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월)

세계 3만5000㎞ 달려… 사회적기업의 희망을 만나다

임팩트 투자 전문가·인권 변호사 부부
1년간 만난 세계 20개국의 사회적기업가 100명
“기업 생태계, 나라마다 달랐지만 ‘개인적 동기’ 모두 가지고 있어
케냐의 공정거래·남아공 무료 대학… 지원 많아진 것에서 가능성 찾았죠”

1년 동안 아시아에서 아프리카까지 3만5000㎞를 돌며 세계 20개국 사회적기업가 100명을 만난 부부가 있다. 스타트업 기업의 성장을 돕는 ‘임팩트 투자(재무적 수익뿐 아니라 사회·환경적 가치를 고려해 투자)’ 전문가 스티븐 리(Steven Lee·37)씨와 유엔난민기구(UNHCR) 인권변호사 머라이어(Marije Mellegers·34)가 그 주인공이다. 2013년 4월 28일 동해항에서 시작한 여정은 러시아, 몽골을 거쳐 아프리카 최남단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마무리됐다. 1t짜리 트럭 지붕을 개조해 텐트를 부착하고, 비포장 도로에도 견딜 수 있는 강력한 바퀴를 장착했다. 대부분의 숙박 일정은 오토캠핑장 혹은 자연 속. 세계은행(World Bank), 국제금융공사(IFC) 등 국제기구나 각 나라에서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협회의 추천을 받아 방문할 곳을 선정했고, 인터뷰한 사회적 기업가로부터 추천을 받기도 했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막론하고 흔히 찾을 수 있는 사회적기업 모델은 ‘재활용 가게’였다. 하지만 사회적기업 생태계는 나라마다 달랐다. 아랍권에서는 ‘가난한 사람에겐 일보단 돈을 주는 것이 낫다’는 통념이 지배적이었고, 중앙아시아 국가 상당수는 독재 정치에 익숙해진 탓인지 ‘사회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람들이 답을 못하곤 했다. 케냐는 10년 전부터 이미 사회적기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나라지만, 장벽은 여전했다. “비즈니스 인큐베이팅이 끝나고 사업자금을 찾으라고 하면 아주 쉽게 찾아요. 보조금(grant)이 대단히 많기 때문이죠.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놔도 다시 보조금으로 돌아가는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기업가 정신이 중요한 이유다.

①키르기스스탄의 풍경.②케냐의 마을 풍경.③케냐의 사회적기업 ‘허니케어아프리카’를 만나러 가는 길.④스티븐 리·머리아어의 여행 일정을 함께했던 트럭, 2층에는 텐트를 부착해 간이 숙소가 되도록 만들었다.⑤탄자니아 사회적기업 ‘시위드센터’에선 지역 여성들이 해조류를 가공해 비누·오일 제품 등을 판매한다.⑥스티븐 리, 머라이어 부부. /함께일하는재단 제공
①키르기스스탄의 풍경.②케냐의 마을 풍경.③케냐의 사회적기업 ‘허니케어아프리카’를 만나러 가는 길.④스티븐 리·머리아어의 여행 일정을 함께했던 트럭, 2층에는 텐트를 부착해 간이 숙소가 되도록 만들었다.⑤탄자니아 사회적기업 ‘시위드센터’에선 지역 여성들이 해조류를 가공해 비누·오일 제품 등을 판매한다.⑥스티븐 리, 머라이어 부부. /함께일하는재단 제공

사회적기업가 100명에게서 발견된 공통 자질을 묻는 질문에 스티븐 리와 머라이어는 “개인적 동기(personal drive)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몽골의 ‘RL(Righteous Living)’이 대표적 예다. 몽골의 ‘RL’은 고가의 주문 제작 게르(몽골 전통 가옥)를 판매하는 사업을 진행한다. 이 게르는 신규 건설 자재로 만들어지며, 일반 게르보다 3~5배는 더 비싸다. 설립된 지 9년째, 현재 매출은 17만5000달러(약 1억8000만원). RL에선 현재 과거 구금자나 노숙자, 장애인 등 취약계층 115명이 기술을 배우고 있고, 이 중 35명은 정식 고용됐다. 술을 끊어야지만 생활하고 일할 수 있으며, 일정 자격을 얻을 때까지 1~3년 동안 훈련받는다.

“몽골 RL 창업자는 폭력범죄 때문에 감옥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다양한 기술을 배워 출소 후 직업을 얻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어렵다는 점에서 사회적기업을 세웠어요.”

한편, 이들 부부는 이번 여행 과정 중 발굴한 4개 사회적기업에 대해 ‘함께일하는재단’과 ‘임팩트 투자 촉진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선정 기준은 ‘해당 기업의 잠재적인 성장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키르기스스탄의 ‘지역기반관광협회(이하 KCBTA)’가 대표적이다. 1991년 소련연방으로부터 독립한 키르기스스탄은 인구의 75%가 농촌지역에 살며, 인구의 38%가 최저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사는 가난한 나라다. 2003년 설립된 KCBTA는 지역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숙박시설·음식·트레킹 등의 활동이 포함된 생태관광을 진행하고 있다. 15개 지역, 250개 가구로 구성된 KCBTA의 회원은 평균 63%의 소득 증가를 보이는 등 괄목한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스티븐 리는 “에코투어리즘(생태관광)은 많은 사회적기업에 발견할 수 있는 모델이지만 KCBTA는 관광 상품에 대한 품질 관리가 철저한 면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외에도 케냐 농가가 생산한 벌꿀을 공정거래가격에 구입한 후 브랜드 상품으로 판매하는 ‘허니케어아프리카(Honey Care Africa)’, 탄자니아 지역 여성들이 해조류를 가공해 비누·크림·오일 제품을 만들어 파는 ‘시위드센터(Seaweed Center)’, 남아프리카공화국 저소득층 청소년을 위한 무료 고등교육 대학인 ‘마하리시 대학·사회적기업 아이오지(Masharisi Institute·Invincible Outsourcing Group)’가 최종 임팩트 투자처로 선정됐다.

스티븐 리와 머라이어씨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만난 사회적기업에서 미래를 발견했을까. “물론입니다(Definitely Yes). ‘사회적기업(social enterprise)을 소개해달라’는 질문에 단 한 나라도 ‘모른다’고 답한 곳이 없었죠. 10년 전부터 시작한 케냐에서부터 이제 막 태동 단계인 르완다까지 말이죠. 한 번 스쳐 지나가는 트렌드는 아니란 겁니다. 아직 비즈니스가 명확하게 성공한 곳을 찾긴 힘들지만, 나라마다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고 인큐베이팅하는 곳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찾았습니다.”

※ 스티븐 리·머라이어씨는 지난해 전 세계 비영리·영리기업의 혁신적인 솔루션을 발굴해 기록하고 전파하는 비영리단체 ‘윌위셔스(wheelwishers)’를 설립했다. ‘함께일하는재단’은 이번 여행기를 담은 책 ‘100개의 지속 가능한 희망’을 발간했으며, 임팩트 투자처로 선정된 4개 사회적기업에 대해 크라우드펀딩 사이트(http://bit.ly/1nZf7 ma) 를 개설했다. 개인도 투자자로 참여할 수 있으며, 투자 기간은 8월 1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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