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대기업 제치고 공공 조달 시장 뚫은 사회적 기업 3곳… 비결은?

강동도시농부, 수산 축산 등 10여개 업체와 협력 구립 어린이집에 식자재 납품 3년째
한누리, 미화원 1명 퇴직 빈자리 어르신 2.5명 고용효과 10여명으로 시작 3년 새 60명으로
도우누리, 280명 고용한 돌봄 서비스 전문기업 3억여원 적자시설 맡아 2년 만에 흑자 전환

“처음 서류 꾸미고, 제안서 만들 땐 며칠 밤을 새웠죠. 구청에 가서 ‘이렇게 하는 게 맞느냐’며 몇 번씩 확인하기도 했고요. 농민들이 농사짓는 것 외에 뭘 알았겠어요(웃음).” 명승욱 강동도시농부 본부장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어요. 이젠 형식보다 품질을 더 신경 쓰려고 노력합니다.”

강동도시농부는 친환경 농산물을 취급하는 사회적기업이다. 2011년 11월, 서울시 강동구 고덕동 일대 농지에서 오이, 토마토, 고수(향채의 일종) 등을 키우던 농부 4명이 의기투합해 결성했다. ‘어렵게 재배해도 대접받지 못하는 유기농산물 시장을 바꿔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상황은 좋게 흘러가지 않았다. 강동구 둔촌동에서 ‘로컬푸드’ 매장을 시작했지만 판매는 시원치 않았고, 가정으로 직접 배달하는 ‘꾸러미’ 사업도 부진하기만 했다.

최재일 강동도시농부 대표가 하우스에서 쌈채류를 수확하고 있다.
최재일 강동도시농부 대표가 하우스에서 쌈채류를 수확하고 있다.

◇강동도시농부, 구립 어린이집에 급식 식자재 납품

2012년 초, 강동구 사회적경제지원센터를 통해 접한 ‘강동구어린이집 급식 재료 공동구매 납품업체 선정사업’이 한줄기 희망이 됐다. 지역 내 80개 구립·서울형 어린이집에 급식 식재료를 납품할 업체 5곳을 선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입찰 한 달 전에 공고가 났어요. 냉장 차량이나 창고 등 시설은 물론 소독필증,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 보험 관련 서류 등 빠짐없이 갖추려고 노력했죠.”

문제는 식자재 구성이었다. 명승욱 본부장은 “몇천명이 먹는 학교 급식은 채소·곡류·육류 등을 품목별로 납품할 수 있지만, 규모가 작은 어린이집은 끼니에 필요한 모든 식자재가 한꺼번에 들어가야 했다”고 설명했다. 강동도시농부는 서울·경기 일대를 뒤지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파트너를 물색했다. 쌀은 경기도 광주에서, 고기는 학교 급식에 정통한 한국냉장㈜에서 제공받는 식이다. 한 달 새 수산·축산·공산품을 포함해 모두 10개 업체와 협력 관계가 맺어졌다. 명 본부장은 “외부 파트너가 늘어난다는 건 기업 입장에선 업무량이 가중되는 부담이 있지만, 모두 우리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했다. 강동도시농부는 현재 지역 내 구립·서울형 어린이집 20곳에 급식 식자재를 납품하고 있다. 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려고 노력했던 결과다. 매년 납품업체가 재선정되는데, 벌써 3년째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를 통한 매출은 강동도시농부 전체 매출의 60% 정도. 효자 비즈니스인 만큼 전략도 매년 업그레이드된다.

“어린이집 아이들을 대상으로 농지 체험학습을 시켜주며, 지역에서 키우는 ‘로컬 푸드’라는 걸 강조합니다. 체계적인 생태 교육이나 텃밭 활동도 준비하고 있고요. 납품업체 중엔 농협이나 풀무원같이 큰 기업도 있는데, 그들과 경쟁하려면 또 다른 한 방이 필요하지 않겠어요(웃음)?”

사회적기업 한누리 소속의 한 어르신이 서울 서대문구 증가로 골목을 청소하고 있다.
사회적기업 한누리 소속의 한 어르신이 서울 서대문구 증가로 골목을 청소하고 있다.

