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토)

“우울하고 자신감 없던 아이들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굿네이버스 희망나눔학교
13년간 6만8811명 아동 참여 사발면에 감정 표현, 음악으로 친구 묘사
음악·그림 등 활용한 방학 프로그램 부정적이던 아이들 자아존중감 향상

“저 혼자만 떨어져 있어요.”

손미혜(가명·11)양은 다섯 형제의 맏딸이다. 손양 아래로 연년생 동생과 다섯 살, 갓난아이까지 줄줄이 4명의 동생을 두고 있다.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들을 모두 키우기 힘들었던 부모는 손양을 일찌감치 인근에 사는 할머니·할아버지 댁에 맡겼다. 그런 손양이 지난해 겨울방학 굿네이버스의 방학 교실 프로그램인 ‘희망나눔학교’에서 처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지난해부터 도입한 표현예술 심리치료 덕분에 발견한 ‘상처’였다.

프로그램 내내 집중력이 낮고 눈에 띄게 무기력한 모습을 본 치료사는 손양을 굿네이버스 좋은마음센터로 연결했다. 손양은 외로움으로 인한 무기력증과 우울감이 높게 나타났다. 자아존중감이 낮은 손양은 학교에서의 친구 관계도 나쁜 것으로 드러났다. 상담 치료를 통해 가정환경의 변화가 필요함을 알게 된 좋은마음센터는 가족 상담을 진행했다. 손양의 정서적인 불안감과 상처를 모르고 있던 부모는 상담 직후 딸을 집으로 데려오고, 가족 상담을 지속했다.

이후 손양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6개월 동안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스스로 올 만큼 상담을 잘 마친 손양은 “이제 이야기할 수 있게 됐어요”라며 당당히 자기표현을 한다. 덩달아 학교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만해졌다.

미상_그래픽_아동_희망나눔학교그래프_2014

◇표현예술 심리치료를 도입한 방학 프로그램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13 아동·청소년 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경제 수준에 따른 아동·청소년의 생활 및 정서 문제는 심각하다. 160여 개의 조사 항목 가운데 약 80% 이상, 가정의 경제 수준이 낮아질수록 청소년의 삶의 질을 측정하는 지표가 나빠졌기 때문. 특히 스트레스 인지, 우울감 및 자살 생각 등 정신적·심리적 영역에서 저소득층 청소년일수록 문제가 컸다. 고기남 굿네이버스 성동지부 간사는 “맞벌이, 한부모, 조손가정 등 방학 동안 돌봄과 심리 상담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에 굿네이버스는 지난해 겨울부터 희망나눔학교 프로그램에 표현예술 심리치료를 도입했다(희망나눔학교는 굿네이버스가 2002년부터 진행해온 초등학교 방학교실 프로그램으로, 급식 지원은 물론 전문가와 함께 만든 매뉴얼을 통해 건강·학습·정서 교육을 진행한다). 표현예술 심리치료 프로그램 제작에만 두 달이 걸렸다. 서울여대 표현예술치료학과 교수진, 굿네이버스 좋은마음센터 예술치료사들이 매뉴얼을 제작하고, 전국의 희망나눔학교 교사 및 자원봉사자들을 모아 워크숍을 실시했다.

왕뚜껑 사발면을 오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나의 감정 쉐프’, 음악에 맞춰 친구들의 동작을 묘사하는 ‘모여라 친구들아’ 등 음악·그림·동작 등 예술을 활용한 8회기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한 만큼 효과도 높게 나타났다. 지난 1월, 희망나눔학교에서 집단 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한 전국 초등학생 4297명을 대상으로 사전 사후 자아존중감(CSEI) 검사를 실시한 결과,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5점 만점)는 답변이 3.06점에서 3.81점으로, ‘누구든지 나를 좋아한다'(5점 만점)는 답변은 2.83점에서 3.55점으로 참여 아동들의 자아존중감이 눈에 띄게 높아진 것.

이번 여름방학 동안 8회기 프로그램을 진행한 구자윤 무용동작치료사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부정적인 대답만 하던 아이들이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면서 변화된 아이들의 모습을 전했다. 최주희 굿네이버스 홍보팀 과장은 “정서 치료나 상담이 필요한 아이들을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서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 중에서 상담·치료가 필요한 이들을 굿네이버스 좋은마음센터로 연결해 전문적인 치료를 지원하는 케이스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5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방학교실에서 진행된 굿네이버스 희망나눔학교 현장. 무용치료를 도입한 재미난 프로그램에 아이들의 열기가 뜨겁다. /굿네이버스 제
지난 5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방학교실에서 진행된 굿네이버스 희망나눔학교 현장. 무용치료를 도입한 재미난 프로그램에 아이들의 열기가 뜨겁다. /굿네이버스 제공

◇참여 아동 자아존중감 눈에 띄게 향상

“서로 호흡을 맞추는 게 중요해요. 친구들과 눈을 맞추고 똑같은 힘으로 들어 올리세요. 희망의 공이 열 번 하늘로 올라가면 여러분의 소원이 이뤄질 거예요.”

구자윤 무용동작치료사(굿네이버스 좋은마음센터 성동지부)가 입을 열자마자,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원 모양으로 빙 둘러선 아이들의 손에는 알록달록한 색상의 커다란 천이 들려 있었다. 9명이 맞잡아 팽팽해진 천 위로 파란색 탱탱볼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하나, 둘, 셋!”

아이들의 구호 소리에 맞춰 탱탱볼이 하늘 위로 튕겨 올랐다. 공의 표면 가득 붙어 있는 하얀색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다. ‘훌륭한 화가가 되고 싶어요’, ‘가족들과 매일매일 행복하고 싶어요’, ‘시험을 잘 보게 해주세요’, ‘부모님과 함께 살게 해주세요’ 등 아이들이 직접 써넣은 소원 카드였다. 숨죽이듯 타이밍을 재던 아이들이 빙그르르 떨어지는 공을 바라보며 일제히 천을 들어 올렸다. “마지막 열 번째!”, “와아~성공!”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만세를 외치던 이민성(가명·10)군은 “희망의 공에 적은 내 소원이 이뤄질 것 같다”며 웃음을 보인다.

지난 5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방학교실에서 진행된 굿네이버스 희망나눔학교 현장엔 38명의 아이가 뛰노는 소리로 시끌시끌했다. 희망나눔학교를 마치고 교문을 나선 은지선(가명·10)양에게 소감을 물었다. 지선양은 이가 보일 만큼 해맑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모르던 친구들과도 친해지고, 춤도 추고, 마음껏 이야기도 했어요.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아 아쉬워요. 제겐 잊지 못할 방학이었어요.”

지난 13년간 전국 3053개 학교에서 6만8811명의 아동을 지원한 굿네이버스 희망나눔학교는 이번 여름방학 동안 BMW코리아 미래재단의 후원으로 전국 221개 초등학교에서 총 4427명의 아동이 참여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