불편함을 개선할 방법을 주민들과 고민해왔다. UN사와 장기간 협의를 거친 KT는 지난해 기존보다 10배 빠른 기가인터넷·와이파이·UHD TV 등 기가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학교 전체에서 자유롭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했고, 중앙 서버가 컴퓨터실에 있는 PC를 원격으로 제어·관리하도록 만들었다. PC가 고장 나면 KT 서버 담당자가 원격으로 유지·보수까지 해준다. 출입 통제 때문에 제한된 인력으로 공사하랴, 통금 시간에 맞춰 인프라를 설치하랴 애를 먹었지만 그만큼 아이들의 만족도는 높다.

박씨는 “태블릿을 활용해 수업을 진행하니 아이들의 집중력이 높아졌고, 대성동초등학교가 소프트웨어 교육을 전문화한 특성화 학교로 입소문이 나서 학부모들이 관심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대성동초등학교의 전교생 수는 30명으로, 대성동 아동 6명 외의 24명은 파주 지역에서 추첨을 통해 입학하고 있다).

2013년부터 시작한 온라인 멘토링 플랫폼인 ‘KT드림스쿨’도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해 협력, 시너지를 내고 있다. 서울에 거주하는 세계 11개국 유학생 13명이 백령도 학생들의 멘토로서, 매주 2회씩 온라인 화상 시스템으로 일대일 외국어 회화를 지도한다. 기가 인프라가 구축된 덕분에 온라인 화상 교육도 원활하게 이뤄진다.

박신영(12)양은 드림스쿨 멘토링을 통해 중국어 회화가 가능해졌다. 박양은 “중국인 엄마와 마음껏 대화하는 게 소원이었는데 섬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전했다. 백령도 내의 IT 교육 보급을 위해 지난해 11월, 자진해서 백령도로 들어와 6개월 넘게 상주하고 있는 장성락 IT서포터즈 백령TF팀 과장은 “2007년부터 지속해온 IT서포터즈의 노하우를 섬 지역 아동들에게 나눌 수 있어 보람된다”면서 “스마트폰을 다룰 줄 모르던 주민들이 이젠 컴퓨터 자격증을 딸 정도로 IT에 익숙해졌다”고 전했다. 임자도, 대성동, 백령도 등 소외 지역의 ‘기가아일랜드’구축은 KT그룹 14개사의 협력도 주효했다. 14개사가 기금을 출연한 데 이어 KTH, KT ENGCORE, KT뮤직이 콘텐츠 제공과 시스템 설치에 참여해온 것.

오성목 KT네트워크부문장 부사장은 “현재 청학동을 비롯해 기가인프라와 ICT 솔루션이 필요한 지역을 추가로 발굴하는 중”이라면서 “앞으로 5년 동안 전국 500여개 도서 지역에 기가인프라를 구축해 주민들이 불편함 없이 통신 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국민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백령도=강미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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