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토)

라디오 너머 들려오는 이웃 이야기… 맛깔나는 방송으로 들어봐요

공익 분야 ‘대안 미디어’를 만드는 사람들
사회복지사 고충 담아낸 ‘사소환 연구소’
뉴스·토크쇼 등 제작하는 ‘와보숑 TV’
창신동 봉제 골목 주민 위한 라디오 ‘덤’

1인 미디어의 역습이다. 인터넷 1인 미디어 플랫폼 아프리카 TV의 하루 평균 방문자 수는 330만명, 최고 동시 시청자 수는 70만명이 넘는다. 2011년 ‘나는 꼼수다’로 시작된 팟캐스트 열풍은 국내 7000개 오디오 녹음 방송 시대로 이어지고 있다. 공익 분야에서도 1인 미디어를 창구로 대중과 소통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안 미디어’를 만드는 이들을 만나봤다. 편집자 주


출처 픽사베이(geralt)
출처 픽사베이(geralt)

◇사회복지사가 만드는 사회복지사를 위한 미디어, ‘사소환 연구소’

방송을 만드는 사람도 사회복지사, 게스트도 사회복지사다. 팟캐스트 방송의 주제는 ‘사회복지사의 소진 환경’을 연구하는 것. 방송 이름도 주제 앞 글자를 따서 ‘사소환 연구소’다. 지난해 초,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 멤버이자 동료였던 사회복지사 홍봉기(35·송파인성장애인복지관), 김우람(33·성산종합사회복지관), 백경진(31·kt그룹희망나눔재단), 이무건(31·광진노인복지관)씨가 모였다. ‘도대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회복지 공무원의 연이은 자살과 소진이 화두였던 당시, 술자리에서 푸념처럼 주고받은 말들이 아이디어가 됐다. 녹음실은 홍봉기씨의 자취방, 녹음기는 스마트폰 하나면 됐다.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첫 회 1000명 넘게 방송을 들었고, 누적방문자 수는 2만명가량. 중부재단의 ‘이:룸’ 사업(사회복지사 스터디 지원)에 선정되면서, 대구·부산·제주 등 전국 단위 사회복지사들을 찾아가는 방송 제작도 가능했다. 사회복지계의 갑을관계, 사회복지사의 경제난, 직장 내 갈등 등 솔직한 고민을 풀어냈고, 올 초 한국사회복지사협회 회장선거 기간에는 특별 방송으로 후보자 지지자를 초청하기도 했다. 월간 방송이지만, 콘텐츠가 쌓이다 보니 자연스레 팬층도 생겼다. 예비사회복지사인 대학생 청취자가 응원 메일을 보내기도 한다. 백경진씨는 “방송을 기획하고, 녹음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동기부여가 된다”고 했다. ‘사소환 연구소’의 긍정적인 영향 덕분일까. 지난달부터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 시민위원회에서도 팟캐스트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사소환 연구소’ 전국투어 부산편에서는 부산의 사회복지사를 만나 팟캐스트를 녹음했다.
‘사소환 연구소’ 전국투어 부산편에서는 부산의 사회복지사를 만나 팟캐스트를 녹음했다.

▶’사소환 연구소(http://www.facebook.com/radio.for.sw )’는 아이튠스나 아이블러그(iblug) 애플리케이션에서 청취할 수 있다.

◇성북구 주민들이 주인공 되는 마을 방송, ‘와보숑TV’

“지금까지 와보숑 뉴스 주민 앵커 박채리였습니다.”

서울시 성북구의 마을 방송 ‘와보숑TV’ 29회 앵커는 장위동 주민 박채리(20)씨다. 다솔지역아동센터 청년봉사단 활동을 촬영하던 와보숑TV 취재진이 자원봉사를 하던 박씨를 주민 앵커로 섭외한 것. 박씨는 “내가 사는 지역에 이렇게 체계화된 마을 방송이 있는지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지금까지 박씨처럼 앵커로 참여한 성북구 주민만 20명이 넘는다. 와보숑TV 모토는 ‘모든 주민이 앵커다’이다.

