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기차에서 일합니다] 멘토와 선무당, 그 균열과 균형 사이

정유미 포포포 대표
정유미 포포포 대표

“점을 AS 받는다고요?” 저녁을 먹으러 가던 택시 안에서 선배는 잠깐 점집에 들르자고 했다. 여기까지 온 김에 점을 보라는 호객행위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내 생시(生時)를 풀던 역술가는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를 하면 대성할 팔자라 호언장담했다. 난생처음 삥을 이렇게 뜯기는구나 허무한 쓰나미가 스멀스멀 몰려왔다. 드로잉은커녕 내가 쓴 글씨도 못 알아보는 천하제일 악필이 디자이너라니요. 그것도 웨딩?

창업한 이래 이런 선무당을 집중적으로 만났다. 시니어 인턴 지원 사업으로 모신 선생님은 어느 주말 내비게이션도 길을 잃는 논두렁 밭두렁 사이의 전원주택으로 나를 불렀다. 여기서 집을 짓고 산 지 십 년이 넘었는데 여전히 텃세가 심하다는 정착기가 1절. 앞으로 농업이 유망하니 여기 들어와 농사를 지으라는 충고가 2절. 지역에서 자리 잡으려면 일자리 지원금을 받아 “날 고용하세요!”라는 3절에 들고 간 샤인머스캣 보따리를 풀던 손이 머쓱해졌다. 

현장 실사를 겸해 사무실에 찾아온 한 컨설턴트는 두 시간 동안 딸 자랑만 늘어놓았다. “정 대표가 딸 같아서”라는 코멘트에 코털까지 쭈뼛 소름이 돋아 재채기를 쏟으며 서둘러 배웅했다. 처음 정부 지원사업을 통해 배정된 멘토는 초면에 “이거 진짜 할 거예요?” 물으며 다리를 삐딱하게 꼬았다. 덕분에 내가 누군가의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가 샘솟았다. 

심혈을 기울여 몇 달 만에 만든 시제품을 선보이는 자리에서 어떤 심사위원은 “애 엄마가 운동화 질끈 묶고 달릴 생각을 해야지. 또각거리면서 하이힐 신고 다니는 꼴인데?”라며 코웃음 쳤다. “누구보다 잘 만들 수 있는 역량을 보여드리려 몇 달을 밤새워 만들었다”며 애써 입꼬리를 올려 인사하고 나오는 길에 내 낡은 스니커즈가 눈에 밟혔다. 그날 밤새 이불킥을 날렸다. 오기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독기가 자라다 못해 골수 사이로 알알이 맺혔다. 

혁신적인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가진 신생 창업 기업들을 일컫는 스타트업 씬에서도 엄마와 대표는 이질적인 조합이었다. 특정 지역의 현실일 수도 평등과 자유의 상징일 것만 같은 스타트업 씬의 견고한 장벽을 드러내는 단면일 수도 있다. 악천후 속에 가랑비 젖듯 좋은 멘토도 만났다. 예전에 심사로 만났던 나를 청년창업사관학교에서 만날 줄 몰랐다며 반가워하는 담당 교수님 덕에 얼떨결에 분과장이 됐다. 

역설적으로 대표와 엄마가 가져야 할 역량에는 공통 분모가 많았다. 실시간으로 분열하는 세포처럼 증식하는 문제를 창의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해결사이자 체인지 메이커. 무에서 유로 아이와 회사를 키워가는 과정에서 매일 새로운 시험대에 오르는 우리를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는 도처에 널려있었다.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이 펼쳐지는 치열한 일상 속에 과연 아이를 돌보면서 일하는 게 가능한 것인가. 매 순간이 실험과 검증의 연속이었다. 앱을 통해 병원 예약과 실시간 대기 현황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었지만, 아이가 아플 때면 열 일 제쳐두고 달려가야 하는 주체는 여전히 엄마였다. 병실에서 링거 방울의 속도를 확인하는 와중에도 눈과 손은 노트북에, 귀는 이어팟에 저당 잡힌 마라맛 현실은 활화산보다 뜨겁게 타올랐다.  

저마다 환경은 달라도 내일을 지키고 싶은 우리의 바람은 단순명료했다. 아이가 없는 것처럼 일하는 것이 아닌 내 손으로 아이를 키우며 일하고 싶다는 소망.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나를 대신해 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제3자 보다 커리어를 지속해 나갈 수 있는 환경이었다. 이는 사회의 공감대, 구조의 변화, 정책의 유연성 등. 모든 축이 맞물려 녹슨 바퀴를 돌리는 변화가 필수로 선행되어야 하는 일이었다.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베풀 것” 임파워링맘 챌린지 두 번째 세션에서 그로우앤베터 천세희 대표님이 전한 당부였다. 덧붙인 피터 드러커의 메시지는 화룡점정. “당신의 인생 어휘 사전에서 ‘성과’나 ‘업적’이라는 단어를 없애고, 대신 ‘기여’나 ‘공헌’이라는 단어를 넣는다면 비즈니스와 커리어 양쪽에서 가장 멋진 결과를 얻을 것이다.” 

돌이켜 보면 여성 특유의 리더십에는 ‘공감’과 ‘이타심’이 있었다.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폄훼되지 않을까 고민하면서도 먼저 살피고 이끌어 준 선배들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는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지면을 내어주고 자리를 마련해 준 이들 덕분에 나는 여성, 엄마, 지역이라는 키워드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현업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이 실효성 있는 정책을 제안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서울시에선 영리더 라운드테이블을 발족했다. 응원과 지지를 자양분 삼아 서로 연대해 성장하고 새로운 판을 만들어 가는 근육이 붙었다. 

다양성을 포용하는 문화를 기반으로 구축해 온 안전지대는 생존과 직결되는 영역이었다. 훗날 은혜 갚은 까치로 자라면 어디에 박씨를 물어다 줘야 할까. 감사의 뜻을 표할 때면 이런 미션이 돌아왔다. 내가 받은 도움을 뒤에 올 누군가에게 대신 돌려줄 것. 이렇게 받은 마음을 화폐로 환산하면 과연 얼마를 환원해야 할까. 그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그동안 내가 차곡차곡 적립한 경험을 봉침 삼아 누군가의 막힌 혈을 뚫어줘야지. 내 비록 아직 성공은 못했으나 살아남은 게 기적이라 할 수 있으니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멘토가 될 거란 패기 정도는 가질 자격 있지 않은가. 

정유미 포포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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