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수)

선진 기업들 언급조차 안하는 CSV… 한국은 왜 열광하는가

국내 기업 CSV 신드롬 집중 분석

김종대 인하대 교수·지속가능경영연구소 소장
김종대 인하대 교수·지속가능경영연구소 소장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기업, 언론 및 학계의 CSV(Creating Shared Value·공유가치창출)에 대한 반응은 가히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이를 반영하듯, 국내 주요 일간지(3개)와 경제지(2개)에 나타난 CSV 언급 기사 건수는 2011년 1건에서 2014년 83건으로 급증했다. 지속가능보고서에 CSV를 언급한 기업 수도 2011년 1개에서 2014년 10개로 증가했다. 2014년 기준, 지속가능보고서를 발간하는 전체 기업의 12.3%가 CSV를 언급하고 있는 셈이다. 학계에서는 다양한 CSV 포럼을 구성하고, 시상 제도 등을 운영하는 등 CSV에 열광하고 있다. 마치 CSV 신드롬에 편승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CSV란 Creating Shared Value(공유가치창출)의 약자로,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포터 교수(M Porter)가 2011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에 발표한 동명의 논문에서 주장한 개념이다. CSV는 기업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전략적 접근이다. 포터는 CSV가 CSR을 대체할 새로운 개념일 뿐 아니라 자본주의 문제점을 해결할 대안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속가능보고서에 CSV 활동이라고 예시한 것이 그 이전 활동과 질적으로 차이가 없음에도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을 굳이 CSV로 고쳐 부르는 기업(삼성전자·현대자동차·풀무원·KT 등)이 많으며, 심지어 구체적인 활동 없이 CSV를 언급하는 기업(삼성증권·LG화학·포스코에너지 등)도 있다. 이 중 어떤 기업도 포터가 말한 CSV의 세 조건을 충족하는 기업이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 CSR 또는 지속 가능 경영 관련 조직의 명칭을 CSV로 변경한 기업(CJ그룹과 계열사·KT·SK텔레콤·아모레퍼시픽 등)도 있다.

◇CSV 신드롬은 한국적 현상

CSV를 비판 없이 수용하는 우리나라 분위기와 달리 선진 기업들은 CSV를 포터와 네슬레사가 만들어 낸 하나의 성공 사례 또는 유형으로 본다. 실제로 세계적인 CSR 선도 기업 중 CSV 개념을 사용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DJSI(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 기업 중 스위스 투자평가사 로베코샘(Robecosam)사가 분석한 2014년 24개 부문별 선도 기업 중 지속가능보고서에 CSV를 언급한 기업은 네슬레사와 KT밖에 없다.

또한 포터가 자신의 논문에서 CSV의 대표 사례로 제시한 16개 기업 중 2012년 이후 보고서에 CSV를 언급한 기업은 네슬레사와 멕시코 농업기업 제인 이리게이션(Jain Irrigation)밖에 없으며 인텔, 코카콜라 및 싱가포르 농산물업체 올람(Olam)은 CSV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기업 경영 방식에 있어서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공유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언급이 있을 뿐이다. 나머지 구글, IBM, 인텔, 존슨앤존슨, 월마트, GE, 유니레버를 포함한 11개 기업은 이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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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CSV 열풍… 왜?

우리나라 기업들은 그동안 사회공헌 활동에 많은 투자를 해 왔지만 기업의 이미지 향상과 무형 자산 가치 창출에 성공하지 못했고, CSR 책임자들은 전략적 CSR 활동의 성공적 실행을 위한 대안에 목말라해 왔다. 2013년 우리나라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 실태를 조사한 전경련의 ‘2014년 주요 기업·기업재단 사회공헌백서’에 의하면 주요 기업 234개 사의 2013년 사회공헌 규모는 2조8114억원으로 매출액 대비 0.17%, 세전 이익 대비 3.76%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사회공헌 외부 저해 요인을 묻는 항목에 응답자들은 ‘반기업 정서 등 외부의 왜곡된 시선 및 보도'(21.3%)와 ‘사회공헌을 포함한 나눔 활동에 대한 무관심'(19.7%)이라고 답하고 있다. 응답자의 41%가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이해관계자들의 인식을 효과적으로 바꾸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CSR에 대한 깊은 성찰과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새로운 시류를 좇는 CSV 신드롬의 배경에는 학계의 무책임이 한몫하고 있다. 전경련 조사에서 ‘학계의 사회공헌에 대한 체계적 연구의 미흡'(9.7%)이 외부 저해 요인이라 응답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

◇CSV의 허와 실

포터는 그의 논문에서 CSV가 “미래 비즈니스 사고의 변혁을 가져오고, 세계경제에 혁신과 생산성 향상의 새로운 물결을 몰고 올 것이며, 또한 자본주의 그 자체와 사회와의 관계를 재정의할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트리플 바텀라인(Triple Bottom Line·지속가능경영의 세 가지 축인 재무와 환경, 사회 책임)의 창시자인 엘킹턴(J Elkington)은 가디언지 기고에서 노보 노르디스크(Novo Nordisk)사의 인슐린 공급 사례를 들면서 “CSV는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고 지적했고, 앤드루 크레인 요크대 경영학과 교수는 2014년 캘리포니아 매니지먼트리뷰(California Management Review)에 기고한 논문에서 “CSV는 자본주의 본질적 문제점과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결여되어 있으며, CSV는 전략적 CSR의 한 유형일 뿐”이라 지적하고 있다.

◇진정한 CSR을 찾아서

CSV 개념 자체는 전형적인 전략적 CSR로서, 바람직한 목표일 수 있다. 다만 네슬레의 CSV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성공할 수 있는 업종이 무엇인지 그리고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면밀히 분석, 접근해야 한다. 또한 2005년 CSV 용어를 창시한 네슬레사의 CEO 크리스챤센(N Christiansen)이 지적한 바와 같이 전략적 CSR을 CSV로 어설프게 포장하는 전략은 그린워싱(green washing)으로 비치거나, 진정성(integrity) 결여로 인식될 위험이 있다.

경제적 책임, 법규 준수, 윤리적 경영 활동 등 CSR 기초(CSR basics)와 관련하여 이해관계자의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기업이 지나치게 전략적 접근을 강조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기업이 CSR을 전략적으로 추구하는 것과 전략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지금은 ‘CSR 대 CSV’ 같은 이름 붙이기 게임(naming game)을 할 때가 아니다. 기업이 CSR 기초로 돌아가 진정성을 가지고 CSR 전략을 실행하며 지속가능성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창출하여 전략적 CSR의 성공 사례를 만들어 나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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