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일)

지원도 인식도 미약한 미얀마… 두 번 우는 장애인

2014 장애청년드림팀 기획탐방 ‘장애인의 빈곤과 국제협력’
佛心 깊지 않아 장애 생긴다고 여겨 취업 힘들고 버스 승차 거부 당하기도
국립재활원, 영국 등 해외 후원에 의존
장애인 교육·재활 돕는 민간 단체도 운영비 부족으로 지원에 어려움 겪어

청년들이 멈칫했다. 당황한 듯 보였다. 재차 주소를 확인했다. 미얀마 양곤시(市) 보족(Bogyoke) 지역의 ‘쉐민타(Shwe Minn Tha)’ 재단이 틀림없었다. 절벽처럼 가파른 계단에, 어른 한명이면 꽉 찰 정도로 좁은 입구가 일행을 맞았다. “나름 장애인 단체인데, 접근성이 참….” 정상우(29·지체1급)씨가 허탈한 듯 내뱉었다. “장애인들의 편의와 접근성을 높이는 사업을 중점적으로 한다”고 소개받았던 기관이다. 정씨의 휠체어에 장정 4명이 달라붙었다. 휠체어가 들릴 때마다 ‘전신마비’인 정씨의 허리가 버들잎처럼 휘청거렸다. 건물 내부에선 회의실 문이 문제였다. 휠체어 반 토막만 한 넓이였다. 정씨는 결국 업혀 들어갔다. 회의실에 앉는 데까지 걸린 시간만 30여분. 윈미야뚱(48) 쉐민타 재단 회장이 “입구가 불편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마치 미얀마의 모든 장애인에게 사과하는 것처럼 들렸다.

지난달 23일, 대한민국 청년 7명이 아시아 서남부에 위치한 미얀마 땅을 밟았다. 이 나라 장애인의 삶을 직접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와 신한금융그룹이 지원하는 ‘장애청년드림팀’의 해외 연수 활동으로, 올해 10년째를 맞은 장수 프로그램이다. 기자가 동행한 ‘ABCD(Any Body Can Dream)’ 팀은 4명의 장애인 청년과 3명의 비장애인 청년으로 구성, ‘장애인의 빈곤과 국제협력’을 연구 주제로 삼았다. 쉐민타 재단을 시작으로, 국립재활원, 미얀마지체장애인협회, 국립장애케어센터, ‘AAR 재팬(Association for Aid and Relief Japan)’, 국립장애인특수학교 등을 방문했다. 모두 학생들이 직접 접촉해 방문 허가를 받아냈다. 인솔자로 참여한 이일영 한국장애인재활협회 부회장은 “과거의 연수가 (선진국이) 잘하는 걸 배우려는 의도가 컸다면, 이번 활동은 개도국의 현황을 파악하고, 산적한 문제들을 함께 고민해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미얀마 양곤시 외곽의 국립장애케어센터 앞에 선 장애청년드림팀. 지난 8월 23일, 8박 9일 일정으로 미얀마를 방문한 이들은 8곳의 관련 단체를 돌며, 미얀마 장애인 현황과 문제를 파악했다.

미얀마 양곤시 외곽의 국립장애케어센터 앞에 선 장애청년드림팀. 지난 8월 23일, 8박 9일 일정으로 미얀마를 방문한 이들은 8곳의 관련 단체를 돌며, 미얀마 장애인 현황과 문제를 파악했다. /변재원(ABCD팀)씨 제공
미얀마 양곤시 외곽의 국립장애케어센터 앞에 선 장애청년드림팀. 지난 8월 23일, 8박 9일 일정으로 미얀마를 방문한 이들은 8곳의 관련 단체를 돌며, 미얀마 장애인 현황과 문제를 파악했다. /변재원(ABCD팀)씨 제공

30년 넘게 유지되던 군부정권이 막을 내리고, 2년 전부터 나라의 기틀을 다시 세우고 있는 미얀마는 장애인에 대한 법·제도적 지원책이 거의 없고 사회적 인식도 낮다. 누에누에떼인(57) 미얀마 국립재활원장은 “미얀마 사람 10명 중 9명이 불교도인데, 이들은 불심(佛心)이 깊지 않아 장애가 생기는 것으로 여겨 (장애를) 숨기고 회피했던 습성이 있었다”고 했다. 미얀마 정부가 밝힌 장애인 통계는 인구(5100만명, 2014년) 대비 2.3%다. 유윤석(23·경희대 화학공학과)씨는 “지체·정신·시각·청각 등 가장 기본적인 4가지로 분류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처럼 유형을 확대하면 장애인 비율은 크게 증가할 것”이라며 “민간단체들은 5%에서 최대 15%까지 추산하고 있더라”고 했다(국내 장애인복지법에선 장애 유형을 15가지로 나누는데, 이 기준에 의거한 국내 장애인 비율은 5.15%다).

