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화)

한국엔 없어서… CSR(기업의 사회적책임) 배우러 해외 갑니다

국내 10大 대학 CSR 교육 현실
기업의 사회적책임 교육 인색한 한국… ‘기업윤리’ 필수 과목으로 지정한 학교
카이스트·서강대 등 MBA 다섯곳뿐… 영국·미국 경영대는 CSR 강의 필수
“대학 차원 대비와 노력 필요한 시점”

“배울 곳이 없어 답답합니다.”

대기업 지속가능경영팀에서 10년 넘게 일한 A씨는 최근 CSR(기업의 사회적책임) 공부를 하기 위해 석사 과정을 알아보다 한숨을 쉬었다. 국내 유명 대학원 사이트를 아무리 뒤져봐도 CSR 교육 과정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 일부 경영대학원에 개설된 ‘기업 윤리’ ‘기업의 사회적책임’ 과목명이 눈에 띄었지만, 선택 과목인 데다 강의 내용도 CSR 개념을 가볍게 다루는 정도에 불과했다. 해당 과목을 듣고 있는 지인 역시 “경영 전략과 마케팅이 핵심이라 CSR을 제대로 배우려면 해외 대학원을 가라”고 조언했다. 고민 끝에 A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비용, 경력 단절이 염려됐지만, 해외 CSR 전문대학원에서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CSR을 공부하고 싶지만, 정작 배울 곳이 없어 방황하는 인재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상생·지속가능 경영이 이슈가 된 지 오래지만, 학계가 현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CSR 외치는 대한민국, 정작 배울 곳은 없다

국내 대학들은 CSR을 경영의 필수 요소로 가르치는 데 인색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국내 상위 대학 10곳(2014 세계대학평가 기준)을 조사한 결과, 지배구조·인권·노동·공정거래·환경·소비자·공동체(커뮤니티) 등 CSR 전반을 가르치는 석·박사 과정은 한 곳도 없었다. 특히 일반 경영대학원 내에 CSR 관련 내용을 필수과목으로 개설한 곳은 경희대(‘윤리경영’, 석·박사 통합 필수과목)가 유일했다.

CSR을 선택과목으로 지정한 대학원으로 범위를 넓혀도, 서강대·고려대 2곳만 포함됐다. 한양대는 “다음 학기에 ‘윤리경영 세미나’를 경영대학원 선택과목으로 개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MBA(경영전문대학원) 과정 역시 사정은 비슷했다. ‘기업윤리’란 이름으로 과목을 개설한 대학은 있지만, 이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곳은 카이스트·연세대·고려대·서강대·한양대 등 5곳(50%)에 불과했다. 카이스트는 CSR 분야 중에서 환경에 집중해 ‘녹색경영 MBA’를 별도로 운영하고, ‘금융윤리와 사회책임’을 필수과목으로 교육하고 있다. 서강대는 지속가능기업 윤리연구소를 설치해 CSR 관련 특강을 진행하고, MBA(야간) 1·2학기에 ‘기업윤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학부 과정에서 ‘기업윤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곳도 경희대가 유일했다.

◇해외 대학들, MBA 과정에 CSR은 기본

반면, 해외 대학들은 CSR을 경영의 중요한 요소로 가르치고 있다. 지난해 영국의 대학 평가 기관 QS는 ‘세계 대학평가’에서 하버드대·스탠퍼드대·컬럼비아대 등 상위에 오른 경영대학들이 CSR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MBA는 윤리경영이 핵심 과목으로 포함돼 있고, 조지 워싱턴 경영대학원에선 윤리경영 외에도 글로벌 CSR·인권·비영리 경영·환경과 지속가능성 등 CSR 전반에 걸친 과목들을 이수하도록 했다.

2003년, 영국 최초로 ‘CSR MBA’ 과정을 별도로 개설한 노팅엄(Nottingham)대학은 ‘윤리경영”CSR 전략”기업 거버넌스와 사회적책임’이 핵심 모듈로 구성돼 있다. 일반 경영대학원에도 CSR 과정(MSc in CSR)이 따로 마련돼, 이론 교육과 사례 연구가 동시에 진행된다. 심지어 학부 과정에서도 CSR을 중심으로 비즈니스와 사회의 관계를 공부하고, 직원·소비자·커뮤니티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그룹과 연결되는 사회적 책임을 토론한다. 영국 맨체스터 경영대와 리즈(Leeds)대에도 지속가능경영·윤리경영이 MBA의 핵심 과목으로 지정돼 있다.

이에 대해 국내 대학교수들은 “CSR 과정을 따로 만들려면 대학 내 다른 전문대학원으로부터 티오(TO)를 뺏어와야 한다”면서 “CSR 교육에 대한 수요가 얼마만큼 높은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추진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반면, 인하대는 2010년 ‘지속가능경영 MBA 과정’을 개설해 CSR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4학기 동안 CSR 전략 세미나, 지속가능성 측정과 보고, 지속가능 금융과 투자, CSR 경영전략 등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강의들이 진행된다. 2011년엔 일반 경영대학원 내에 지속가능 경영 석·박사 과정을, 올해는 경영학과 학부 과정에 ‘CSR 트랙’을 개설했다.

CSR 트랙을 선택해 1년간 ‘CSR경영전략과 사례’ ‘CSR과 인적자원관리’ ‘CSR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등 관련 과목을 이수한 학부생들에겐 ‘CSR 트랙 인증서’가 수여된다. 김종대 인하대 경영대 학장은 “마케팅·재무·조직경영 전공 교수들을 설득해 함께 CSR을 공부하고, 대학을 꾸준히 설득한 결과”라며 “CSR 펀드를 만들어 MBA나 석·박사 과정을 듣는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임태형 사회공헌정보센터 소장은 “최근 CSR 담당자를 꿈꾸는 대학생이 늘고, 기업 실무자들의 CSR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대학 차원의 대비와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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