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토)

관심 사각지대… 장애아 가족의 아픈 마음을 만져주세요

kt ‘장애 가족힐링 프로그램’
장애아 보호자·형제들 대상으로 한 ‘아트스쿨’
연극·이미지 표현 통해 마음속 응어리 풀어
“뇌성마비 아들 낳고 인생의 추락 경험… 이제 후련”

아이는 늘 늦었다. 걸음을 떼는 것도, 목을 가누는 것도 또래보다 훨씬 처졌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늦된 아이’일 거라며 애써 무시했다. 여러 번 가르치고 다그치면 언젠가는 따라오리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이가 여섯 살이 되던 해 ‘지적장애 1급’ 등록증을 만들기 위해 증명사진을 찍던 날, 김정민(가명·43)씨는 “바다만큼 많이 울었다”고 했다. “내가 잘하면 이 아이를 ‘비장애 아이’처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컸어요. 모질게 혼내고 많이 때리고, 그러다 또 ‘너나 나나 신세가 이게 뭔가’ 하는 마음이 들어서 껴안고 울고…. 이런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죠.”

장애가 있는 형제 둔 아동들을 위한 ‘아동힐링스쿨’. 아이들은 16주에 걸쳐 온몸을 이용해 ‘나를 표현하고 마주하기’, ‘힘을 합쳐 함께 일어나기’ 등의 활동들을 진행했다.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 제공
장애가 있는 형제 둔 아동들을 위한 ‘아동힐링스쿨’. 아이들은 16주에 걸쳐 온몸을 이용해 ‘나를 표현하고 마주하기’, ‘힘을 합쳐 함께 일어나기’ 등의 활동들을 진행했다.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 제공

하루 온종일 엄마 손을 필요로 하는 지적장애 큰딸. 자연히 세 살 터울 동생 이현준(가명·15)군에겐 어린 나이부터 많은 짐이 지워졌다. “둘 데리고 어디 가면 늘 누나 잘 보고 있으라고 시키고, 무슨 일 생기면 동생을 다그쳤어요. 초등학교 입학식날 딱 하루 빼고는 ‘넌 혼자 할 수 있지’ 하면서 6년 내내 혼자 학교를 보냈고요. 큰애 챙긴다고 둘째는 알아서 커 주길 바랐던 것 같아요.” 어린 맘에 켜켜이 쌓인 불안과 스트레스는 결국 뚜렛증후군(중증 틱장애)으로 이어졌다. 김씨는 “그간 많이 지쳐서 여유가 없었는데, 돌이켜보면 어린 현준이가 가장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고 했다. “뚜렛증후군으로 수시로 눈을 깜빡이고, 스트레스를 받거나 흥분하면 사시나무처럼 머리를 흔들거나 소리 질러요. 마음에 스트레스와 강박감이 컸던가 봐요. 너무 늦은 건 아닐지 걱정되지만, 이제는 현준이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서 애를 많이 써야겠죠.”

장애 아이를 둔 가족 중에는 마음이 아픈 이들이 많다. 보건복지부(2011)에서 발달장애인 보호자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절반이 넘는 52%에 달하는 보호자가 우울증이 의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 정도도 심각해, 전체 국민 우울 지수인 6.27%의 3배가 훌쩍 넘는 수준이었다. 장애가 있는 형제를 둔 다른 자녀도 마음이 아프기는 마찬가지. 장애가 있는 형제를 중심으로 가정환경이 돌아가다 보니, 충분한 관심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부터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고, 장애 형제를 챙겨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마음의 큰 짐이 된다.

‘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어루만질 수 있을까.’ kt가 장애 가족 간 정서 지원을 위한 ‘가족힐링프로그램’을 지원하게 된 이유다. 이선주 kt CSV 센터장은 “‘소통’의 사각지대를 고민하다 보니, 장애가 있는 아이를 둔 가족들 간에 심리적으로 여러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장애 가족으로 인해 지친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와 협력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고 했다. 장애 아이를 둔 보호자와 비장애 형제들을 위해 각각의 ‘아트스쿨’ 프로그램이 꾸려졌다. 연극을 통해 나를 알아보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집에 대한 이미지 표현해보기, 장애 형제·장애 자녀에 대한 생각 나눠보기…. 머리에서 손·발끝에 이르기까지, 온몸을 이용해 그간의 뭉친 마음들을 풀어내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6월에 시작해 매주 토요일에 한 번, 16주에 걸쳐 진행된 프로그램, 3개월여에 이르는 시간은 이들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30대 때 뇌성마비 아이를 낳고 “인생이 추락하는 것 같았다”는 정민주(가명·43)씨는 “속이 후련하다”고 했다. 정씨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마음속에 응어리진 부분들을 많이 발견했다”며 “한번은 첫째가 성당에서 ‘하느님이 계시면 왜 막냇동생 같은 애가 태어나게 했느냐’고 했는데, 태어나 처음으로 동생 없이 엄마와 단둘이서 시간을 보내니 너무 좋아하더라”고 했다. 자폐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복합장애 아들 이민후(가명·7)를 둔 송희주(가명·36)씨는 “이전까진 큰딸아이가 마음이 불편한 게 있어도 엄마 눈치 보면서 속으로 삭이고 말문을 꾹 닫았는데, 요새는 ‘나도 힘들 때가 있다’는 표현도 하는 걸 보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마음이 조금 더 건강해진 게 아닌가 싶다”고도 했다.

‘엄마, 나는 슬픔이 없는 집에 살고 싶어요.’

‘엄마, 나는 엄마가 건강하고 행복한 집에 살고 싶어요.’

지난 16일, 광화문 kt올레스퀘어에선 그간의 활동을 마무리하는 ‘kt가족힐링페스티벌’이 열렸다. 아이들과 부모들이 준비한 연극 말미, 무대에 선 아이들이 한명씩 돌아가며 외치는 ‘내가 살고 싶은 집’이 모두의 마음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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