◇사회적기업 ‘한누리’, 서대문구에 골목 청소 위탁사업 제안해 조직 성장 일구다

청소 용역 전문 사회적기업 ㈜한누리는 매일 서울 서대문구 14개 동의 골목 구석구석을 누빈다. 2012년부터 ‘서대문구 동 뒷골목 청소 민간위탁’ 사업을 맡아 벌써 3년째 도시의 골목을 밝히고 있다. 한누리는 2010년 ‘함께일하는세상’의 청소 파트가 분사한 조직이다. 이태호 한누리 대표는 “분사할 당시만 해도 취약 계층 10명 정도가 모여 일하던 작은 회사였다”고 했다. 이들이 지자체의 위탁사업을 따낼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보통 지자체에선 환경미화원 유지·관리에 대한 고민이 깊어요. 재정 부담이 은근히 크거든요. 그렇다고 일반 영리 기업에 용역을 주면, 처우 문제로 환경미화원 노조가 반발하죠. 우린 발상의 전환을 꾀했어요.”

취약 계층 일자리 창출형 사회적기업이었던 한누리는 이를 고령자 일자리로 연결했다. 환경미화원 한 명이 퇴직해 생기는 공백으로, 60세 이상 어르신 2.5명 정도를 고용하는 사업을 설계해 지자체에 제안한 것. 이 사업은 지자체·고령자·사회적기업 모두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 서대문구는 동일 예산으로 2.2배 고용 효과를 봤다. 기존의 환경미화원 일자리를 유지하면서도, 취업을 희망하는 고령자는 주5일, 8시간 근무에 적지 않은 월급을 받는 안정된 일자리를 얻었다.

현재 이 사업에 참여하는 지역 고령자는 30명이 넘는다. 평가도 좋다. 서대문구 청소행정과 관계자는 “기존엔 단기 공공근로 등을 통해 청소가 이뤄지던 지역인데, 전문 기업이 책임감을 가지고 업무를 진행하니 주변 만족도가 훨씬 높아졌다”고 했다.

한누리는 이 사업을 통해 계열사 분리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했다. 2013년에는 서울시 강동구에서도 이 사업을 벤치마킹하며 한누리에 일을 맡겼다. 회사 매출의 절반 정도가 이를 통해 창출된다. 회사는 3년 새 60명 규모로 성장했다.

이태호 대표는 “공공과 많은 접점을 만들고, 많이 요구하는 만큼 얻을 수 있는 것도 많다”며 “이를 위해선 먼저 공공의 필요를 제대로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작년 추석, 서울시 중랑시립요양원에서 펼쳐진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한가위 잔치’의 한 장면.
작년 추석, 서울시 중랑시립요양원에서 펼쳐진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한가위 잔치’의 한 장면.

◇’사회적협동조합 도우누리’, 사회적기업 최초로 국공립 시설 위탁 운영

2013년 11월, 국내 최초로 국공립 시설의 위탁운영을 맡은 사회적기업이 탄생했다. 서울 중랑구 망우동의 ‘중랑시립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는 ‘사회적협동조합 도우누리’다. 돌봄 서비스 전문 기업으로 현재 재가 서비스, 방문 시설, 거주 시설 등 3개 사업 영역에서 280명이 넘는 직원이 일하고 있다. 공공위탁 시장의 문을 연 사회적기업으로 통하지만, 사실 ‘상처뿐인 영광’에 가까웠다.

중랑시립요양원은 기존에 운영하던 법인이 2년간 3억5000만원이 넘는 적자를 내다 중도 하차했을 정도로 경영상 문제를 겪었고, 요양원 안에 노동조합이 생기며 내홍에 시달리기도 했다. 서울시가 3번에 걸쳐 입찰을 시도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던 이유도 그래서다.

하지만 도우누리는 개의치 않았다. 공익적 미션을 가진 사회적협동조합 모델의 우수성을 어필했고, 사회복지 서비스에 대한 전문성과 조직 역량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흑자 운영이 가능하다’는 사업계획서도 제시했다. 노동조합 간부들을 만나 의견을 교환하며 갈등 봉합에도 나섰다.

민동세 도우누리 이사장은 “충분한 신뢰를 쌓지 못하면 시립요양원같이 규모가 큰 시설은 맡기지 않는다”고 했다. 주인 잃은 시설은 수의계약(유찰이 3차까지 이어지면 해당과에서 수의계약을 진행할 수 있다)까지 거치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도우누리의 품에 안겼다.

지난 2년간 허리띠를 졸라 맨 끝에 지난해에는 적자의 터널을 탈출했다. 민 이사장은 “현재 노인요양 제도에선 노인 숫자가 매출과 직결되기 때문에 경증인 재가 서비스부터, 중증인 생활 시설까지 유기적인 연계와 협력이 이뤄지지 않는데, 한 조직이 모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 이사장은 이어 “사회적경제 기업이 공공시장에 진출하려면, 그 진출이 조직의 미션과 맞아야 한다”며 “이 부분이 명확해야 기회가 왔을 때 포착하기도 쉽다”고 조언했다.

최태욱 기자

강미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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