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월)

폐광촌 아이들이 문화 전도사로… “한국 보여주고 왔어요”

하이원 리조트 ‘하이틴 원정대’

런던에 있는 현대미술관 테이트모던 앞 광장. 강원도 태백 장성여자고등학교에 다니는 이서빈(18)양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친구들과 그곳에 섰다. 수많은 외국인 앞에서 원더걸스의 ‘노바디’, 카라의 ‘프리티걸’ 등에 맞춰 춤을 추기 위해서였다. “저희가 공연을 시작하자 주변에 있던 외국인들이 ‘쟤네 뭐야?’라는 반응을 보였어요. 하지만 이내 손뼉을 치며 호응해줘서 재미있었어요.” 이 공연은 한국의 대중문화를 알리기 위해서 이양과 친구 11명이 함께 준비했다.

이서빈양이 런던에서 길거리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강원도 폐광지역 발전을 위해 정부와 강원도가 주도해 만든 ‘하이원리조트’의 사회공헌 사업 덕분이다. 삼척·태백·정선·영월 등 폐광지역 청소년을 위한 글로벌 체험연수인 ‘하이틴 원정대’는 올해로 6년째를 맞았다. 매년 다른 주제를 가지고 실시하는이 행사의 올해 주제는 ‘문화-예술 산업의 관광산업으로의 연계’였다. ‘미술’, ‘공연’, ‘패션’, ‘도시디자인’, ‘박물관’이라는 소주제로 나눠 고등학교 1·2학년생을 대상으로 팀당 12명씩 총 60명을 선발했다. 10월 30일부터 11월 6일까지 총 7박8일 동안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된 현지 연수는 5개 팀 주제에 맞는 런던과 파리의 명소를 돌아보고 현지에 나가 있는 한국 전문가를 만나는 것으로 구성됐다.

미상_사진_하이틴원정대_청소년_2010‘하이틴 원정대’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 관광’에 그치는 해외연수가 아닌 철저한 사전준비를 바탕으로 한 ‘현지 답사’를 시킨다는 점이다. 공연팀에 속했던 이서빈 양은 유럽으로 떠나기 전 한달 동안 연수 준비를 했다. “주중에는 우리나라와 영국·프랑스의 공연 등을 조사하고 주말에 팀원끼리 만나 공부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어요.” 춘천과 서울로 현장학습도 다녀왔다. 춘천국제연극제에 가서는 예술감독과 인터뷰를 하고, 서울에서는 대학로의 유명한 뮤지컬인 ‘오아시스세탁소’를 봤다. ‘점프’와 ‘브레이크아웃’을 만든 김경훈 대표를 만나 인터뷰도 했다. 이양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많이 공부하고 유럽에 갔기 때문에 더 제대로 볼 수있었다”고 말했다.

삼척 삼일고등학교의 박혜주(17)양은 아직 이번 연수의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설렌 목소리로 지난 7박8일에 대해 말했다. “꿈을 꾼 것 같아요. 학교와 집을 오가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번 연수에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박양은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에 가서 1등 서기관을 만나기도 했다. “한국이 예전에 비해 다른 나라에 많이 알려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프랑스 사람들은 ‘한국’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딱히 없대요. 그래서 더욱더 한국을 잘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고등학교 선생님이 꿈이었던 박양은 “이번 연수 후 외교관이 되는 쪽으로 꿈을 바꾸려고 ‘꿈틀거리고’ 있다”고 말했다.

태백 장성여자고등학교에 다니는 고진서(18)양은 이번 연수를 통해 자신의 꿈에 한발 더 다가갔다. 대안학교에서 사회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하고 싶었던 고양은 사실 낯가림이 심해서 걱정이었다.

폐광 지역 청소년 60명에게 지난 7박8일 동안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에서 보낸 시간은, 미래의 꿈을 꾸는 밑거름이 되었다.
폐광 지역 청소년 60명에게 지난 7박8일 동안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에서 보낸 시간은, 미래의 꿈을 꾸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번 연수를 통해서 모르는 사람들과 얘기를 하면서 적극적으로 사람과 관계 맺는 법, 친구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시간을 보내면서 다른 사람들과 공동생활 하는 법 등을 배웠어요. 제 성격이 많이 달라졌어요.”

이번 연수에서 도시디자인팀을 인솔했던 재단법인 효신의 심기중(30) 간사는 “과거 부모님 세대는 ‘좋은 대학’, ‘안정된 직장’을 목표로 청소년 시기를 보냈지만 요즘 청소년은 ‘나 자신이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학생들이 한국을 떠나 내 나라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현재 한국으로 돌아온 60명의 하이틴원정대는 12월에 있을 탐방 후 발표를 위해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11월 말까지 답사했던 곳을 장소별로 정리하고 서로의 느낀 점을 글로 작성해 작은 책자로 만들 예정이다. 유럽에서 보고 배운 것을 지역사회에 적용시킬 수 있도록 지자체에 제안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이번 연수를 주최한 하이원리조트의 최영(59) 대표이사는 “열악한 교육환경으로 인해 문화적으로 소외된 폐광지역 청소년들이 더 넓고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자 하이틴 원정대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기획했다”며 “강원도를 대표하는 기업으로서 더욱 진정성 있는 사회공헌활동을 펼치며 지역사회에 보답해 나갈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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