정부 발표대로만 따져도 120만명의 장애인이 존재하는 셈이지만, 이들을 위한 보호막은 빈약하다. 국립재활원은 병상 수는 50개에 불과한데, 이마저도 영국·일본·태국·국제적십자사 후원에 의존한다. 4년 전 버거씨병(Buerger’s disease)으로 다리를 절단한 후, 의족(義足)을 쓰고 있는 우이니위(39)씨는 “입원 공간이 없어 차로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가며 치료와 의족 수리를 한다”고 했다. 민간단체의 상황도 다를 게 없다. 미얀마지체장애인협회(MPHA)가 대표적이다. 장애인들에게 휠체어나 의족 같은 도구를 지원하고, 재활과 교육을 돕는 이 단체는 전국 22개 지부에 회원 7000명과 함께하지만 살림은 궁색하다. 아예코코 부회장은 “월회비로 1500짯(Kyat·한화 약 1800원) 정도 받고, 달력이나 책자 같은 걸 판매하며 운영비를 충당한다”며 “지역에서 기부를 받긴 하지만 비중은 크지 않다”고 했다.

정상우씨가 미얀마 국립재활원 물리치료실의 재활 도구를 직접 사용해보고 있다. /변재원(ABCD팀)씨 제공
정상우씨가 미얀마 국립재활원 물리치료실의 재활 도구를 직접 사용해보고 있다. /변재원(ABCD팀)씨 제공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장애인 권리에 대한 고민은 사치에 가깝다. 미얀마지체장애인협회에서 만난 미얏모(50)씨는 “버스를 태워주지 않은 적이 부지기수지만, 어디다 어떻게 항의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라영(27·지체1급·경북대 교육대학원)씨는 “미얀마에서 가장 큰 대학인 양곤 대학조차 휠체어가 다닐 수 없다고 한다”며 “우리나라도 70년대까지는 장애인이 밖에 나올 수 없었다고 하는데, 지금 이곳이 딱 그런 상황”이라고 했다. 장애인의 직업 교육을 수행하는 ‘AAR재팬’의 요사쿠 오시로(29) 코디네이터는 “미얀마의 장애인 중 직업을 가진 사람은 15% 안팎에 그친다”고 했다.

방문 기관마다 ‘인천전략’을 주지시켰던 이유도 그래서다. ‘인천전략’은 2012년 유엔 아시아·태평양경제이사회(UNESCAP) 62개 회원국이 선포한 것으로,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아·태 장애인의 빈곤 감소와 사회 참여 및 접근성 향상, 국제협력 강화 등 장애인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10개의 목표를 이루겠다는 국제적인 약속이다. 미얀마 정부도 이에 서명했다. 미얀마의 까웅텟조 변호사(법무법인 ‘율촌’)는 “미얀마도 UN장애인권리협약 가입국이 됐지만, 국가 내부적으로 비준 절차를 거치지 않아 아직까진 효력을 기대하기 힘들다”며 “현실적으로 유일한 구제 수단은 국제기구에 차별 사례를 고발해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 정도인데, 아직까진 그런 사례가 없다”고 했다.

미얀마 탐방은 끝났지만, 청년들의 활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신경마비로 열 배출이 안 돼 쉽사리 지치는 정상우씨. 빡빡한 일정 속에 “몸이 만신창이가 됐다”는 그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뛰었을까.

“27년을 멀쩡하게 살다가, 2년 전 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됐어요. 이후 제 삶의 목적은 장애인들이 집 밖으로 나오는 세상을 만드는 것뿐입니다. 미얀마 거리에선 장애인을 한 명도 못 봤어요. 그들을 끌어내고 싶습니다. ‘나와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꼭 전해주고 싶어요.”

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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