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내가 배고파보니 확신 들었죠… 도와야겠다”

[월드비전 기아체험 프로그램]

활동 통해 아프리카 아이들의 고통 이해
한 학기 지나니 모금액 천원→34만원… 사춘기 학생들도 참여 후 눈빛부터 변해

‘어떻게 해야 인식이 바뀔까….’

김준석(20·서울시립대 경영학과1년)씨가 삼천포고(경남 사천) 재학 시절 달고 살던 고민이다. 사회복지사 부모 밑에서 봉사하는 삶을 배우며 자란 김씨. 학창 시절도 남달랐다. 교내 사회공헌 발명 동아리 ‘SOS'(Science on Society) 회장으로 활동했고, ‘1312 캠페인'(하루 세 번 할 소비를 두 번으로 줄이자는 운동)에도 앞장섰다. 하지만 열정만으론 한계가 있었다. “2012년 1312캠페인 당시 교내 곳곳에 모금함을 설치했는데, 한 학기 내내 1000원 모이더라고요. 충격이었어요. ‘인식 개선이 먼저다’ 싶었죠.”

기아체험은 단순히 굶는 활동을 넘어 지구촌 빈곤 문제, 아동 노동 실태, 식수 문제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세계시민 교육이다. /월드비전 제공
기아체험은 단순히 굶는 활동을 넘어 지구촌 빈곤 문제, 아동 노동 실태, 식수 문제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세계시민 교육이다. /월드비전 제공

월드비전의 기아체험 프로그램을 접한 건 그 무렵. 인근 학교의 행사 소식을 듣고 ‘직접 해보리라’ 결심했다. 뜻 맞는 친구 10명 정도가 기획단을 꾸리고, 학교 페이스북을 통해 홍보했다. 그 결과 140명이 자원했다. 토요일 8시간의 체험. “굶기만 하는 것보다, 굶으면서 의미 있는 놀이와 활동을 많이 접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짧은 체험이지만 변화는 컸다. “기아체험을 진행한 이후 한 학기에 1000원 걷히던 모금함에 34만원이 모였어요. ‘값진 경험을 하게 해줘 고맙다’는 말도 많이 들었죠.”

◇나눔에 대한 인식 바꾸는 경험 ‘기아체험’

미상_사진_해외원조_기아체험참여현황과역사_2014

‘기아체험’은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의 대표적인 캠페인이다. 1975년 월드비전 호주에서 처음 실시됐으며, 한국에선 1993년 ‘훼민24’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대규모 집회 형식 외에도 전국 각지의 학교·가정·직장 내에서 1년 내내 다양한 프로그램을 스스로 실천해 볼 수 있다. 지난 22년간 2000여 학교를 포함, 1850만명이 저개발국에나 있을 법한 ‘기아(飢餓)’를 직접 겪었다. 전수림 월드비전 대외협력팀 간사는 “기아체험에 오자마자 친구들을 못살게 굴던 아이가 돌아갈 땐 ‘나도 학교에서 친구들과 기아체험을 해보겠다’고 말하기도 한다”며 “이런 변화가 보여주는 감동이 프로그램을 오랜 세월 지속시켜주는 힘”이라고 말했다.

아이들만 바뀌는 건 아니다. 지난 6월 14일, 수원시 정자동의 대평중학교에서 180여 학생과 학부모와 함께 진행한 기아체험은 참가자 모두에게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줬다. 이 행사를 주최한 건 학교 학부모회. 2010년 개별적이고 형식적이던 교내 봉사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던 시도가 벌써 5년째 이어지고 있다. 학부모회장 최경임(42)씨는 “우리 아이가 중학교 3학년인데 이때가 보통 사춘기”라며 “행사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자신을 이해하기도 힘든 시기의 아이들이 타국 아이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다”고 했다. 초기엔 걱정대로였다. “중2병이란 말이 왜 있겠어요. 슬리퍼를 탁탁거리며 들어와선 쉴 새 없이 떠들고 짜증을 내기도 했죠.” 하지만 흙탕물을 마시고, 눈에 붙은 파리를 뗄 힘도 없는 아이들의 영상을 보며 점점 숙연해졌다. 최씨는 “여러 교육과 체험으로 또래 아이들의 빈곤을 마주한 학생들은 눈빛부터 변한다”고 했다.

아이들 변화에 엄마들도 반응한다. 체험현장에선 자신의 자녀라도 ‘특별대우’가 없다. 부모와 자녀가 같은 조를 할 수조차 없다. “세월호 사건 때 전국의 엄마들이 함께 울었잖아요. 내 아이만 바라보면 세상이 내 아이만 하지만, 전 세계 아이들을 함께 생각하면 세상은 그만큼 크고 넓어지는 것 같아요.” 최경임씨가 울먹거리며 한 말. 이 학교의 기아체험이 매년 신청 당일 바로 마감돼 버리는 이유다.

◇허기 속에서 싹튼 꿈, 온기 머금고 영근다

기아체험 단골 참가자로 알려진 박정웅(20·경북과학대 간호학과1)씨. 2011년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열린 ‘기아체험24시’를 시작으로, 2012년에는 교내 기아체험을 기획했고, 2013년 무인도 기아체험에도 참여하는 등 총 4번 행사를 경험했다. 오는 28일부터 경기도 양평의 한 폐교에서 열리는 기아체험 행사엔 봉사자로 나선다. “처음엔 진짜 가기 싫었다”던 박씨. 그를 지속적으로 이끈 힘은 뭘까. 박씨는 “기아체험에 다녀오면 ‘기승전결’을 다 겪는 느낌”이라고 했다. 고통의 절정을 이겨낸 끝엔 ‘해냈다’는 뿌듯함과 보람이 남는다는 것. 학창 시절 영상을 공부하고 싶었던 박씨는 현재 간호 공부를 하고 있다.

“정말 배고픈 게 지나면 아무 느낌 없는 시점이 와요. 아프리카의 많은 아이가 이렇게 허기조차 못 느끼며 죽어간단 생각을 하니 도와야겠단 확신이 서더라고요. 좋은 간호사가 돼 아이들이 아프지 않게, 배고프지 않게 하는 게 제 꿈입니다.”

월드비전의 기아체험은?

월드비전은 지난 22년간 대규모 집회 형식의 ‘기아체험24시’를 진행하며 전 국민 나눔·봉사 축제의 장을 열었다. 특히 올해부터는 ‘온라인기아체험’도 진행된다. 홈페이지(www.makeitstop.or.kr)에 접속만 하면 지구촌 아동들이 당면한 문제들을 체험할 수 있다. ‘가족기아체험’도 올해 처음 시도된 형태. 오는 8월 4일부터 5일, 6일부터 7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경기도 양평의 산음숲 자연학교에서 열린다. 오는 8월 23일,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진행되는 ‘기아체험+나눔콘서트’는 약 4만명이 참여하는 국내 최대의 나눔 행사로 수익금 전액(입장료 1인당 2만원)은 르완다 평화센터 건축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