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소셜벤처 상표권 수난 잇따라

한국갭이어, 상표권 침해 금지 소송 휘말려 법적 구제책 강화·면밀한 예방교육도 필요

“청년들이 방학이나 학기 중 견문을 넓힐 수 있도록 봉사, 여행, 인턴십 프로그램 연계 활동을 2년 넘게 진행해 왔는데, 법적인 문제로 회사 이름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까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더라고요.”(안시준 한국갭이어 대표)

최근 한국갭이어의 상표 출원이 좌초될 위기에 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페이스북을 통해 알려졌다. ‘갭이어’는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봉사·인턴십·여행 등을 통해 자신의 진로를 설정하는 시간으로, 유럽을 비롯한 미국 세계 명문대에서는 입학과 동시에 갭이어를 권장하는 서문을 보낸다. 2012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한국갭이어는 작년 12월 특허청에 ‘한국갭이어’와 ‘Korea Gapyear’ 상표를 출원했다. 그런데 글로벌 의류브랜드 갭(GAP)이 “대중들이 ‘갭’ 단어를 중심으로 한국갭이어를 인식하기 때문에 갭의 상표와 유사하며, 갭이어의 지정 서비스업 또한 갭의 사업과 겹치기 때문에 상표권 등록을 해서는 안 된다”며 이의 신청을 한 것이다.

Pixabay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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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급해진 안 대표는 공공 변리사 몇몇을 만나 자문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니 출원을 포기하는 것이 어떻겠느냐”였다. 이런 사연이 페이스북을 통해 알려지면서 몇몇 법조인이 무상 자문을 해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현재 한국갭이어는 갭의 주장을 반박하는 서류를 제출한 뒤 추가 대응을 기다리고 있다. 안 대표는 “티셔츠를 판매하는 갭과 글로벌 청년 인턴십 프로그램인 갭이어는 전혀 다른 사업 영역”이라며 “미국·영국·일본 등에서도 ‘갭이어’라는 명칭은 보통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늘어난 소셜벤처,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이 상표권 문제로 곳곳에서 홍역을 겪고 있다. 2006년 특허청에 ‘공신’ 상표를 출원했던 사회적기업 ‘공신닷컴’은 2008년 한 기업이 공신 브랜드를 무단 이용해 인터넷 교육 사이트 ‘공신클럽’을 개설하고 참고서를 판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공신닷컴 측은 해당 기업에 즉각적인 상표 사용 중지와 문제지 회수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제기, 2011년에 상대 회사가 상표법을 위반했다는 판결을 이끌어냈다. 강성태 공신닷컴 대표는 “소송 기간에 공신클럽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문제집 종류만 무려 100개가 넘었다”면서 “어렵게 구축한 공신 브랜드가 수익 활동에 사용된다는 생각에 당시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2011년에는 서울형 사회적기업에 선정된 ‘돈워리컴퍼니’가 메리츠화재를 상대로 상표권 침해 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메리츠화재가 회사 마케팅에 활용한 ‘걱정인형’이 2009년에 이미 등록한 상표권을 침해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작년 1심에서 재판부는 “돈워리컴퍼니가 상표를 출원하기 전에도 걱정인형 이야기가 책과 인터넷을 통해 국내에 소개됐고,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인형이 판매되고 있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상표권을 회사의 권리로 등록하기 위한 과정에서만 최대 500만원 가까이 드는 경우도 있으며, 몇 년간에 걸친 추가 소송까지 진행한다면 비용이 수천만원까지 급상승한다고 한다. 조우성 기업분쟁연구소 소장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아이디어를 갖고 활동하던 기업이 장기간의 분쟁으로 한순간에 성장 동력을 잃을 수 있다”면서 “사업 전반에 걸쳐 법적인 자문 및 컨설팅을 손쉽게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조치가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적경제 종사자들이 상표권 및 지식재산권 문제에 보다 예민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사업 구상 단계에서부터 자신이 갖고 있는 아이디어가 문제 소지는 없는지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리플래닛 김형수 대표는 “사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약 1년간 유사 브랜드가 존재하는지 여부를 미리 조사했고, 로고 디자인을 제작할 때도 디자이너와 함께 디테일에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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