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최태욱 기자의 ‘○○’] ‘옛것’을 매만지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물(古物)’

행복전통마을 제공
행복전통마을 제공

빌딩숲이 흉물로 보입니다. 휴가철이 다가오나 봅니다. 문득 이번 달 새로 개장했다는 리조트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경북 안동의 ‘고택(古宅)’ 리조트. 2012년 문화재 보존을 위해 설립된 사회적기업 ‘행복전통마을’이 유실 위기에 처한 문화재를 활용해 지었답니다. 옛것을 조물조물해 새 가치를 만드는 것, 사회적경제가 좋아하는 활동입니다. 2010년 말 등장한 ‘마인드디자인'(문화재청 예비 사회적기업)은 전통문화의 미학을 끄집어내 매력적인 상품으로 구현합니다. 목걸이, 팔찌, 손수건 같은 것입니다. 2012년 도봉구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된 ‘수유화개’는 전통 수공예품의 가치를 새로이 느끼게 해줍니다.

공동체 복원을 위해 일하는 마을 기업들이 찾는 것도 사실 ‘옛것’입니다. ‘더불어 살던 동네 분위기’ 말입니다. 이를 위해 쓰러져가는 빈방을 마을 사랑방으로 바꾸고, 한데 모여 텃밭을 가꿉니다. 동네 엄마들은 돌아가면서 작은 카페 주인이 됩니다. 주스를 마시며 숙제를 하는 꼬마는 그 누구의 아이도 아닌, 마을의 자녀입니다. 전국 마을 기업 1000여 곳은 마치 고물상처럼 이젠 고물이 된 가치를 찾아 떠돕니다.

‘기능이 다했다’고 여겨지는 은퇴 어르신들은 어떻습니까. ‘인생 2막’이란 말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시니어의 재발견을 위한 노력이 활발합니다. 열정·노력에 적당한 운이 더해지면 빈병이 새 병 되는 ‘리사이클(Recycle)’이 아니라, ‘휘황찬란’ 유리 공예품이 되는 ‘업사이클(Upcycle)’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물을 ‘보물’로 만드는 묘약은 뭘까요. 어떤 걸 덧대야 시든 가치를 다시 활짝 피울 수 있을까요. 지난 2004년 알코올중독자를 중심으로 모인 경기도 안산의 한 재활사업단. 당장 할 수 있는 거라곤 파지나 공병을 줍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경쟁자가 많고, 이른바 ‘영역’도 있었습니다.

근데 그 와중에 잘 안 주워가던 것도 있었답니다. 복사기나 프린터 같은 것입니다. 돈도 안 되고, 처리도 골치 아팠다고 합니다. 이들은 이것만 주웠습니다. 연매출 3000만원을, 10년 만에 22억원으로 만든 재활용 전문 사회적기업 ‘컴윈’ 얘기입니다. ‘고물계’에서 소외된 ‘전자전기 폐기물’의 숨은 가치를 알아봤기에 가능했던 결과입니다.

묘약은 고물 그 자체입니다. 전통문화가 오롯이 보존돼 있어야 예쁜 목걸이도, 단아한 도자기도 만듭니다. 마을이 공유했던 정서를 기억해야, 그때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리사이클’이든, ‘업사이클’이든 고물 발견이 먼저입니다. 지난달 고용노동부 장년 고용 우수 사례 수기에서 우수상을 받은 박경희(60·동화작가·경기 의왕시)씨. 박씨의 인생 2막은 금융인이 아니라, 작가의 재능을 들여다보는 순간 빛났습니다(박씨는 18년 동안 금융기관에 다니다 은퇴했습니다).

모두가 혁신(革新)을 외치지만, 혁신은 ‘낡은 것’을 바탕으로 합니다. 도태된 이유, 숨겨진 가치를 들여다보는 게 환골탈태의 시작입니다. 이참에 할머니를 한번 만나봐야겠습니다. 잔소리할 땐 꼭 래퍼 같으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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