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금)

아이들에겐 ‘나’를 들여다보는 학교가 필요합니다

사회적기업 ‘사람에게 배우는 학교’
‘꿈 키우는 공간’ 만들자는 취지로 시작 15명 첫 제자, 전단 등 발로 뛰어 모집해
자기 일에 철학 있는 선배의 강연 듣고 토론하고 직접 직업 현장 찾아가기도

겁 없는 두 청춘 남녀가 거대 공교육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4년 전, 1인 시위로 임용고시 정책을 바꿔낸 ‘노량진녀’ 차영란(31)씨와 ’80만원으로 세계여행’의 저자 정상근(29)씨 이야기다. 이들이 만든 사회적기업 이름은 ‘사람에게 배우는 학교’다.

(왼족부터)정상근 '사람에게 배우는 학교' 대표, 차영란 '사람에게 배우는 학교' 대표, 염수경 '사람에게 배우는 학교' 학생 /허미영 작가
(왼족부터)정상근 ‘사람에게 배우는 학교’ 대표, 차영란 ‘사람에게 배우는 학교’ 대표, 염수경 ‘사람에게 배우는 학교’ 학생 /허미영 작가

차영란씨는 원래 교사가 꿈이었다. 1인 시위까지 할 정도로 간절했던 교단이었지만, 현실과 이상 간의 괴리는 컸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교사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수업에 들어가니, 아이들은 너무 무기력하고 학교는 학원이랑 다를 바가 없더라고요. 하고 싶은 걸 적어보라고 하면, 백지로 내는 애들이 대부분이에요. 제가 학교 다닐 때랑 바뀐 게 하나도 없었죠.”(차영란)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낸 차씨와 달리, 정상근씨를 키운 건 팔할이 길 위였다.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님 응원에 힘입어 처음으로 전국 일주를 했거든요. ‘아들이 가출한 게 아니라 여행 중이니 만나면 가르침을 주시라’는 부모님 편지 한 통이랑 4만원이 전부였어요. 그게 제 인생을 바꿨죠. 그 뒤론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어요. 지적장애인 분들이 계시는 양계장에서도 생활해보고, 대학 들어오고 군대 제대하고 나선 있는 돈 전부 털어 세계여행 가고요. 이곳저곳 걸으면서, 여러 사람 만나면서 많이 배웠어요. 그러다 보니, ‘우리 부모님이 참 현명하셨구나’ 싶고 학생들이 안타깝더라고요. 20년 가까이 학교 다니는 동안, 오로지 ‘대학’만 보잖아요. 그게 늘 참 답답했어요.”(정상근)

두 사람은 ‘아이들이 꿈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뜻을 모았다. 우선 공교육 울타리 바깥에서 앞선 인생 선배들과의 접점을 만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했다. 자신의 일에 미쳐 있는 이들이라면 아이들에게 열정적인 에너지를 전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기만의 길에 미쳐 있고 철학이 있는 사람들이어야 해서 섭외에 공을 많이 들였어요. 만나뵐 수 있겠느냐고 저희가 요청해놓곤, 면접 보는 수준으로 2~3시간씩 질문 던지고 이야기 나누고 했어요(웃음). 그렇게 하다 보니, 자기 일을 좋아하고 열정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은 표가 나더라고요.”(차영란)

딜라이트 김정현 대표, 미스크 김정태 대표, SBS 이대욱 기자, MBN 윤범기 기자, 마이크임팩트 한동헌 대표, 세계빈곤퇴치회 강명순 이사장, 최희정 통역사…. 자기 분야에 미쳐 있고, 뜻에 공감한 사람들이 하나 둘 섭외됐다. 맨발로 뛰어다니며 학생들도 섭외했다. 소셜미디어에 올려 홍보하기도 하고, 대안교육 사이트 카페에도 올렸다. 직접 전단을 만들어 아파트에 돌리다 ‘이상한 사람’ 취급받기도 여러 번이었다. 알음알음 전해 들은 15명의 ‘첫 제자’들이 모였다. 2011년 10월, 열 살은 훌쩍 차이 나는 인생 선후배들 간의 찐한 만남이 시작됐다.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직업의 이면’, ‘보람을 느꼈던 순간들’, ‘그래도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들에 대한 질문과 답변들이 쏟아져나왔다. 강연을 들은 1~2주 후에는 아이들이 직접 ‘미래의 직업 현장’을 찾아가게 했다.

“한번은 미스크 김정태 대표님이 오셔서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라는 주제로 본인 스토리를 이야기하셨어요. 스펙보다도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더 중요한 거라고요.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공감을 많이 한 모양이에요. 그런데 그 다음 주에 MBN 윤범기 기자님이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스펙이 있어야 스토리를 들어주는 사회다’라고 딱 잘라 말씀하신 거예요. 똑같은 스토리도 서울대를 나오면 더 빛이 나는 법이라면서요.(웃음) 많은 학생들이 그런 말씀 해주신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대학 진학교육을 하진 않지만, 진학을 좌시하면 안 된다고도 생각하거든요. 균형 있는 시각을 들으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거죠.” (정상근)

배움이 있는 곳은 어디든 학교고, 사람 간의 만남엔 가장 큰 배움이 있다. 3개월 동안 주말마다 진행한 ‘사람에게 배우는 학교’의 반응은 뜨거웠다. 친한 친구가 교통사고로 죽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나서 이대로 학교 다니다 죽는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중2 때 학교를 관두고 나왔다는 염수경(16)양도 첫 제자 중 한명이다. 염양은 “별 기대 없이 들었는데, 인생에 다시 없을 시간이었다”고 했다.

“하고 싶은 것들 해보겠다고 학교를 박차고 나오긴 했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매주 멘토들 이야기 듣다 보니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요. 원래 기자가 꿈이었는데 꿈도 바뀌었어요. 앞으로 사회적기업 컨설팅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2012년, 두 대표는 전업 상근직으로 뛰어들었다. 올해로 3년차, 세스넷 사회적기업 육성사업 3기로 선정되면서 사회적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사람에게 배우는 학교’는 현재 5개 학교에서 2년째 진로교육을 도맡아 진행해오고 있고, 지난해부터는 학생들의 목소리로 자신의 스토리를 풀어내는 ‘대한민국 청소년 연설대회’도 시작했다. 올해로 2회를 맞은 연설대회, 지난달 10일 국회에서 열린 본선 현장에서는 ‘학교 폭력을 신고했더니 일 키우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만 하는 학교의 폭력이야말로 학교폭력이었다’는 날카로운 고발에서부터, ‘고등학생들을 점수 벌레가 아닌, 다양한 경험과 생각하는 사람으로 자라게 해달라’는 항변에 이르기까지, 연설대에 오른 11명 학생의 이야기가 쏟아지기도 했다.

“공교육이 무너진다지만, 결국 학생의 90%는 학교에 있어요. 학교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떻게 울림들을 만들어낼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청소년들이 20년 가까이 공교육을 받아요. 그런데 자기 스스로 생각하고, 그걸 전달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진로교육이든 연설이든 사실 ‘나’를 들여다보는 게 제일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접점을 계속 만들어주고 싶어요.”(차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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