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안마는 한마디로 회복… 시각장애인의 건강한 일자리 위해 뜻 모았어요”

국내 최초 시각장애인 안마사 협동조합 ‘맑은손지압힐링센터’ 르포
시각장애인 안마사 10명 공동 창립 퇴폐업소 오해받아 설립 초기부터 난관
손님 65% 청년층… 올 초 月1000만원 매출 점포 수 늘리고 싶지만 규제가 발목 잡아

“어깨가 아프십니까? 범인은 컴퓨터군요. 컴퓨터를 없애버릴 순 없고, 제가 만져드리겠습니다.”

푸른 빛이 감도는 개량 한복을 정갈하게 입은 박숙자(56)씨가 정면을 응시한 채, 한 발 한 발 앞으로 다가왔다. “등허리를 저에게 주시고 옆으로 누워주세요. 기자님 목은 어떻게 생겼나 궁금합니다.” 황토색 침대에 몸을 비비며 어정쩡하게 눕자 박씨는 “안마가 처음이냐”며 단번에 알아차렸다.

맑은손지압힐링센터가 지향하는 안마는 회복이자 어루만짐이다. /맑은손지압힐링센터 제공
맑은손지압힐링센터가 지향하는 안마는 회복이자 어루만짐이다. /맑은손지압힐링센터 제공

박씨의 세상이 온통 까맣게 변한 것은 10년 전, 뇌압 상승으로 인한 실명이었다. 깜깜한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했던 그녀에게 희망을 준 것은 다름 아닌 ‘안마’였다. 앞은 볼 수 없지만, 덕분에 손끝으로 사람 속을 보게 됐다고 했다. “하루 12시간을 일해도 손님들 건강을 챙기고 있다는 점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제가 도움만 받으면서 사는 게 아니라 나도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서울맹학교에서 2년 동안 안마 기술을 실습한 뒤, 경로당·교회를 돌아다니며 안마 봉사 활동을 벌이던 박씨. 그녀는 1년 전,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로 나왔다. 서울맹학교 동기였던 정경연(58)씨의 권유로 시각장애인 안마사 협동조합 창립 멤버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당시엔 다 잘 안 될 거라 그랬어요. 1년간 버틴 거 보면 다들 신기하다 그래요.” 한껏 고무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던 박씨가 갑자기 기자의 팔꿈치를 꾹꾹 눌렀다. “이거 아픈 것도 컴퓨터 때문이에요. 나중에 심해지면 손끝까지 저리다니깐요. 자주 풀어주셔야 해요.” 키 150㎝의 작은 체구에서 뿜어나오는 손아귀 힘이 꽤 단단했다. 60분짜리 맑은손코스 안마 비용은 2만9000원. 잦은 야근과 노트북 사용으로 뻐근했던 뒷목 근육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지난달 17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위치한 국내 최초 시각장애인 안마사 협동조합 ‘맑은손지압힐링센터'(이하 힐링센터)를 찾았다. 정경연씨와 박숙자씨를 비롯한 시각장애인 안마사 10명이 장애인 안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극복하고 경제적 자립을 위해 설립한 곳이다. 정씨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불법 퇴폐 업소 안마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속상했다”면서 “개인 안마사가 다들 재정적으로도 취약하기에 십시일반 자본을 모아 협동조합을 만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사무실을 구하는 것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안마원=퇴폐업소’라는 생각이 지배적인데다, 시각장애인이 운영한다는 것을 알고는 계약이 연이어 불발된 것. 결국 1층 자리는 포기하고, 이수역 근처 상가 3층에 자리를 잡았다.

(왼쪽부터) ①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지역 주민들에게 찾아가는 안마 교육을 펼치고 있다. ②힐링센터 2인실에서 안마를 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안마사들. ③맑은손지압힐링센터 정경연 대표. /맑은손지압힐링센터 제공
(왼쪽부터) ①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지역 주민들에게 찾아가는 안마 교육을 펼치고 있다. ②힐링센터 2인실에서 안마를 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안마사들. ③맑은손지압힐링센터 정경연 대표. /맑은손지압힐링센터 제공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 외벽과 달리 힐링센터 안은 따스했다. “어릴 적에 손자가 배 아프다 그러면 할머니들이 ‘아이고 내 새끼, 내 새끼’ 하며 손으로 쓸어주곤 했잖아요. 안마는 한마디로 회복이에요. 과로한 노동이나 스트레스로 망가진 몸을 복구시키는 거죠.” 나뭇잎, 흙내음, 물빛, 자스민, 불꽃…. 정경연씨의 안마 철학은 방 이름에도 묻어났다. 힐링센터는 1인실 4개, 2인실 1개, 3인실 1개 등 총 6개 방으로 구성돼 있었다. 서울시 마을기업에 선정되면서 받은 지원금 5000만원은 인테리어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에 힐링센터를 응원하는 젊은이들도 힘을 보탰다. 눈이 보이지 않아 어려웠던 홍보나 마케팅은 비즈니스를 통한 사회공헌 동아리인 ‘인액터스’ 서울대지부 ‘손길’팀이 돕고 있다. 개원 첫 달에도 이들이 대학 동기, 선배, 부모님 등 지인을 총동원하면서 영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안마원은 과연 퇴폐적인 장소이기만 할까. 문 여는 시간인 아침 10시부터 12시까지 힐링센터를 찾은 손님은 20~30대 젊은 여성 3명이었다.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 덕분인지 손님의 65%가 청년층이라 했다. 시간당 2만원대라는 다소 저렴한 가격과 친절한 서비스가 소문나면서 이젠 운영도 안정세로 접어들었다. 올해 초 월 매출 1000만원을 올린 이후, 매달 5~10%가량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것. 요즘에는 매주 금요일이면 조합원 3명이 인근 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에게 안마 교육도 진행한다. 정씨는 “시각장애인의 건강한 일자리 확보를 위해서 1호점에 만족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점포를 확대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또 다른 장벽에 부딪혔다.

“안마법에 따르면 ‘개인안마사’만이 안마원을 만들 수 있어요. 현재 법 체제에서는 협동조합은 안마원을 설립할 수 없다고 해서, 저희는 조합원들 동의하에 제가 대표로 개인 안마원 명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투명하게 운영되려면, 협동조합도 안마원을 설립할 수 있어야지요. 좋은 마음으로 사업을 펼치려고 뭉쳤는데, 법이 뜻을 막으니 답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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