지난해 4월, 유튜브에 첫 방송을 시작한 ‘와보숑TV’는 마을 뉴스뿐만 아니라 ‘와보숑이 만난 사람’, ‘언니들의 호박씨’ 등 토크쇼와 예능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인터넷에 업로드된 영상만 80여개. 그중 1년에 걸쳐 만든 26분짜리 다큐 ‘접속, 북정마을’은 KBS 열린채널에 방영되기도 했다. “TV를 보면, 사실 우리랑 관련없는 것이 참 많아요. 그런데 내가 살던 동네를 화면으로 보니 더 예쁘다는 거예요. 이웃 이야기니 공감도 된다 그러시더라고요. 여기에 마을 방송의 의미가 있지 않나 싶어요.”(와보숑TV 이소영 대표)

제작진도 즐겁다. 서울시가 2012년부터 시작한 ‘우리 마을미디어 문화교실’ 수료생들을 주축으로 제작진(감독·기자·편집 등) 15명이 활동 중인데, 대부분 직장일과 병행하고 있다. 실버세대가 만드는 인터넷 뉴스인 ‘실버넷 뉴스’의 장남순(72) 기자도 와보숑TV의 기자 겸 촬영보조 역할을 한다. 장 기자는 “마을 소식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고, 지역 신문 한 꼭지를 읽어도 새롭고 재밌다”고 했다.

성북구 ‘와보숑TV’ 마을 뉴스 29회 녹화 현장.
성북구 ‘와보숑TV’ 마을 뉴스 29회 녹화 현장.

▶’와보숑TV’는 유튜브(http://www.youtube.com/user/wabosyongTV)나 성북마을 홈페이지(http://www.sbnet.or.kr)에서 시청할 수 있다.

◇창신동 봉제 골목의 참신한 에너지, 창신동라디오 ‘덤’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2번 출구.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80년대 풍경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온다. 차 한 대가 지나가기에 버거운 오르막길을 걸으면, ‘드르륵 드르륵’ 미싱 돌아가는 소리가 먼저 반긴다. 봉제 공장만 2800개 넘는 이곳은 ‘창신동 봉제 골목’. 신기한 것은 소규모 공장마다 미싱 소리 너머로 라디오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는 점이다.

“이 동네 사람들은 다 귀명창이야. 라디오 편성표까지 다 꿰뚫는다니깐.”

30년 경력의 봉제사 김종임(53)씨에게도 ‘라디오를 듣는다는 것’은 인생의 큰 즐거움이었다. 그런 김씨에게 또 다른 낙(樂)이 생겼다. 지난해부터 창신동라디오 ‘덤’의 DJ를 맡으면서다. ‘동대문 그 여자’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김씨는 ‘봉제마을 살 길 찾기 간담회’ ‘도시재생’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창신동 주민을 위한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창신동라디오 ‘덤’을 만드는 사람은 6명. 창신동 토박이이자 작곡가 지망생인 스무 살 청년부터,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으로 창신동과 인연이 시작된 조은형(42)씨까지 다양하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콩트로 꾸민 오뚝이의 ‘세상 풍경 속으로’, 초등학생 남매가 들려주는 동화 등 참신한 시도 또한 돋보인다. 때로는 마을 주민이 노래하거나, 직접 악기 연주를 하는 마을 예술제 방송도 연다. 매주 화요일마다 업로드되는 방송이 벌써 100회를 넘었다. 조은형씨는 “일하랴 방송하랴 피곤함은 두배지만, 주변에서 ‘방송 재밌다’는 반응을 듣고 나면 힘이 난다”면서 “무엇보다 지역 주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송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창신동라디오 방송국 ‘덤’ 스튜디오 전경.
창신동라디오 방송국 ‘덤’ 스튜디오 전경.

▶창신동라디오 ‘덤’은 라디오팟·팟빵 애플리케이션에서 ‘창신동’을 검색하거나, 네이버 카페(http://cafe.naver.com/radiodum)에서 청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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